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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ug 04. 2020

<강철비2>, 잠수함 액션에 담긴 블랙 코미디

<강철비2: 정상회담> 리뷰

1.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나날이 격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한 대통령(정우성)'은 '북한 위원장(유연석)', 미국 '스무트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 위해 중국 정부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센카쿠 열도에서 이뤄지는 한미일 연합훈련에 함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힘겹게 성사된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한다. 한편 핵무기 포기와 평화체제 수립에 반발하는 북' 호위총국장(곽도원)'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세 정상을 납치해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에 인질로 가둔다. 이에 미국은 북한에 보복 공격을 준비하는 등 한반도가 다시 전쟁 참화에 휘말리려는 그 순간, 좁은 함장실 안에서는 예기치 못한 진정한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강철비2: 정상회담>(이하 <강철비2>)을 보고 나면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먼저 유독 '내용이 많다'. 북한의 핵 폐기와 평화 협상을 중심축으로 남북미, 북중, 중일, 미중, 한미일 관계와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와 정치적 주제가 131분의 러닝타임에 빼곡히 들어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설명한다. 또한 '전편과 다르다'. 전편은 김일성 시대에 북한 체제를 전복하려고 했던 '프룬제 군사 대학 쿠데타 모의 사건'을 토대로 한 결과 비교적 현실적인 전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며 중국과 일본의 강경파가 손을 맞잡고 북한 강경파를 추동한다는 이 작품의 배경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이때 <강철비2>를 액션과 정치 스릴러를 가장한 블랙 코미디로 의도된 영화로 이해한다면, 위의 의문들은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2. 블랙 코미디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일반적으로는 시대와 사회의 부조리를 냉소적인 유머로 풀어내는 희극을 블랙 코미디로 이해한다. 웃음의 소재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웃으면서도 씁쓸한 풍자의 일환인 셈이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은 인물들의 웃긴 행동과 대사를 통해 미국의 정치적 이슈 혹은 미국인들의 특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비꼰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의 부정부패를 고발한 <바이스>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찝찝했던 이유를 알 거 같아요! 전부 다 진보의 사각이잖아요?"라는 대사를 통해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자기 자신마저 풍자한다.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동익(이선균)의 집에 취업하는 <기생충>의 초반부 역시 빈부격차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유머러스하게 지적하는 코미디로 볼 수 있다. 


<강철비2>도 다르지 않다. 영화의 내용은 사실 매우 어둡고 심각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 일, 중, 북이 제각기 음모를 꾸미는 가운데 한국 대통령은 음모의 일부만을 파악한 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남북미 회담장에서 미국 대통령이 납치당한 결과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 전쟁의 장이 되기 직전이다. 이러한 전개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악몽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어두운 내용에 비해 비교적 밝고 유쾌한 톤을 유지한다. 초반부에는 한 대통령 가족들 간의 사적인 유머를 선보인다. 세 정상이 잠수함에 감금된 후에는 트럼프와 김정은을 패러디한 스무트 대통령과 북 위원장 간의 케미스트리와 문자 그대로 화장실 유머를 선보인다. 이는 정치 스릴러보다는 코미디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함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영화의 스토리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현실과 거리가 먼 배경에서 진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이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할 때 코미디의 과장되거나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전개도 납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특히 핵잠수함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철비2>의 메인 스토리는 이 작품이 블랙 코미디라는 점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우선 잠수함은 그 자체로 현재의 한반도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핵 무력을 쓸 수 있는 공간이자, 동시에 핵 무력을 사용할 경우 파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지금의 한반도가 처한 상황과 같다. 잠수함을 적법하게 지휘할 함장 및 부함장 대신 반란 세력인 호위총국장이 잠수함의 일부를 장악하는 전개는 헌법 상 북한이 무력으로 무단 점거되어 있다는 현실의 비유처럼 보인다. 북미 두 정상 간의 자존심 싸움부터 두 국가의 내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북핵 협상이 엉망으로 꼬여버려서 거듭 평행선을 달리는 현실은 세 정상이 잠수함 내부에 갇혀 버린 상황과 유사하다. 정치 스릴러로 보이는 세 정상 간의 갈등, 대립, 대화, 그리고 합의가 그 자체로 현재의 국제정치적 상황과 그 역사에 대한 패러디인 것이다. 


잠수함의 이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작중 핵잠수함은 '백두'호라고 불리는데, 백두산은 불과 몇 년 전 남북정상이 함께 방문했던 장소로 에필로그의 배경이 되는 광화문 광장과 짝을 이룬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잠시의 평화를 누린 한반도를 상징한다. 더 나아가 잠수함이 보여주는 액션 역시 그 자체로 현실의 비유다. 영화는 잠수함을 소재로 크게 두 가지 액션을 선보인다. 하나는 잠수함 내에서의 격전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잠수함과의 전투다. 이때 잠수함을 한반도로 생각한다면 전자는 6.25 전쟁을 시작으로 여태 반복한 모든 전쟁, 도발, 대립의 반복이고, 후자는 자연스럽게 평화적 대화의 노력을 방해하려는 외부 세력의 개입을 표현하는 영화적 장치다. 이는 전편과 달리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잠수함 액션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 이유다. 잠수함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잠수함 조차도 풍자의 대상임을 보여줘야 작중 액션들의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4. 하지만 <강철비2>는 의도와는 달리 블랙 코미디로서 세련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한다. 국제 정세나 역사적 사실을 유머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때 수준 높은 블랙 코미디가 만들어지는데, 오히려 사실들을 직설적으로 읊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이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독도의 역사에 대해서 두 차례씩이나 반복학습을 시키는 대목은 한반도 국제 정세와 관련된 강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에 더해 이러한 단점은 에필로그에 대해 호불호가 나뉘는 반응을 유발한다. 국제적 위기를 돌파하는 데 국민들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 자체는 분명 유의미하다. 하지만 주연 배우의 얼굴과 입을 직접적으로 빌리지 않은 채 제시되어야 해당 메시지는 거부감이 덜하고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다.   


또한 전반부의 코미디가 지속적으로 웃음을 주지 못해서 후반부의 액션이 서로 다른 영화처럼 분리되는 듯 느껴지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특정 국가 혹은 집단의 단편적인 이미지를 토대로 남한 대통령, 북한 위원장, 미국 대통령 및 부통령이라는 캐릭터들을 구축하고, 그들 간의 갈등과 대립을 코미디의 요소로 활용한다. 문제는 이러한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그 결과 영화는 인물들 간에 다양하거나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작중 코미디는 갈수록 웃음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5. 개봉 후 <강철비2>는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비판받고 있다. 작중 미국과 일본에 비해 우호적인 중국에 대한 묘사,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남북 관계와 북한 위원장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 등이 현실보다는 집권 여당의 국제 정치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에필로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불편함과 거부로도 이어진다. 


다만 앞서 예시로 언급한 <바이스>가 지나치게 진보적 관점의 영화라고 혹평을 받기도 했듯이, 예민한 정치적 주제를 풍자하는 영화는 다른 견해를 지닌 이들의 비판을 결코 피해 갈 수 없다. 그렇기에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비판은 <강철비2>가 어디까지나 잠수함 액션과 정치 스릴러를 전면에 내세운 한 편의 블랙 코미디라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볼 수도 있다. 



A(Acceptable, 무난함)

정치와 액션의 풍자로 '반도'를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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