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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자 Dec 05. 2021

다행히 멘토를 만났다

문과생 생존기

문사철을 전공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소설책이든 만화책이든 읽는 것이 좋았다. 어쩌면 그때가 대학생이 낭만을 즐길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도 조선 시대나 그리스 로마 시대가 아닌데 문사철을 공부해서 밥벌이 제대로 하겠냐는 의문의 시선이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에 버금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였던 것 같다. 언제나 어디서나 잉여인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글쓰는 재주도 없으면서 밥벌이에 무관심했고 취업하기 힘들었다. 뒤늦게 취업을 위해서 자격증을 따려고 했지만 재미가 없어서 공부를 지속하기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대기업 조선사에 입사했다. 조선업 호황기 끝물이라서 운이 좋았다. 수많은 동기 중에 공과생이 99%를 차지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상경계였다. 적응하기 힘들었고 좌절도 많이 했다. 다행히 부서에서 멘토를 만나서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에 그분은 다른 부서에서 일할 때 아침에 한 시간 동안 공부 시간을 주셨고 오후에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해주셨다. 그때부터 공학개론을 읽고 여러가지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때 멘토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직장생활을 포기했을 것 같다.

오디세이 용어사전의 멘토

오디세이에 멘토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친구인데 아테나 여신이 멘토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디세이 용어사전에 따르면 멘토는 알시무스의 아들이자 오디세우스의 고향 친구이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으로서 트로이 전투에 참전하기 위하여 멘토에게 집안일의 관리와 그의 아들인 텔레마쿠스의 교육을 맡긴다. 그리고 아테나 여신은 멘토의 모습으로 등장해서 텔레마쿠스를 돕는다. ​트로이 전쟁 후에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십년 동안 헤매는 운명에 처한다. 그동안 성장한 텔레마쿠스는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전쟁의 여신이자 예술과 기술을 후원하는 아테나 여신은 멘토의 모습으로 텔레마쿠스와 동행한다. 마침내 부자는 재회하고 오디세우스의 왕좌와 텔레마쿠스의 권리를 빼앗으려던 무리들을 응징한다. 그렇게 멘토는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 친구, 선생님, 현명한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멘티는 텔레마쿠스처럼 멘토의 지혜와 경험에 따라서 지도를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타카의 사람들이여

최근에 건설사로 이직하면서 면접관이 멘토링에 대해서 물었다. 이제는 조직에서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관리자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다. 십수년 전 신입 사원 때 만났던 멘토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제와서 돌아보니 누구나 마찬가지로 꽤 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것 같다. 조선업 불황으로 구조조정을 할 때 멘토는 외국 조선소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고 떠났다. 동료들도 이직하거나 공무원이 되었다. 멘토에게 공무원 공부를 할까 물었다. 그분은 IMF 때 사무실에서 자기 책상이 사라졌는데 복도에서 즐겁게(!?) 공부했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조선소에 남아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문사철 문과생이라서 이직할 기회도 마땅치 않았고 암기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회사에서 지시하는대로 구매팀, PM팀, 재무팀, 생산기획팀 옮겨다니면서 그때마다 필요한 공부를 계속했다. 이제는 건설사 경영기획팀에서 기획 업무와 신규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각자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살아간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나의 경험은 남에게 무의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멘토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앞으로 멘티를 만나면 경험을 공유하고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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