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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Feb 08. 2023

죽음에 관하여

2023.02.08 27번째 일기

To.찌니님

저는 종종 ‘죽음’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생각을 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겨질 수 있어 서로 이런 키워드를 꺼내지 않는 분위기가 종종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우리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잖아요.


그 중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남겨진 나에 대한 이야기에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아이유의 자장가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는 넷플릭스 옴니버스 영화 페르소나의 <밤을 걷다>라는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노래에요. 여기서는 죽은 지은이 남자친구 K의 꿈 속에서 나타나 밤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에요. 꿈에서 K는 지은의 죽음을 인지를 못하고 대화를 하다가, 여자친구의 죽음을 깨닫는 순간 K가 주저앉아서 펑펑 우는 장면이 너무 슬펐어요.

그러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내가 하루 더 늦게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내가 먼저 떠나면 어쩌지? 내가 떠나고 남겨진 빈자리에 누군가 아파한다는 것도 너무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났어요. 


현재 걱정을 하다못해 인생의 걱정까지 하다니 이런 제가 참 웃기기도 합니다. 더 어이없는 걱정들이 많지만 글로 쓰기가 참 부끄럽네요.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도 싫어요. 저는 그 슬픔을 숨길 수 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숨길 수 없는 사람이게에 위로를 하는 방법도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에 지금 사는 이 순간들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언젠가 누구에게나 올 그 시기에 대해 생각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면 좋겠어요. 찌니님은 유한한 삶과 그 날에 종종 생각하시나요?




To. 낮잠님

아니, 일단 진짜 별의별 고민을 다하네 우리 낮잠님! 덕분에 제가 리더십, 심리, 철학, 조직운영, 사업, 마케팅 등등 공부를 안 하는 게 없어요. 이 프로젝트 설마…낮잠님 힐링 캠프가 아니라, 저 공부 시키기 프로젝튼가요? (웃음)


죽음에 대한 키워드는 저에게는 굉장히 의미있는 키워드죠. 저 같은 경우에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해봤잖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주의자가 된 거구요. 

죽음이 가까이 오면 지금까지 내가 아등바등 해 온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짐을 알게 됩니다. 미래에 존재하는 내 시간은 정말 있는 걸까? 그 시간은 얼마나 되는 거지? 그런 고민들을 하다가 알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유한한 시간의 고리 속에 살고 있고 그런 유한한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주어져 있는지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저는 암을 겪고 나서 가계부 쓰는 것을 그만 뒀습니다. 5년, 10년, 15년, 5년 단위로 매년 정비하던 미래 계획도 중단했습니다. 노후를 준비한다고 아껴 쓰고 투자 공부하고 그런 것들 모두 때려 쳤습니다. 

저는 그 미래라는 것이 얼마나 주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과 내가 원하는 만큼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 내 삶이 불안해졌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옆에서 낮잠님이 지켜봤으니 누구보다 잘 알 거에요.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려는 내 삶의 방식은 오히려 인생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줬습니다. 

금전적인 풍요로움 보다는 가치의 풍요로움을 말하는 건데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나서부터 쌓여가는 나의 하루하루의 삶의 가치가 매우 달라졌어요. 가장 나 다운 형태로, 나라는 사람의 인간적인 깊이가 깊어지는, 그런 자아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된 거죠. 

아마도 그런 자아의 풍요로움이 생겼기 때문에, 저는 멘탈 탄성력도 좋고 흔들림 없는 자기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제 나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데, 저는 복 받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저에게 무서운 것이라기 보다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깨달음을 얻게 해준 인생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듭니다. 내 삶과도 헤어짐이 존재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삶과도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세상에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이, 지금 이 사람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슬픈 감정 보다는 죽음 덕분에 새롭게 뜨이는 시야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해요. 분명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저에게 그러했듯, 낮잠님에게도 스승이 되어줄 겁니다.


※ 이 글은 찌니와 낮잠이 공동으로 쓰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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