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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자 Nov 30. 2021

마흔을 앞두고 재취업하다

프롤로그

아버지 병수발을 하느라 회사를 그만두었다. 병수발을 핑계로 퇴사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병수발도 하고 육아도 하고 주식 했다. 생활비가 조금씩 빠듯했고 두 딸을 생각하니 불안했다. 아버지가 퇴원하고 집에 계실 때 취업사이트를 보다가  회사아무 기대 없이 지원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면접을 봐야 하는지 망설였다. 산사람은 살아야지 밥벌이는 서글펐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면접장으로 향했다. 십수년 동안 일했던 동종 업계도 아니고 동일 업무도 아니라서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시대에 서른아홉 문사철 문과생이 이직도 아니고 재취업이라니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대학교 졸업 후에 서류도 면접도 많이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더많이 떨어질 거라고 각오했다. 오만가지 걱정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합격했다. 그래도 그렇지 한 회사에 지원해서 한 번에 통과하다니 의외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도와주신 것 같았다.

합격 문자

나의 생존기는 버티기 일색으로 지루했다. 문과생이 코딩을 배워서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용기도 없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꿈을 찾는다는 설레임도 없었다. 재테크를 잘해서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사람들의 자신감도 없었다. 돌아보면 그동안 용케도 살아남은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 장래희망이 등대지기와 트럭기사였다. 경쟁하고 줄타는 성향이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구체적 목표를 정하지 못했다. 소설책과 만화책이 좋아서 전공으로 문사철을 선택했다. 책읽기는 좋았지만 글쓰기는 어려웠다. 실용적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조선시대였다면 어떻게든 먹고 살수 있었을까. 졸업 후에 고향에서 제조업에 취직했다. 대기업이라서 신입 때 봉급을 두둑하게 받았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봉급은 삭감되었고 여러 부서를 옮겨 다녔다. 동기들은 이직을 했지만 문사철 문과생은 갈 곳이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 공학개론을 읽고 여러가지 자격증을 취득했다. 같이 일했던 팀장들이 이직한 회사에서 자기 밑으로 오라고 스카웃 제의를 했다. 고민 끝에 봉급 외 추가 수입을 만들어 주겠다는 달콤한 제의를 수락했다. 불행히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화법을 읽으면 대화를 잘할수 있을까

면접관은 회사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물었다.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고 우물우물거렸다. 임원이 되고 싶다는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일까. 회사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일까.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밥벌이 말고 거창한 목표를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서든 적응해서 가능한 오랫동안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싶을 뿐이다. 그동안 생존을 위한 몇 가지 교훈은 얻었다. 제조업에서 의외로 쓸모없는 책읽기는 유용했다. 앞으로도 계열사 공모전이든 사내신문이든 실용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할 것이다. 조직에는 파벌이 존재하고 라인을 탈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회사에서 사장 지시를 따르고 사장 라인을 탈 것이다. 경력이 쌓이니 계열사와 거래처에서 달변가들이 유혹을 던졌다. 내 능력만큼 일해서 돈을 벌어야지 헛된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연봉 협상을 피할 수 없었다. 돈보다 일이 중요하지만 동료와 비교하지 않도록 최소한 평균치는 받을 것이다. 지난 생존기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생존기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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