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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자 Oct 02. 2022

열두번째 꿈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안방이었다. 옛날에 살았던 산동네 아파트 같았다. 아버지는 청자켓을 입고 있었는데 청자켓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조카가 입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마트에서 산 것과 똑같다고 대답하셨다. 아버지 주머니에서 동전이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서 커다란 벌이 윙윙 거렸다. 아기들이 걱정되어서 살충제를 찾다가 손으로 잡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거실에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일했던 분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립다고 말씀하셨다. 꿈속의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는지 물어보니 가끔씩 산소에 다녀오면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아기들과 놀이터에서 봤던 죽은 벌

산동네 아파트는 삼십년 전 쯤 살았던 곳이다. 공용 화장실의 단칸방과 바퀴벌레가 득실거렸던 이층주택을 거쳐서 처음으로 살았던 아파트였다. 아파트 출입구에 약수터가 있을 정도로 산꼭대기에 있었다. 놀이터에서 노는데 뱀이 자주 나와서 동네 형들이 막대기로 잡았다. 구멍가게, 문방구, 비디오 대여점이 마주보고 있었다. 구멍가게에서 백원을 내고 자두 두개를 먹었다. 문방구에서 뽑기로 일본 만화책 해적판을 봤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중국 무협 드라마를 빌렸다. 거리뷰로 검색해보니 산동네 아파트는 그대로였지만 구멍가게도 문방구도 비디오 대여점도 사라졌다. 그래도 눈을 감으면 사라진 시간 속 사람과 풍경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언제 어디에서 봤는지 모르는 고양이의 뒷모습

이번에는 꿈에서 아버지와 대화하지 못했다. 아버지 생전에도 부자의 대화는 자주 엇나갔다. 아버지 말씀을 들으면 아들은 눈물이 고였고 목소리가 잠겼다. 아버지가 두렵기도 했고 불쌍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나중에 아들은 반항심이 생겨서 대화 자체를 회피했다. 아들이 성장할 때 아버지는 부재했다. 가끔씩 집에 오면 어머니와 싸우고 사라졌는데 어머니는 아들에게 원망을 토로했다. 오랜시간 반복되면서 무너진 것을 돌이키기 힘들었던 것 같다. 손녀가 태어난 후로는 조금씩 대화를 나누었다. 꿈속의 꿈이라면 끊어진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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