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에 조선업 불황은 심각했다.현장은 적막했고 사무실에는 음산한 소문이 돌았다. 모두들 날선 뉴스를보며 살얼음 위를 걸었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전제로 수조원을 지원했다. 회생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보다 다가올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마음이 무거웠다. 정부의 지원은 은행 빚을 상환하는데 쓰였고 운영 자금은 여전히 부족했다. 회사에서 권고사직 대상자가 되기 전에 위로금을 받고 희망퇴직을 하라는 공지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초조하게 인사팀의 메일을 기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메일을 받은 직원들은 대부분 회사를 떠났고 다른 직원들은 회사와 함께 서서히 침몰했다. 수많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위로금 몇천만원을 받고 퇴사할까 고민했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한 달 정도 캠핑카 여행을 하고 싶었다. 멘토는 외국으로 떠나면서 오래전 IMF 때 복도로 옮겨진 책상에서 즐겁게 공부했다는 경험을 말했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지 말고 남아서 공부하라는 멘토의 조언을 따랐다.
아무리 흔들려도 결코 쓰러지지 않으리
여러 부서를 옮겨 다녔다. 자의로 지원하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발령을 내린 경우도 있었고 부서가 해체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 새로운 부서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문사철 문과생이라서 회계도 몰랐고 기술도 없었다.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하여 일하면서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PM팀에서 Project Management Professional, 원가팀에서 Certified Management Accountant, 재무팀에서 Chartered Financial Analyst, 생산기획팀에서 도면을 공부하고 현장에 돌아다녔다. 언젠가부터 나만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생겼고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최근에 이직한 건설사에서 감사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Certified Internal Auditor를 공부해야 하는지 고민했다.더이상 각을 잡고 공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상장사협의회 자료를 위주로 보면서 일하다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는 구겨진 비닐봉지
두 번 다시 구조조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수많은 작별을 했고 악몽에 시달렸다. H주임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당황해서 이상한 위로를 했고 기프티콘을 보내면서 또 이상한 위로 문자를 보냈다. 그날 꿈에서 W차장을 만났다. 퇴사했던 T과장이 찾아왔으니 같이 인사하러 가자고 W차장한테 말했는데머뭇거리다가 자신은 이곳에 자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말하다가 울었고 옆에서나도 울었다. 정리해고는 많은 사람들을 조선소 밖으로 몰아냈고 남은 사람들은 다가올 차례를 기다리며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메일함에 쌓였던 수많은작별 인사와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는공지를 보면서, 아직도 남아있어서 부끄러웠고, 언젠가 작별 인사를 할 생각에참담했다.저가수주와 분식회계를 주도했던 경영진이나 파업을 주도했던 노조는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지금까지 연락하는 동기들은 대부분 대기업으로 이직했거나 공무원이 되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도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삼십대 초반에 구조조정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는 구겨진 비닐봉지 같았던 나를 현실적인 아저씨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