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웃자 Oct 06. 2022

열세번째 만남

법원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동생은 기가 막힌다고 한숨을 쉬었다.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였다. 생전에 아버지는 짐이 너무 무거웠다. 부모, 형제, 고모, 고모부, 조카, 등 수많은 사람들을 혼자서 돌보셨다. 거래처 직원 중에 의붓아들로 삼은 사람도 있었다. 왜 그렇게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졌을까. 정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다른 사람들과 짐을 나누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 같다. 정작 처자식은 멀리 하셨다. 자식들이 성장할 때 부재하셨다. 병들고 아프고 나서야 처자식을 찾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병문안도 오지 않았고 그들은 빚으로 남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법원 등기는 수령하기 어려웠다. 우체국 집배원은 불친절했다. 초인종을 한 번 누르고 가버렸고 우편함에 미수령 안내서 붙이지 않았다. 스케줄대로 배달한다고 약속을 정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찍 퇴근해서 우체국에 찾으러 갔다. 왜 미수령 안내서를 부착하지 않았는지 물어보니 코웃음을 쳤다.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런데 법원 등기는 계속 왔다. 우체국까지 가기 싫어서 반차를 쓰고 기다렸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집배원은 짜증을 냈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물어보니 다른 집배원들은 친절한데 이상하다고 대답했다. 드디어 집배원과 문 앞에서 대면했다. 그는 통화할 때와 다르게 정중했다. 순간 짜증이 났지만 겨우 참았다.

상속포기했다. 소송에서 피고로 불려갔다. 여러 변호사와 법무사를 만났다. 전화해서 상담하고 싶다고 물으면 누구 소개를 받았는지 되물었다. 난처한 처지는 먹이감이었다. 필요 없는 경정청구를 반복했고 오타 때문에 반송이 되었다. 법원 공무원도 황당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따져 물으니 되려 파산신청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수업료를 내고 양심적인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법원에 갈 필요 없다고 하셨지만 어머니께서 걱정하셔서 난생 처음으로 법원에 갔다. 회사에서 법무팀에 협조를 구한 적 있었지만 법원에 갈 일은 없었다. 아침 일찍 가서  시간 정도 기다렸다. 긴장해서 화장실에 들락거렸다. 아버지는 변호사의 입에서 불렸고 재판은 오분도 지나지 않아서 끝났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열두번째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