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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an 07. 2022

<램> 종교, 인간, 자연 사이를 경계 없이 넘나들다

<램>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눈 폭풍이 휘몰아치던 크리스마스 날 밤 이후 '마리아(누미 라파스)'와 '잉그바르(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부부는 양 목장에서 태어난 신비한 아이 '아다'를 선물 받는다. 새끼 양과 인간의 모습이 공존하는 이해할 수 없는 형상을 한 아다이지만, 이미 한 차례 아이를 잃은 바 있는 부부는 아다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푼다. 그러나 우연히 주어진 선물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리아는 점차 아다에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그녀의 집착은 잉그바르의 형 '피에튀르(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의 등장과 함께 절정에 도달하면서 비극의 시작을 알린다.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의 공포 영화 <램>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된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밤을 배경으로 하는 첫 장면부터 그렇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목장을 찾아온 뒤 한 마리의 양이 임신을 하고, 반은 양이고 반은 인간인 아기 아다를 낳는다. 기독교 교리상 예수가 완전한 신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는 상이한 특성이 공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아다의 존재는 예수에 대한 비유로 보인다. 예수가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인간의 죄를 씻어낸다는 점에서 예수가 흔히 어린양에 비유된다는 점, 아다를 입양한 여성 주인공의 이름이 다름 아닌 마리아인 점도 영화에 기독교적 색채를 더한다.



하지만 영화가 성경의 상징을 빌려왔을 뿐 내용까지 반복하지는 않기에 <램>은 종교적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관점으로 해석 가능하다. 우선 종교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램>은 신의 섭리에 도전한 인간을 향한 징벌을 다룬 영화로 볼 수 있다. 마리아와 잉그바르는 우연히 입양하게 된 아다가 본인들이 잃은 아이 대신 찾아온 축복이라고 생각해 극진한 사랑을 베푼다. 그런 그들에게, 특히 마리아에게 아이를 그리워하는 울음소리를 내는 어미 양의 존재는 자신의 모성애를 위협하는 존재라서 거슬릴 따름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미 양을 죽인다. 앞서 보았듯이 아다가 예수의 알레고리라면 어미 양은 마리아에게 예수를 보내준 신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런 마리아의 행동은 신이 정한 소명을 거부하고 신에게 도전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마리아와 잉그바르가 잠시 아다를 잃어버리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부부가 잠시 각자의 생업을 하느라 아다를 신경 쓰지 못한 사이 아다는 사라지고, 아다를 찾아 헤매던 부부는 초원에서 어미 양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다를 발견한다. 이는 요셉과 마리아가 12살이 된 예수를 예루살렘에서 잃어버렸다가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하는 예수를 발견한 사건과 동일해 보인다. 특히 엄마 양과 함께 있는 아다의 모습은 신이 아버지(하느님)의 집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느냐고 되묻는 어린 예수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그런데 그 직후 두 마리아의 행동은 정반대다. 성경 속 마리아가 이 모든 사건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신에게 순응하는 반면, 영화 속 마리아는 어미 양이 아다를 뺏으려 했다고 여기며 화를 내고 내쫓으려고 한다. 그 외에도 간음과 같은 마리아의 다른 죄가 묘사되는 것까지 고려하면, 영화의 결말은 자신이 거부한 신에 의해 징벌 혹은 응징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램>은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성경의 이야기 구조를 뒤튼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기에 오히려 자유의지와 욕구라는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영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는 대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화면과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춘 효과이기도 하다. 영화 내에서는 특정 상황 또는 장면의 의미가 무엇이다라고 명확히 대사로 정의하는 대목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은 받아들이는 관객의 생각과 상황, 선입견과 편견에 따라 그 의미가 정반대로 달라질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마리아의 모성애다. 이미 한 차례 상실을 겪은 바 있는 그녀는 뜻밖에 주어진 아다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여 그 상실감을 채우려고 한다. 이때 아다가 온전한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에 마리아에게는 그를 양으로 키울지 아니면 인간으로 키울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녀는 모성애라는 감정과 욕구에 충실한 선택을 한다. 즉, 갓 태어난 아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고 깊이 슬퍼하는 것이 운명이었다면, 그녀가 아다를 입양하는 것은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개척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두드러진다. 신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추구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저 신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에게 닥친 비극 같던 영화의 결말도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영화는 모든 사건이 끝나고 다소 허망해 보이는 표정을 짓던 마리아가 눈을 감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뱉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는 마치 상실과 슬픔으로 정해진 길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 더 큰 상실이라는 비극으로 되돌아오더라도, 마냥 운명에 순응할 수는 없다는 인간의 모순적이고 갑갑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더 나아가 아이슬란드의 자연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 방식은 마리와 아다의 이야기를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보다 넓은 시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사실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로 가득하다. 마리아와 잉그바르 부부를 제외한 모든 것으로부터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이 지닌 초자연성이 드러난다. 죽은 것이 부활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존재가 생명을 선사하며, 한 대상이 전혀 다른 대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는 이러한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광활한 초원, 높은 산맥과 그 산마저 가려버리는 짙은 안갯속에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결과 자연이 지닌 초자연적 힘은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처럼 보인다. 제도 종교에서 정의하는 신의 모습이나 규율, 교리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광활하고 광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저항할 수 없고 굴복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살 수 있지만, 자신들의 선택이 낳은 자연의 결과와 반응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존재이기에 겸허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자연의 힘 앞에 압도되는 분위기는 <램>이 통상적인 호러 영화는 결이 다르더라도 결국 '호러' 영화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영화의 내용이나 구조, 주제와는 별개로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램>은 실망스러운 작품일 수 있다. 좋게 말하면 관객들의 니즈를 잘 캐치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낚시를 잘했기 때문이다. <램>의 포스터를 보면 미국의 독립영화제작사인 A24의 로고가 강조되어 있다. A24가 <유전>, <미드 소마>처럼 예술성과 독창성을 모두 인정받은 공포영화를 제작해 관객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사실을 셀링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문제는 A24가 <램>의 배급사이기는 하나 제작사는 아니라는 것이고, 그 결과 <램>은 여러모로 기대와는 다른 영화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영화를 그 자체로 온전히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종교와 인간, 자연과 인간 사이의 모호한 경계와 관계를 넘나드는 영화이고, 영화의 형식도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보니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신중하게 끈기를 가진 채 이 기묘한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 번의 관람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난해함과 고민 끝에 무수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 <램>만의 매력임을 인정하고 나면, 왜 이 영화가 제74회 칸영화제서 독창성상을 수상하고 제54회 시체스영화제에서는 작품상, 여우주연상, 신인감독상 3관왕을 차지했는지 그 이유를 실감하는 것만큼은 어렵지 않다. 



A(Acceptable 무난함)

수없이 곱씹어야 느껴지는 결이 다른 공포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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