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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an 05. 2021

<마리 퀴리> 한 편에 담기에는 과했던 욕심

<마리 퀴리> 리뷰

1.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 '마리(로자먼드 파이크)'는 뛰어난 재능과 연구 실적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과학을 연구할 재능이 없다는 프랑스 과학계의 뿌리 깊은 차별로 인해 연구실에서 쫓겨난다. 이에 평소 그녀의 연구를 눈여겨본 ‘피에르(샘 라일리)’는 공동 연구를 제안하고, 실험실 안에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랑을 키워 나간다. 고생 끝에 새로운 원소 라듐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 마리와 피에르는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고 암 치료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푼다. 그러나 피에르가 갑작스러운 죽고, 연구 결과로부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삶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선다. 


역사적 인물의 생애를 담은 전기 영화는 여러 형식을 취한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이야기가 펼치기도 하고,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내용을 풀어가기도 하며, 시간 순서를 뒤죽박죽 섞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전기 영화는 한 인물의 인생을 결코 2시간가량의 러닝타임에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공통의 전제 위에 위치한다. 그래서 한 가지 주제 아래로 여러 사건의 파편을 이어 붙여 새로운 모자이크화를 만들기 위한 선택과 집중은 전기 영화가 어떤 방식을 취하든 간에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이는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여 노벨물리학상을 타고, 금속 라듐을 분리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과학자의 일대기를 다룬 <마리 퀴리>가 놓친 대목이기도 하다. 



2. 전체적으로 볼 때 <마리 퀴리>가 본래 강조하려고 의도한 소재는 마리 퀴리 개인의 인생사 그 자체보다는 그녀의 업적인 방사능 물질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원래 제목이 'Radioactive', 즉 방사선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이는 명백하다. 영화는 그녀의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연구와 교수 임용, 노벨상 수상, 남편 피에르와의 로맨스와 사별 등을 라듐 발견 실험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형태로 제시한다. 또한 초반부에는 실험 과정이나 두 물질이 지닌 기능과 가능성에 대한 설명 등이 비교적 자세히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영화는 방사능 물질의 발견과 활용이 과연 인간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그 답을 깊숙이 고민한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마리의 인생과 시공간적으로 관련 없는 장면들이 삽입된 대목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방사능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은 미국의 한 병원에서 방사능을 이용한 의료용 기계가 처음으로 불치병 환자에게 사용되는 순간과 원자 폭탄 실험 및 실제로 폭격당하는 히로시마,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묘사로 나뉘어 등장한다. 연구가 진척될수록 자신의 연구 결과가 악용될까 봐 두려워하는 마리의 내적 고민과 이 장면들이 교차된 결과, 그녀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떠안아야 하는 과학 기술을 활용할 때의 책임과 부담의 무게는 충분히 부각된다. 이는 임종을 앞둔 마리가 히로시마에서 피폭 당해 괴로워하는 환자들이 가득한 병동의 참상을 목격할 때, 돌을 던져서 생기는 물결을 통제할 수 없다는 피에르의 위로가 비록 그녀에게는 충분하지 않을지 몰라도 관객에게는 최선의 마무리로 다가갈 수 있는 이유다. 



3. 문제는 국적, 염문, 젠더 문제 등 마리 퀴리의 개인사와 관련된 모든 사건을 어떻게 해서든 다루려고 한 결과 영화의 주제가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이다. 물론 마리 퀴리의 인생에 극적인 요소가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녀는 폴란드 출신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발견한 원소 이름을 폴로늄이라고 붙일 만큼 애국심이 깊었다. 남편과 사별한 후에 아이들을 키워내면서도 세계적인 역학으로 다시 한번 노벨상을 받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직접 전쟁터에 나가 부상병을 치료할 정도의 당찼으며, 그녀의 호기심과 헌신은 인류의 삶을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인간 마리 퀴리를 다층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가 일정 부분 깊이를 더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영화는 여성으로서 당시 끊이지 않았던 과학계의 성차별에 맞서야 했던 그녀의 상황을 전반부에서는 남편 피에르와의 관계, 후반부에서는 딸 아이린과의 관계 안에 녹여내면서 마리라는 한 인간과 현실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피에르와의 만남과 연애, 협업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동등한 파트너로 임하려던 그녀의 당당한 노력이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 장면은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는 한 인간을 보여준다. 반면에 과학자를 꿈꾸는 딸과 자신의 철학, 고뇌, 갈등 등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위로하는 대화를 나누거나 전쟁터에서 함께 부상병을 치료하는 장면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지속적인 여성들의 연대가 갖는 힘을 형상화한다. 그 결과 그녀의 연구와 교수 임용을 허가하지 않은 소르본 대학교의 결정에 당당히 문제 제기하는 것, 여자라는 이유로 노벨상 수상을 하지 못할 뻔한 사건을 이겨내는 장면 등에는 분명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4. 그러나 인간 마리 퀴리의 다양한 면모가 균형 잡힌 비중으로 다루어지지 않다 보니 이러한 카타르시스는 빛이 바랜다. 영화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때 주요 소재인 방사능 연구과 그 결과에 대한 고민은 양쪽에 걸쳐서 적절히 분배되어 있다. 그러나 피에르의 죽음 이후 그녀를 둘러싼 추문이나 여성으로서 마리의 삶을 다룬 내용은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피에르와의 관계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그녀와 딸들의 관계는 그 관계에 담긴 메시지의 무게감이나 의미에 비해 깊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영화는 마리 퀴리의 심적인 변화를 밀도 높게 보여주기보다는 그녀의 삶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사건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그 결과 스토리의 연속성과 주제의 일관성은 파괴되고, 결말에서 느껴져야 할 감흥 또한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번역된 제목이 원제와 전혀 관계없는 마리 퀴리로 정해진 것 역시 진중한 주제 의식은 희미해지고 그녀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나열한 평범한 전기영화가 되어버린 결과의 방증으로 볼 수 있다. 



5. 201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 도중 노예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은 바 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지만 수많은 낙선과 정치적 실패를 겪었고, 하나 된 미국을 남겼지만 끝내 암살당한 링컨의 다사다난한 인생을 적절히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개인적으로는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신념을 굽힐 줄도 알아야 했던 정치인 링컨의 모습과 백악관에 입성한 후 비극적인 가족사로 인해 슬퍼하는 인간 링컨의 모습을 모두 성공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이처럼 선택과 집중의 미덕을 선보인 <링컨>과 비교할 때 <마리 퀴리>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링컨이라는 인물의 역사적 중요성이나 그의 인생사에 담긴 극적 요소가 마리 퀴리의 그것보다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링컨>이 보여준 집약적인 구성이야말로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과욕을 버리지 못한 <마리 퀴리>에게 필요했던 덕목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리 퀴리>는 소소하게 흥미로운 소재를 놓치지 못해서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정교하게 가다듬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그 막을 내린다.  



P(Poor 형편없는)

준비한 내용을 막판에 급히 쏟아내는 프레젠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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