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Jul 17. 2020

<반도>, 커지고 화려해졌지만 내실이 없는 속편

<반도>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4년 전, 좀비 바이러스가 한국을 휩쓸어버리는 와중에 ‘정석(강동원)'은 가까스로 배에 올라 홍콩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탈출 과정에서 소중한 가족들을 잃고, 난민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그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반도로 돌아가 돈이 든 채로 버려진 트럭을 되찾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수락한다. 그러나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와 좀비들로 인해 위기에 빠진 찰나에 그는 좀비들 사이에서 생존한 ‘민정(이정현)'과 '준이(이레)'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며, 이들과 함께 반도를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기로 한다.


2016년 여름에 개봉한 <부산행>은 한국 좀비 영화 최초로 천만을 돌파한 작품으로, 그 요인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좀비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움, KTX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좀비의 압도적인 공포스러움과 주인공들의 절박함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관객들이 사랑 혹은 경악할 만한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해 긴장감을 조성한 전개는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이유였으며, 연상호 감독 특유의 사회비판적 메시지는 <부산행>을 평범하지 않은 장르 영화로 만들었다. 그러나 <부산행>의 장점은 4년 만에 찾아온 속편 <반도>가 걱정된 이유이기도 했다. <부산행> 이후 한국형 좀비 영화는 더 이상 신선하거나 충격적인 시도가 아니었다. 그 결과 좀비들은 이전만큼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면서 영화의 긴장감이나 몰입도를 저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전편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는 점은 더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처럼 보였다. 결론부터 말해서, <반도>는 위의 우려를 단 하나도 피해 가지 못했다.



2. <반도>가 예상되었던 문제점을 그저 외면한 것은 아니다. <반도>는 두 가지 방식으로 <부산행>과의 차별화를 꾀했는데, 하나는 외양의 확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르의 변화였다. 우선 한국이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한반도를 떠난 난민들의 현실을 짚어주는 <반도>의 도입부는 국제정치적 요소가 더해져 확대된 스토리의 규모를 보여준다. 좀비들로 인해 황폐화된 인천항과 서울 시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카 레이싱 액션은 기차 내에서 맨몸 위주의 액션이 전개되었던 <부산행>보다 화려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면서 눈을 사로잡는다.


또한 <반도>는 좀비 호러물이자 탈출극이었던 전편과 달리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는 군상극을 보여준다. 이미 인연이 있거나 오랜 기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을 새로운 캐릭터로 등장시키면서 그들 간의 분열과 충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가족을 우선시하는 민정과 이레, 가족을 살리지 못해 자책하는 정석을 자신의 생존만을 추구하면서 부하마저 죽이는 '서 대위(구교환)', 그저 재미를 위해 인간을 장난감으로 쓰는 '황 중사(김민재)'와 대비시키면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기적인 인간상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3. 하지만 외양의 확대와 장르 변화라는 선택은 내실을 충실히 기하지 못한 채 겉모습만 화려 해지는 결과를 초래하며 실패로 끝나버린다. 우선 국제정치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야기의 범위를 키운 것은 역으로 영화 전개에 모순이 가득한 결과를 초래한다. 영화는 그저 헛소리처럼 보였던 '김 노인(권해효)'의 구조 요청에 UN군이 실제로 응답하는 반전을 선보이는데, 이는 한국 정부가 소멸되고 다른 국가들이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설명과 충돌한다. 미군 함선을 통해 홍콩에 정착한 한국인들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도 못하는 와중에 단지 개인적인 인연을 이유로 UN군이 일부 인원만 구조에 나선다는 전개 역시 수용하기 어렵다.


스케일을 키우는 데 집중한 결과 정작 좀비를 묘사하는 데 소홀했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실제로 <부산행>의 좀비가 붙잡히면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감을 보여줬다면, <반도>에서 좀비는 조금 까다로운 장애물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의 차이를 활용하지 못한 연출의 문제다. 도망갈 곳이 없는 기차 객실 혹은 기차역 대합실이라는 실내 공간과 달리 도로 위나 시내처럼 열린 공간에서 좀비를 대면하는 것의 위험도는 현저히 낮다. 따라서 좀비를 이용해 서스펜스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부산행>에서 기차를 바꿔 타는 장면이나 <월드 워 Z> 속 예루살렘 시퀀스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좀비들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러나 <반도>는  좀비의 위력을 체감케 하는 묘사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작중 좀비는 명확한 약점 때문에 주인공들에게 손쉽게 이용당하고, 자동차 액션의 리액션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다른 이유는 이기적인 인간상을 비판하기 위한 군상극으로의 장르 변화 때문이다. 영화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인간상을 가능한 한 충격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민간인 구조 임무를 띠고 있었지만 황폐화된 나라에서 반쯤 미쳐버린 631부대의 군인들이 들개라 불리는 생존자들을 좀비와 싸우는 검투사로 이용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군인들이 좀비들을 마치 동물처럼 대하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좀비 자체에 대한 공포심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상극으로써 인간의 타락과 그들 간의 갈등을 강조하기 위해 좀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좀비가 단순히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그 결과 <반도>는 <부산행> 만큼의 강력한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데 실패한다. 



4. 심지어 군상극으로의 변화 역시 평면적인 캐릭터들로 인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도> 속 캐릭터들은 각자 한 가지 역할만 기대받는다. 정석의 모든 행동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고 홀로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무력함에서만 비롯된다. 민정과 준이는 입이 좀 거칠고 직설적으로 행동하지만 그 바탕에는 가족애가 깔려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서 대위와 황 중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이기적인 악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전형성은 선악의 구도를 뚜렷하게 만들기에 서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물고 물리는 군상극으로서의 재미를 깎아먹는다. 더 나아가 이는 <부산행>의 장점이었던 사회비판적 뉘앙스가 사라지는 결과도 초래한다.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의 원인이었던 바이오 회사를 무리하게 살려낼 만큼 직무에 충실한 '석우(공유)'를 통해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인 성장 중심 세대의 무책임과 부도덕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 <반도>의 평면적인 캐릭터들로부터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입체감 없는 캐릭터들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신파적 연출을 필요로 한다. 주인공들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계기를 자연스럽게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파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괜히 아는 사이라고 구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대사와 또다시 사람들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정석의 변화를 대조하며 신파적 연출에 힘을 실어주려는 시도가 엿보이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중 신파가 지닌, 스토리 전개 상 필요하지만 극의 흐름을 끊을 정도로 과하다는 문제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초반부 군함에서의 장면이나, 후반부 준이의 눈물은 불필요한 장면이 아니다. 단지 생존을 위해 당장 움직여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슬로 모션과 극적인 음악이 동원되기에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와 관련된 문제들은 영화가 주인공들의 개인적인 삶을 보여주지 않은 채 그들을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들개 생활 처음 해봐요?"라고 대사는 있지만 정작 생존자들이 어떻게 물과 식료품을 구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생활상은 나오지 않는다. 정석과 같은 난민들이 홍콩에서 차별받는 것은 알겠지만 정작 그들이 무엇을 하고 살았기에 목숨을 걸고 한국에 돌아오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군인들도 사실상 좀비 대 인간의 숨바꼭질을 구경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과 정반대로 개인적인 것이 없어진 도구화된 인물들만 가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반도>는 볼수록 커진 스케일에 반비례해서 내실을 잃고, 화려한 액션만 남은 영화로 느껴진다.



5. 문제는 그 액션마저도 온전히 장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도>의 액션은 대부분 자동차 액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중후반부 카 체이싱의 경우 현란한 카메라 워크 덕분에 박진감 넘치는 시퀀스로 탄생했다. 유독 아이맥스와 4dx 같은 특별관 상영을 홍보하는 이유가 엿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퀀스는 독창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2015년에 개봉한 <매드 맥스: 분노의 질주>의 그림자가 진하기 때문이다. 트럭과 같은 대형 차량과 이를 보조하는 한 대의 소형차를 다수의 차량들이 조명탄을 쏘아대며 추적한다는 장면, 밤에 추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용한 거대한 조명을 주인공이 놀라운 사격실력으로 전부 맞춰서 파괴하는 것, 그리고 상대의 차체를 파괴할 수 있도록 개조된 차량의 등장 등 <반도> 구체적인 액션의 전개는 <매드 맥스>와 매우 유사하다.  


더 나아가 액션 시퀀스가 펼쳐지게 되는 상황과 맥락마저 <매드 맥스>와 다르지 않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외부의 남성 주인공(정석과 맥스)과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회 내부에서 불만을 품은 강인한 여성(민정과 퓨리오사)이 우연히 만나는 것, 운전하는 여자를 남자가 도와주며 위험에 빠진 여자를 남자가 구하는 것, 개인의 삶만 목적이었던 남자가 여자를 만나 미래 세대를 위해 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거 세대의 희생이 뒤따른 다는 것까지 <반도>의 스토리라인은 <매드 맥스>의 그것을 빼다 박은 수준이다. 


물론 장르 영화에서 앞선 영화들을 참조하는 것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안시성>과 같은 작품이 일 대일 액션 및 공성전을 연출할 때 <300>과 <킹덤 오브 헤븐>을 과하게 오마주해 비판을 받은 바 있는 상황에서, 유사한 문제점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비판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처럼 스토리텔링, 캐릭터 구축, 액션 연출 등 다방면에서 전편의 장점을 유지하지 못하고 새로운 단점을 보여 주는 만큼, <반도>는 형보다 못한 아우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속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D(Dreadful, 끔찍한)

야심 찬 상상력과 커진 스케일에 반비례하는 완성도



매거진의 이전글 넷플릭스 <올드 가드>, 신선함은 부족한 여전사의 데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