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첩보 임무에서 은퇴하고 아내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아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도미닉(빈 디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집에 찾아온 '테즈(루다크리스)', '로만(타이레스 깁슨)', '램지(나탈리 엠마뉴엘)'로부터 든든한 조력자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이 사건에 의절한 동생 '제이콥(존 시나)'과 과거의 적이었던 '사이퍼(샤를리즈 테론)'가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동생을 막지 않으면 전 세계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져들 상황에서 도미닉은 자신처럼 은퇴했던 여동생 '미아(조다나 브류스터)'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 '한(성 강)'을 포함해 모든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지상은 물론 공중에서도 제이콥을 저지하기 위한 미션에 나선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정체성은 흔히 한계를 모르는 자동차 액션에 국한된다. 실제로 그간 도미닉 토레토와 그의 동료들, 곧 '도미닉 패밀리'는 차를 탄 채 탱크, 비행기 및 잠수함과 전투를 벌이는 액션을 펼쳤다. 이는 시리즈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현실과 상상의 기준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킴으로써 큰 인기를 불러 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사실 실망스럽다. <분노의 질주>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스펙터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방탄 트레일러와의 추격전이 비행기, 미사일 드론, 잠수함 순으로 상대할 적이 점점 강해지던 흐름에 발맞춰 덩달아 부픈 기대감을 채워주는 것은 무리다. 이에 더해 비록 개연성과 현실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시리즈의 매력이라고는 하나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면 지뢰가 터지지 않는다거나 거대한 전자석이 만능 치트키로 기능하는 것, 심지어 차를 개조해 우주로 나가는 등 물리 법칙을 철저히 무시하는 액션 구성은 그 매력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를 액션 영화 이전에 토레토 '식구'의 드라마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경우 그 실망감은 줄어든다. 5,6 편에서 도미닉 패밀리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묘사하는 데 공들였던 저스틴 린 감독이 복귀하면서 영화의 포커스가 다시 한번 토레토 가족의 드라마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옛날 버전 로고가 암시하듯 영화의 중심에는 시리즈의 버팀목 도미닉과 새롭게 등장한 그의 동생 제이콥의 과거사가 위치한다. 카 레이싱 선수였던 아버지를 도와 차량 정비를 맡았던 도미닉과 제이콥. 그러나 레이싱 도중 차량이 폭발해 아버지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돔은 제이콥이 가장 마지막으로 엔진을 손봤다는 이유로 그가 가족을 배신했다고 단정지은 후, 그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쫓는다.
특히 영화는 성경 속에 등장한 여러 형제들의 이야기를 빌려와 십자가 목걸이를 나누어 끼는 토레토 형제의 서사에 깊이와 개연성을 더한다. 우선 제이콥의 서사는 이름의 기원이기도 한 야곱의 이야기의 변형과 다름없다. 야곱은 형 에사오가 아버지 이사악으로부터 받아야 할 축복을 속임수로 훔친 후 형의 보복을 피해 가족을 떠난다. 삼촌의 도움을 받아 자립한 그는 긴 시간이 지난 후 건실한 가정을 일군 형과 재회한 자리에서 선물과 축복을 건네며 화해하고, 이내 헤어져 자신의 삶을 개척하러 떠난다.
이때 제이콥의 서사는 야곱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축복을 아버지에 대한 진실로 바꾼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도미닉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제이콥은 형을 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서도 빚을 승부조작으로 갚기 위해 엔진을 몰래 고장 내라던 아버지의 부탁대로 움직인 그는 아버지의 사망이 단지 사고였다는 진실을 끝내 밝히지 않으며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다. 대신 그는 형과의 레이싱에서 패한 뒤 곧장 가족을 떠나고, 긴 시간이 흘러 재회했을 때는 그간 감추었던 아버지와의 진실을 형에게 알려주면서 증오하면서도 그리워하던 가족을 되찾기 위한 물꼬를 튼다.
한편 형제 중 형인 도미닉의 서사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 속 첫째 아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비유를 보면 형은 자신 몫의 재산을 탕진한 동생을 비난한다. 또한 그는 동생을 다시 찾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 곁에 끝까지 남아 첫째 역할을 다했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그는 다시 얻게 된 동생을 반기는 대신 그가 돌아와 자신의 재산만 축낸다는 불만과 무자비함을 표할 뿐이다.
도미닉도 마찬가지다. 그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감옥에서 출소한 후 카 레이싱 출발선에서 재회했을 때도, 파티에서 제이콥을 만났을 때도, 그를 붙잡아서 자신들의 기지로 데려온 후에도 그의 태도는 항상 같다. 도미닉은 자신이 토레토의 이름과 명예를 지켜왔고, 제이콥은 절대 용서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는 독단적인 태도에 사로잡혀 있다. 제이콥이 가족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죄를 지었다고 확신할 뿐, 자신이 바로 그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이콥이 형에게 진실을 알려 줄 용기가 있는 야곱이었던 것처럼, 도미닉도 끝까지 탕자의 형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그는 마치 세례를 받듯이 물속에 들어가서 잘못을 마주하고, 이를 씻어낸다. 그는 현재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 물에 뛰어든 과거의 기억을 마주한다. 자신이 몰랐던, 혹은 제이콥이 알려 주었는데도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 동생, 그리고 아버지 사이의 진실을 모두 깨닫고 토레토 가족을 망가뜨린 것은 자신임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물 밖으로 나온 그는 뒤늦게나마 제이콥에게 아버지의 차 열쇠를 건네고 시리즈 내내 지켜온 가족이 아닌, 한 차례 잃었던 본래 가족을 회복한다.
흥미로운 것은 토레토 가족의 과거사가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돔의 크루들, '도미닉 패밀리'의 서사로도 확장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가족의 회복, 재회라는 키워드 안에서 과거에 끊어졌던 인연들을 어떻게든 복구하고, 집합시킨다. 7편에서 죽은 줄 알았던 한은 살아 돌아와 다시 돔의 크루에 합류하고, 3편인 <도쿄 드리프트> 크루들도 로켓 엔진을 들고 시리즈에 복귀하며, 5편에서 리우의 은행 금고를 함께 훔쳤던 레오와 산토스도 돔과의 과거 인연을 통해 모습을 비춘다. 마지막으로 '브라이언(폴 워커)'의 등장은 여전히 큰 감동을 준다.
물론 돔의 이야기에 더해 그들의 사연을 녹여내야 하다 보니 시리즈 팬이 아니라면 과거 회상 장면이 지나치게 많아서 영화가 늘어진다고 여길 여지는 있다. 그러나 돔의 진한 가족애가 본래 가족을 지키지 못한 과거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었기에, 모든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 기도를 하고 밥을 먹는 장면은 억지스럽고 갑작스러운 듯 보이면서도 끝끝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자동차처럼 가족도 꾸준히 가꾸고 관리하면 결코 흩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대사가 영화 내외적으로 실현된 셈이다.
이는 영화가 액션씬을 활용하는 방법에서도 드러난다. 시리즈의 상징이었지만 점점 비중이 줄고, 심지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생긴 카 레이싱은 다시 영화 전면에 나선다. 이때 레이싱 장면은 전부 과거 시점에서 토레토 가족이 분열하게 된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등장한다. 그간 브라이언과 도미닉 토레토, 그리고 도미닉 패밀리가 카 레이싱을 통해 점점 늘어났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카 레이싱 장면은 가족의 해체와 만남이라는 대조를 통해 액션과 가족애라는 시리즈의 두 정체성을 한 데 담아내는 인상적인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분노의 질주 9>가 본래 제시하려던 이야기와 메시지를 세련되게 스크린에 녹여내지 못한 점은 액션의 의미와 별개로 양질의 액션이 부족한 것만큼이나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당장 영화의 포커스가 돔과 제이콥, 한 등 몇몇 인물들에게만 맞춰져 있는데도 제이콥이 돔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에 대한 최소한의 상황 설명만 나올 정도로 스토리 전개가 지나치게 빠르고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이미 몸집이 거대한 시리즈다 보니 나머지 캐릭터들의 서사가 지나치게 간소화되는 문제도 피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두 형제의 또 다른 가족인 미아는 그들의 과거사에 끼지 못하고 밖으로 돈다. 두 형제간의 갈등과 화해의 서사가 메인인데도 그녀의 과거사를 그저 독백 몇 마디로 해결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전편에 이어 흑막으로 등장한 사이퍼는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배우 특유의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제이콥의 조력자인 오토가 그를 배신하는 과정도 묘사가 매우 적다. 미스터 노바디가 모든 설정 구멍을 메워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활용되는 것이나 로만과 테즈 등이 단순한 개그 캐릭터로 전락한 것도 마찬가지다.
토레토 가족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과거사를 통해 돔의 크루를 한 자리에 모두 집합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시리즈의 난맥상을 정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여러 감독이 오가면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통일성을 잃고, 첫 시작으로부터 정체성도 크게 변한 상태였다. 브라이언과 한이라는 큰 인기를 모은 주조연 캐릭터가 각각 퇴장해 이야기의 풍부함도 부족했다. 그렇기에 저스틴 린 감독과 오래된 캐릭터들의 복귀를 통해 액션보다는 가족 드라마를 강조한 선택은 이 난관을 정리하고 두 편이 더 개봉할 예정인 프랜차이즈를 안정적으로 끝맺을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승부수인 것이다.
사실 이 시도를 온전히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양질의 액션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드라마도 의도와는 별개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쿠키 영상에서 예고된 속편을 끝끝내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최소한의 성과를 챙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