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 리뷰
1.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은 '안 부장(조우진)'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박보검)’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면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과거 정보국이 큰 트라우마를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헌은 임무를 받아들이지만,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고 도주하면서 서복과 특별한 동행을 시작한다. 엄청난 능력을 지닌 서복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집단의 추적이 거세지는 사이, 죽음이 가까워 오는 기헌과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복은 거듭 충돌하면서 점차 그들의 죽음과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조금씩 깨닫는다.
셸리 케이건 예일대학교수는 본인의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영혼이 실재하든 안 하든)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라고 썼다. 죽음은 삶을 끝내는 존재이기에, 역으로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의미다. 이 문장은 <건축학개론>으로 이름을 알린 이용주 감독의 9년 만의 복귀작, <서복>의 핵심을 찌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서복>은 대사와 캐릭터 설정 및 관계, 연출과 구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삶과 죽음, 유한함과 영원함에 대한 고민과 대화를 담아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2. 실제로 <서복>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과 삶의 의존적인 관계에 대한 사색을 담아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제목이다. 서복은 죽음을 두려워한 진시황으로부터 명을 받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쪽으로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남긴 인물이다. 이러한 서복의 이야기 덕분에 영화 제목에는 두 개의 메시지가 담긴다. 그 어떤 인물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그렇기에 유한성의 공포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무력할지언정 기록에 남을 만큼 아름답다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도는 이처럼 서복의 이야기에 담긴 삶과 죽음의 관계성을 시각화한다. 영화는 서복을 죽이려는 이와 살리려는 이 간의 대립 구도로 진행된다. 서복을 죽이려는 이들은 죽음이 있기에 삶이 가치가 있고, 그래야만 인간이 만든 세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로 살리려는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아끼고 그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하기에 역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양면의 동전 같은 죽음과 삶의 이면성, 즉 죽음이 있기에 삶이 가치가 있고 삶을 사는 것 역시 그 자체로 가치가 있기에 죽음이 두려워지는 아이러니가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3. 더 나아가 죽음을 피하려는 인물과 그 방법을 아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헌과 서복의 관계는 영화가 죽음의 의미에 대한 사색을 지속함에 있어서 특히 인상적이다. <서복>이 사실상 로드 무비나 다름없다 보니 기헌과 서복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 여행하는 사이 숨기고 있던 각자의 개인사를 털어놓는 장면에 유달리 진한 감정이 실리는 것이다. 이때 영화는 물이라는 상징을 이용한 연출을 통해 그들의 여정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기헌은 병뿐만 아니라 물에 빠져 죽는 악몽 때문에 크게 고통스러워한다. 동료를 배신하고 그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던 죄책감에 짓눌리는 기헌에게 물은 죽음과 다를 게 없다. 그런 그에게 서복과의 만남은 자신을 눌러오던 물의 무게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기회다. 실제로 기헌이 동해안의 한 해변에서 자신의 비겁했던 인생과 과오를 모두 고백할 때, 서복은 그를 향해 들이치는 파도를 막아 세워주면서 그가 조금씩 잃어가고 있던 살아야 하는 이유와 의지를 되살려준다.
한편 한 번 죽은 아이의 복제인간인 서복은 내내 자신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고민한다. 납골당에서 "그러지 말지.. 그런다고 내가 경윤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라며 한탄하는 그는 이내 "죽는다고 생각하면 두려워요. 하지만 영원히 산다는 것도 두려워요"라고 털어놓는다. 자신의 삶이 평범한 사람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죽음을 되돌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자신의 존재가 역으로 사람들로부터 삶의 의미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함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서복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되찾기 위해 여정을 함께한 기헌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기헌도 자신이 삶의 의미를 되찾은 파도가 들이치는 해변에 그를 묻어준다.
4. 문제는 <서복>이 펼쳐 보이는 드라마와 사색이 영화에 깊이를 더해주기보다는 지루함을 안기고, 대체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는 점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서복>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은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다.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두 남자의 애절한 브로맨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없이 재생산되어왔다. 당장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 속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대표적인 예시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역시 죽을 운명인 이와 그 죽음을 피하려는 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는 매들린 밀러의 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와 같은 작품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끊임없이 변형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더해 SF의 외피를 흉내 낼뿐, 그 알맹이를 전혀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도 완성도를 잡아먹는 요인이다. 영화를 지탱하는 과학적 상상력은 줄기세포를 통해 탄생한 초능력을 가진 복제 인간이라는 설정이 전부인데, 이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복제인간이라는 설정은 단지 캐릭터를 소개하고, "인간이 아니라 실험체에 불과하다"는 오래된 클리셰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에 그친다. 초능력 역시 단발성으로 액션과 눈요기를 보여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는 유사한 설정을 공유하는 <엑스맨>이 초능력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대한 메타포로 활용한 것, 로드무비라는 공통점을 지닌 <로건>이 죽지 않는 능력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것에 비할 수 없다. SF 영화가 철학적인 담론을 논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철학적 호기심과 논쟁을 과학적인 상상력에 기대어 풀어낼 때 비로소 SF 영화가 된다는 사실을 <서복>은 망각한 듯하다.
5. 결국 더 크고. 구체적이고, 새로운 사유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서복>의 가장 큰 문제다. 철학적 사색은 마치 윤리와 사상 교과서가 짧게 요약한 철학자들의 핵심 사상을 읊는 듯 삶과 죽음, 불멸과 필멸, 유한함과 무한함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을 단순히 제시할 뿐이다. 사유의 부족은 장르의 측면에서도 다르지 않다. 클리셰를 답습하는 SF 영화, 액션의 절대적 분량이 부족한 블록버스터, 거친 남자와 유약한 남자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그대로 따라 쓴 로드무비이자 브로맨스 영화라는 진부한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결과 <승리호>가 할리우드 중심의 상상력과 우주관을 일정 부분 탈피하는 것과 달리 <서복>은 나름대로 흥미롭고 진중한 주제를 가지고도 한국 SF 영화의 한계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데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