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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Nov 09. 2020

<카트> 당연하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을 외치다

<카트> 리뷰

1. 정규직 전환을 눈 앞에 둔 '선희(염정아)', 싱글맘 '혜미(문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 취업준비생 '미진(천우희)'은 대한민국 대표 마트 ‘더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다. 그들은 열악한 휴게실 환경과 교대로 돌아가는 근무표, 온갖 컴플레인과 잔소리에 시달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측은 '동준(김강우)'과 같은 정직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설명 없이 비정규직을 급작스럽게 해고하겠다고 통지한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될 위기에 처한 그녀들은 회사에 맞서 노조를 만들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로 다짐한다.   


1970년 11월 13일, 동화시장 계단에서 노동 운동가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겪었다. 주목받지 못했던 노동자의 삶과 권리가 사회 이슈의 중심으로 이동했고, 대학생들은 공장으로 향했으며, 노조가 설립되어 많은 저항운동이 벌어짐에 따라 노동권은 점진적으로 보장받았다. 그러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직 그 변화는 갈 길이 멀다. 이는 전태일 열사 추모 50주기를 앞두고 2014년 11월 13일에 개봉한 영화 <카트>가 떠오른 이유다. 2007년 이랜드 그룹의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 사태를 모티브로 삼은 <카트>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불편한 노동 현실을 환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2.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사실 긍정적이지 않다. 미디어에 비치는 노조의 모습은 강성 인사들의 밥그릇 타툼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자 혹은 노동권이라는 표현 자체가 꺼려지기도 한다. 교육 과정에서도 근로자나 근로권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근본 원인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전쟁과 냉전을 거치는 사이 진보당 사건으로 인해 민주노동당의 등장 전까지 노동 계열 정당의 정치적 발언권은 거의 사라졌고, 노동자라는 말은 공산주의, 종북이라는 표현과 궤를 같이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과는 별개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존재한다. 바로 모든 개인은 어떠한 형태로든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모든 개인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운동에 필연적으로 속한다. 물론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 당연한 현상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카트>는 이 불편하면서도 당연한 진실을 일깨우려고 한다.


그래서 영화는 머리로는 알지만 심정적으로는 먼 노동운동의 현실을 가능한 한 충실히 묘사한다. 작중 등장하는 공간, 인물, 이야기는 현실을 눈 앞과 손 끝으로 불러오려는 노력으로 가득하다. 주인공들이 일하는 장소는 생활할 때 가장 익숙한 소비 공간이자 노동 공간인 대형 마트와 편의점이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은 남성 정규직 직원, 여성 비정규직, 대학생 및 청소년 아르바이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현실의 전반적인 노동 환경을 일반화한 구도로 볼 수 있다. 문화제 형식의 시위, 점거, 폭력적인 공권력 투입과 경제적 요인만을 고려한 일방적인 정리해고 등 클리셰로 쓰이는 노동 관련 이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3. 익숙한 현실의 시공간 안에서 <카트>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나는 노동과 노동운동이 뭔가 거창하고 위험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과 직결된 그 삶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연대할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마트 점거 중에 직원들이 한 명씩 나와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예시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주연급 주인공이 아닌 단역들이 왜 일하는지, 그들이 마트에서 청소하고 계산하는 게 그들의 삶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그들의 입을 빌려 직접 전달한다. 그 장면 이후로 단지 일로만 만나던 이들은 서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맺고, 더 적극적인 저항에 나선다.


이러한 메시지는 영화의 다른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식사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밥을 먹는 것이 삶의 필수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공통점 삼아 밥을 생존을 위한 노동에 유비한다. 선희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혜미가 내미는 손도 거부한 채 악독같이 연장 근무에 나선다. 아들 '태영(도경수)'이 급식비를 내지 못해 점심을 못 먹는 상황이 되도록 일에 몰두한다. 또한 집에서 아이들과 밥을 먹을 때 그녀는 자신의 정규직 전환 여부에 신경이 팔려서 잔뜩 날이 선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을 챙겨야 하는 태영도 학교 친구인 '수경(지우)'이 내미는 호의(삼각김밥)를 거절한다. 이때 선희와 태영 모자에게 밥은 일처럼 철저히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동력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자신의 일만 챙겼던 그들은 일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자 마침내 깨닫는다. 나 혼자 열심히 일할 게 아니라 같이 일할 수 있어야 했다고. 홀로 아등바등할 것이 아니라 같은 처지인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그래야 불의와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이러한 변화도 식사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마트 점거 첫날선희는 미진, 순애와 함께 밥과 국을 나눠 먹는다. 억울하게 월급 받지 못한 자신을 대신해 편의점 창문을 깬 수경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태영과 그녀와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는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차갑고 날 서 있던 분위기는 누그러지고 그 자리는 따뜻하고 편안한 공기가 대신한다. 이에 더해 선희와 태영 모자도 그제야 밥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어러움을 나눠진다.



4. 이처럼 식사 장면에 담긴 메시지는 영화의 제목이자 끝을 장식하는 소품인 카트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사실 결말을 제외하면 작중 카트는 그저 배경이자 소품일 뿐 스토리의 중심에 위치하지 않는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영화라서 계속 화면에는 등장하지만 미묘하게 초점을 빗겨나간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나선 시위에서 언제나 존재하던 카트는 마침내 회사의 탄압을 강조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회를 향한 고함의 도구라는 의미를 찾는다. 단지 생존을 위한 동력에서 연대의 상징으로 변하는 식사 장면처럼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도출하면서 노동 운동도 늘 접하는 것일지 몰라도 살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현실에 충실하고 담담했던 영화의 묘사는 소재의 익숙함과 새로운 의미의 대조를 강조하면서 밥, 카트, 노동운동 간의 유비를 강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또한 경찰의 방패벽과 물대포를 향해 카트를 미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선희는 혜미와 함께 다. 정규직이었던 사람도, 대학생도, 노인도, 주부도. 남녀 가릴 것 없이 카트를 밀며 사회의 차별을 향해 함께 돌진한다. 이렇게 노동자의 연대라는 두 번째 주제를 강렬하게 전달하면서 <카트>의 결말은 왜 영화의 제목이 카트여야 했는지를 증명한다.



5. 다만 <카트>의 결말은 의도대로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해당 장면은 긴 슬로 모션과 애절하면서도 비장한 배경 음악이 더해진, 힘을 상당히 많이 준 극적인 연출로 이루어진다. 이 장면이 갖는 의미와 중요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전체적으로 담담한 어조와 감정을 억누르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을 고려할 때 다소 이질적인 마무리라는 아쉬움을 떨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메시지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나 현재나 노동문제를 다룬 영화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개봉했을 당시 80만 명가량의 흥행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문제의식에 관객들이 공감했다는 방증이다. 또한 불완전한 결말은 오히려 메시지의 생명력을 역으로 늘린다. <카트>의 결말은 작중 감정을 온전히 날 것으로 분출시키는 몇 안 되는 장면이라서 이질적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생생한 감정이 끊이지 않는 노동자 관련 뉴스를 만날 때, 이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고 본래 모두의 일이기도 한 노동자의 현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게 하는 힘이 된다. 



A(Acceptable, 무난함)

결말만 빼면, 누구나 경험한 현실을 착실히 쌓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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