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업> 리뷰
1. 뛰어난 성적과 바른 품행을 갖춘 듯 보이는 '지수(김동희)'. 그러나 학교 밖에서 그는 조건 만남을 알선하는 영리한 범죄자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박혁권)의 권유로 지수는 우연히 자신이 남몰래 좋아하던 '규리(박주현)'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규리를 알아가던 지수는 뜻하지 않게 자신이 범행에 사용하던 핸드폰을 규리에게 넘겨주면서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규리는 오히려 지수의 사업을 확장시키자고 제안하고, 둘은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무모한 동행을 시작한다.
십 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학원물 혹은 하이틴 장르는 넓게 사랑받는 장르들 중 하나다. 이 장르는 영화와 드라마 속 이야기를 현실과 비교 및 대조하는 재미가 있고, 과거의 추억과 감상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학원물이 보통 로맨스 장르와 결합되고, 그 결과 사랑 외에 십 대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한다는 한계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넷플릭스가 새로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인 <인간수업>은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십 대들이 겪는 딜레마와 그 원인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면서 학원물 혹은 하이틴 장르의 일반적인 한계를 탈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2. <인간수업>의 주된 서사는 조건만남 알선 사업을 함께하는 지수와 규리, 두 주인공의 이야기다. 사실 이 둘은 굉장히 어색한 조합이다. 마땅한 친구도 없이 조용히 학교를 다니며 부모님과 이별한 채 혼자 살아가는 지수와 친구들도 많고 활달한 성격에 연예기획사 CEO 부모를 둔 규리는 처해 있는 조건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끌릴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 이유는 두 캐릭터가 공유하는 한 가지 공통점에 있다. 지수와 규리는 청소년들에게 요구되는 '정상적인' 삶이 얼마나 허망한 요구인지를 상징하는 캐릭터들이다.
학교 안에서, 또 기록 상으로 지수와 규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여겨지는 고등학생의 전형이다. 지수는 전과목 1등급이라는 훌륭한 성적과 만점에 가까운 상점을 받고 단 한 건의 사고도 치지 않은 학생이고, 규리는 자타공인 인싸에 선생님과의 관계도 좋고 성적도 동아리 활동도 완벽한 학생이다. 그러나 이처럼 가장 정상적인 듯 보이는 둘은 학교에서 벗어나는 순간 가장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청소년의 모습을 드러낸다. 지수는 누구나 부러워할 성적을 가지고 있지만 삶의 방향성과 주체성이 부재한 상태로 그저 남들 같은 평범한 삶을 갈구하는 수동적 인물이다. 규리의 경우, 그녀는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와 압박에 시달린 나머지 그들을 증오하고 그 상황에서 수단 불문하고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비뚤어진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지수와 규리가 처한 상황은 비록 그 강도가 다를 수는 있어도,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많은 청소년들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한 후 취직해서 살아가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받는다. 하지만 이른바 정상적인 요구의 내용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성적이 좋고, 생활기록부 내용도 풍성하고, 글도 잘 쓰고, 운동도 잘하면서 자신의 진로도 명확히 설정하고 남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자립감도 갖추어야 하는 불가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조건들을 갖춘 듯 보이던 지수와 규리마저도 사회가 원하는 혹은 그들이 원하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전개는 결국 현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고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애당초 틀린 답만 있는 보기를 손에 쥐여준 셈이다.
3. 각자의 이유로 고통스러워하는 지수와 규리는 범죄로 손을 맞잡는다. 그들에게 범죄는 선악의 여부를 떠나서 이미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수에게 범죄는 생활비부터 학원비까지 만들어주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범행이 드러날 위기에 처할 때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소망이 무너진 것에 크게 좌절한다. 한편 규리에게 범죄는 부모님의 강요가 낳은 증오로 인한 결과물이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판을 키우고 지수를 부추기면서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원하는 인생을 선택한다. 이렇듯 드라마는 모범생과 우등생이 곧 추악한 범죄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모순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모든 청소년에게 일괄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사회의 기대와 요구가 도리어 그들을 파괴하는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가 청소년 성매매 및 포주와 같은 자극적인 범죄를 소재로 활용한 것에 대한 불편한 시각 혹은 비판은 일견 타당하나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드라마가 이토록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한 것은 두 인물의 동기,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을 강렬하게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또한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범죄가 악하다는 점과 그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지수는 자신의 범행이 들킬 경우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엄청난 두려움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지수보다 냉정하고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규리도 마찬가지다. 규리는 자신들의 행동이 발각될 꼬투리로 이어지는지를 철저히 따져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바꿔 말해 자신들이 하는 일의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를 명확히 인지한다는 의미다.
한편 드라마는 청소년들을 범죄라는 극단적 상황에 몰아넣은 책임이 사회적 제도와 그 시스템을 만든 어른들에게 있다는 점도 명확히 지적한다. 지수와 규리, 그리고 조건만남을 나가던 '민희(정다빈)'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그리고 그들이 신뢰하는 어른은 단 한 명, '이 실장(최민수)'뿐이다. 노숙자로 살아가던 그는 지수가 (비록 잘못된 방법이지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위험에 처한 규리를 구해주며, 민희의 상태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고 그녀가 조건만남을 그만둬야 한다고 강하고 꾸준히 설득한다. 반대로 선생님과 경찰 등 제도권의 인물들은 열심히 노력했던 것과 별개로 주인공들을 전혀 도와주지 못한다. 그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학생들이 맞이한 비극을 뒤늦게 바라볼 뿐이다. 이처럼 교사와 경찰이라는, 제도적으로 가장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들의 실패는 곧 이 사회의 실패를 의미한다.
4. <인간수업>의 파격적인 소재, 어둡고 섬뜩한 스토리와 메시지는 독특한 연출을 만나 더욱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대표적인 것이 등장인물들의 속마음과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장면들이다. 부모님과 식사를 하다가 마치 총에 맞듯 부모님의 머리가 꿰뚫리기를 바라는 규리의 모습은 부모님이 듣기에 좋은 말을 하면서 자해하는 장면과 이어지며 그녀가 얼마나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지수의 환상 혹은 꿈들도 그가 얼마나 절박하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인지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소라게를 활용하는 메타포 역시 인물들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지수와 규리는 소라게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다만 그 소라게가 그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다르다. 지수에게 소라게는 그가 지향하는 목적이다. 소라게는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고, 그 껍질은 위기로부터 소라게를 보호한다. 지수는 자신의 사업, 그로 번 돈, 그 돈을 바탕으로 성취할 평범한 일상이 자신을 보호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지수가 그동안 모은 돈을 잃을 때 소라게의 껍질은 깨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소라게를 새로 사준 규리에게 지수가 마지막까지 기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규리에게 소라게는 현재 자신의 보습이다. 현재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규리의 눈에 소라게는 껍질에 가로막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소라게 껍질인 부모님의 억압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5. 이미 몇 년 전부터 청소년 범죄의 잔혹성, 그 구조적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었다. 하지만 국내 영화 혹은 드라마가 그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비록 구체적인 상황이 다를지라도 기저에 깔린 문제의식에 전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던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같은 드라마들에 빠져들었다. 이 맥락에서 <인간수업>는 넷플릭스가 각광받는 이유와 가능성을 또 한 번 증명한 오리지널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 범죄라는 기피되는 소재, 사회비판적인 스토리와 메시지, 그리고 그것들을 한 데 묶어주는 독특한 연출과 메타포의 조화가 어둡고 강렬하게, 또한 가슴 깊이 각인되는 작품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