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라운드>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촉망받던 역사학도였으나 지금은 일상에 찌들어 무기력해진 고교 교사 '마르틴(매즈 미켈슨)'. 그는 각각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와 함께 한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흥미로운 심리학 가설을 듣는다.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쯤 부족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정도를 채워주면 더욱 편안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 직접 실험에 나선 마르틴은 음주가 지루한 수업과 가족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후일담을 전해준다. 이에 네 친구는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하고,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한 뒤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에서 탈피하기 위한 본격적인 실험에 나선다.
현대 사회로 오면 올 수록 술에 대한 인식은 점차 부정적으로 변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술의 정(精)이여! 너에게 아직 이름이 없다면 앞으로 너를 악마라고 부를 테다"라고 외친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2011년에 술은 세계보건기구(WHO) 선정 1급 발암물질이 되기도 했다. 특히 술에 의존하는 경향은 구하기 쉽다는 접근성과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오래도록 쓰인 문화적 특징과 결부되어 사회적, 개인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해서인지 많은 창작물에서도 술은 흔히 파국을 불러오는 소재로 활용되어 왔다.
반면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고, 지난 19일에 개봉한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결이 다소 다르다. 덴마크 대표 배우인 매즈 미켈슨과 토마스 빈터버그 감독이 <더 헌트> 이후 처음 합작한 이 영화의 종착역은 쌉싸름함 속에 달콤함이 깃든 다크 초콜릿처럼 마냥 행복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술 내음이 가시지 않는 데도 말이다. 실제로 술이 등장하기 전 마르틴과 그의 친구들의 일상은 잿빛이다. 그러나 보드카·와인·샴페인 등이 등장하자 스크린에는 활기가 돌고, 색채가 살아난다. 왜 그럴까? 이는 <어나더 라운드>가 단지 술 문화 그 자체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술을 매개로 흔히 간과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삶의 태도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나더 라운드>는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두 신의 이름을 빌려 술을 둘러싼 네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폴론은 시와 음악의 신이자, 빛의 신이고, 또 질서와 진리의 신이다. 이처럼 다양한 아폴론의 신격은 그의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통해 하나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다. 이 문구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로서 신들과는 얼마나 다른지를 알라는 격언으로, 인간의 본성적 한계를 강조한다. 달리 말해 아폴론은 한계와 한도를 통해 무질서에 맞서 질서를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관장하는 예술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일정한 한도와 질서라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수단이나 다름없다. 즉, 시와 음악을 관장하는 그의 역할은 개인적으로는 몸을 훈련시키는 체육처럼 영혼을 갈고닦는 교육의 기능에 속하고, 더 넓게는 이성을 통해 세계의 진리를 인식하는 지성적 목적을 갖는다.
실제로 영화는 이러한 아폴론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영화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학교인 것만 해도 그렇다. 학교라는 공간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질서를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대학교 정장에 'VERITAS LUX MEA', 곧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이 단적인 예시다. 네 친구가 각각 역사, 체육, 심리학, 음악 등 그의 신격과 관련된 영역의 교사인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질서와 진리를 강조하는 신의 가치가 지배적인 공간과 직업답게, 그 안에서 지내는 구성원들에게도 강력한 규칙과 규율이 적용된다. 제 몫을 다해내지 못하면 교사들은 면담을 통해 학부모들로부터 직접 컴플레인을 들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학업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학생은 졸업 대신 재수강을 반복해야 한다. 당연히 술의 존재 역시 학교에서는 언급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금기시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질서가 확고한 공간 안에서 작중 구성원들은 행복해지는 대신 오히려 피폐해진다는 점이다. 교사라는 직업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교사는 그 무기력함이 가족 관계로 번지는 것마저 막아서지 못한다.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아버지는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토로한다. 졸업 시험에서 거듭 낙제를 경험했던 학생은 극도의 공포심에 휩싸이며, 축구팀 내에 스며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 어린아이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이러한 공통의 좌절감은 이들의 이야기가 단지 학교 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처럼 강력한 질서와 규율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되는 기반이 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술을 매개로 포도주의 신이자 축제, 광기, 야성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를 불러온다.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을 산과 들로 이끌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게 하면서 열광과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신이다. 그는 질서와 같은 이성적 틀이 사람들의 삶에 가하는 억압으로부터 자연스러운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춤과 노래의 인도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감정이라는 삶의 생명력으로부터 반지성적 목적을 이루려 한 것이다. 이는 그가 포도주로 상징되는 비이성적인 도취 상태로 사람들을 이끄는 신인 이유다.
그래서 <어나더 라운드> 속 술 역시 단순한 일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형화된 삶 속에서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진정으로 삶을 살아있게 하는 그 의지를 일깨우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마르틴이 술을 마신 이후로 크게 세 가지의 삶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그려낸다. 우선 인생에서 지나가 버린 젊음이다.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마치 젊은 적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한다. 다음으로는 그간 손 놓고 있었던 관계다. 아내와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거나 오래간만에 가족 여행을 계획한다. 마지막은 잃어버렸던 열정이다. 수업 진도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시험 문제 출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마르틴. 그러나 그는 이제 실험적인 강의 방식을 통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과거의 본인이 품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전해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의 신격과 그 함의는 마르틴이 항구에서 술 마시며 춤추는 마지막 장면에서 제대로 분출된다. 고대에 이루어지던 디오니소스 제의 중에는 “코레이아”(choreia)라고 불리던 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해당 장면이 바로 시, 음악, 무용의 원시적 융합 형태였던 코레이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코레이아가 춤추는 자의 영혼을 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마르틴의 춤은 더욱 인상적이다. 매즈 미켈슨이 젊은 시절 기계체조를 배우고 무용수로 활동하던 경력을 발휘해 재즈 발레를 추는 사이, 무기력했던 마르틴의 삶에는 활력이 돌고, 그의 무채색 일상에는 빛이 들어오며, 그의 삶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간다. 술로 인해 인생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는 이처럼 아폴론의 가치에 눌려 있었던 디오니소스적 삶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에 비로소 완결된다. 이는 영화 속 술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대신, 영화가 끝날 때 제목대로 “한 잔씩 더(Another Round)!”를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다.
물론 <어나더 라운드>가 마냥 술과 디오니소스가 대변하는 삶의 태도를 긍정하지는 않는다. 네 친구의 실험은 그들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고, 그들은 술을 통제하지 못하며 온갖 사고를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굳이 점차 터부시 되는 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때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본성에 대한 합당한 배려가 결여될 경우,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제나 술과 같은 쉼터, 혹은 탈출구를 경시하지 않고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술과 술의 신의 이름으로 통찰하면서 <어나더 라운드>는 사회적,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길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