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매버릭>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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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을 계속하기 위해 진급을 거부하고 현역 파일럿으로 남은 '피트 매버릭 미첼(톰 크루즈)' 대령. 그는 최신형 전투기 다크스타의 시험 비행 도중 독불장군답게 사고를 저지르고, 자신이 졸업한 탑건 학교의 교관으로 전출을 간다. 오랜만에 도착한 학교에서 우라늄 시설 폭격 작전에 투입될 12명의 파일럿을 훈련시키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그는 옛 연인인 '페니(제니퍼 코넬리)'를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 과거에 순직한 동료의 아들인 '루스터(마일즈 텔러)'가 12명의 파일럿에 속한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훈련은 난항을 겪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 빨라진 작전일자 때문에 매버릭과 그의 파일럿들은 더욱 패닉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이 가르친 동료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본인의 목숨을 걸고 그들을 생환시키기 위한 비행에 나선다.
톰 크루즈와 함께 36년 만에 돌아온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 'Top Gun Anthem'과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이 들리는 가운데 함재기들의 이착륙을 비추며 시작한 영화는 곧장 매버릭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신형 극초음속 전투기 개발 사업인 '다크스타'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던 매버릭은 마하 10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폐기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에 독단적으로 마하 10 시험 비행을 하고, 멋지게 성공하며 다크스타 프로그램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매버릭의 행동에 격노한 '케인(에드 해리스)' 소장은 그를 탑건 학교로 전출시켜버리면서 그의 노력도 무의미하다고 일갈한다. 어차피 드론이 파일럿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매버릭은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은 아닙니다."
전편의 오프닝을 고스란히 옮겨 온 오프닝 시퀀스와 뒤따라 나오는 이 짧은 대화는 긴 세월을 기다린 속편이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이고 동시에 단독 작품으로서의 <탑건: 매버릭>을 설명하는 완벽한 도입부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에는 아날로그적 액션이 그 어느 때보다 박력 넘치고 강렬한 이유, 그리고 마침내 당도한 속편이 향수와 동시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로 무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모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는 매버릭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본인이 원하면 별도 두 개는 족히 달았을 미 해군의 전설적인 파일럿. 그러나 그는 수많은 훈장이 방증하듯이 과거의 영웅이다. 케인 소장의 지적처럼 명령에 불복하는 파일럿보다 더 충실한 드론이 등장한 시대에 과거의 영웅이 있을 자리는 이제 없다. 그래서 다크스타를 몰고 마하 10에 도달한 것이 전설의 건재함을 보여준다면, 마하 10 이상에 도전했을 때 전투기가 폭발하는 것은 과거의 유산이 서 있을 자리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런데 매버릭의 위기는 사실 그저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에 뒤처진다는 이유로 존재와 의미를 부정당하는 과거의 유산은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매장에서 직원의 자리는 키오스크가 대신하고, 종이 영수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메신저 알람이 대신한다. 우리의 미래는 현재에서 과거의 모습을 철저히 지우고 새로운 것으로 가득해진다. 이는 사람들이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과거를 폐기할 때 현재가 등장하고, 거기서 한 발짝 더 진보할 때 미래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시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매버릭과 케인 소장의 충돌은 단지 유인 전투기와 드론 사이의 논쟁과 대립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 넓은 관점에서 과거와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탑건: 매버릭>은 일반적인 통념을 벗어난 답을 내놓는다. 영화는 과거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야 한다고 말한다. 매번 반복되는 과거를 직시할 때 비로소 새로운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주제 의식으로 무장한다. 마치 "시간 자체도 하나의 둥근 고리"라며 순환론적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니체의 영원회귀 신화처럼. 그래서 영화는 2막의 시작과 동시에 매버릭을 그가 30여 년 전에 졸업한 탑건 학교로 보낸다. 과거로 되돌아가고, 과거를 새로 겪으면서 그가 미래에도 유의미해질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만든다.
그래서 <탑건: 매버릭>은 전편의 구조, 장면, 상황을 되풀이한다. 시간대만 달라졌을 뿐 사실상 동일한 상황 속에 매버릭을 던져 놓는다. 사고를 친 후 탑건 학교로 좌천되고, 탑건 학교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깊이 좌절하지만, 끝내 극복하고 실전에 투입되는 흐름이었던 전편의 구성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실 오마주로 가득한 구성은 자칫 영화 전체를 진부한 클리셰 덩어리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탑건: 매버릭>은 전편의 내용과 과거의 사건을 반복하는 이야기를 파일럿으로서의 매버릭, 인간으로서의 매버릭으로 나누어 보여줌으로써 그 함정도 피해 간다.
우선 파일럿으로서의 매버릭은 과거의 사건들을 다시 직면한다. 교관으로 불려 와 적국의 우라늄 원자로를 파괴하는 작전을 12명의 파일럿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임무를 알게 된 매버릭. 그는 이 작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건이 본인이 실전에서 직접 경험해 본 사건들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훈련 과정에서도 그는 자신의 과거를 조우한다. 그는 최고 중의 최고만 모인 파일럿들에게 기초적인 도그파이트 훈련부터 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30여 년 전 자신이 그랬듯 윙맨을 희생해 적을 격추하는 전술을 구가하는 파일럿을 오래간만에 상대한다.
한편 그의 훈련은 반복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는 2분 30초라는 시간제한이 있는 작전을 수없이 반복 학습시키며 파일럿들을 숙달시킨다. 실제 작전과 같은 상황 계획 속에 그들을 거듭 던져 놓는다. 이미 겪었던 상황을 다시 출발점에서 경험하도록 만들고, 결승점에서는 이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게 훈련시킨다. 누군가는 처참히 실패하고, 누군가는 팀원과의 불화로 실패하고, 누군가는 신체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지만 같은 훈련을 반복하면서 파일럿들은 조금씩 차이를 만들어낸다. 또 각자의 자존심만 내세우던 파일럿들이 한 팀이 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전편의 비치발리볼 장면을 비치 풋볼로 바꿔서 등장시킨다.
한 인간으로서의 매버릭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돌아올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탑건 학교에 귀환한 그는 학교 근처 바에서 ‘페니’ 벤자민을 만난다. 전편에서 헤어진 여자 친구로 언급되었던 그녀와의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나간다. 매버릭 특유의 미소를 짓지 말라는 페니와 그런데도 굴하지 않는 매버릭의 모습은 이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페니는 전편의 여주인공이었던 쿠거가 그랬듯이 좌절에 빠진 매버릭을 수렁에서 구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매버릭은 몇십 년째 그를 괴롭히던 트라우마를 루스터의 모습으로 마주한다. 전편에서 전투기를 탈출하던 도중 윙맨이자 절친이었던 구스를 사고로 떠나보내야 했던 매버릭. 그는 구스를 똑 닮은 그의 아들 루스터가 훈련받을 12명의 파일럿 중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된다. 페니의 바에서 아버지 구스의 애창곡이었던 "Great Balls of Fire"를 부르는 루스터를 지켜보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대면한 매버릭. 그는 오랜 기간 그래 왔듯이 루스터를 보호기로 결심하고, 작전의 성공만큼이나 생존하여 귀환하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트라우마가 매버릭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 아버지를 잃은 루스터는 아버지를 지켜주지 못했던 매버릭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으며 자신을 지켜주려는 매버릭의 관심을 외면한다. 이렇게 과거의 트라우마 안에 함께 갇힌 이들의 골은 훈련 중 함께 추락하는 듯한 장면만큼이나 깊어진다.
이처럼 수없이 등장하는 오마주, 곧 과거의 사건들은 훈련 교관이었던 매버릭이 끝내 작전의 한가운데에 서는 것에서 눈치챌 수 있듯 영화의 3막인 실제 작전에서 한데 얽히고설킨다. 그래서 <탑건: 매버릭>의 박력 넘치는 액션 시퀀스는 단지 눈 호강일 뿐만 아니라 가슴 벅차오르는 뜨거운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물론 20여 분간 쉼 없이 이어지는 액션 시퀀스는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다. 줄곧 연습하던 작전을 실제로 실행하는 그 순간의 가슴 멎을 듯한 긴장감, 작전 이후 뒤따르는 지대공 미사일과의 목숨을 건 사투, 그리고 성능의 차이가 큰 전투기 간의 살 떨리는 도그파이트 장면까지. 고막을 때리는 굉음과 눈을 사로잡는 회피 기동과 폭발이 한데 뒤엉키기 시작하면 좀처럼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은 화려한 포장지일 뿐, 그 알맹이는 매버릭과 루스터의 트라우마 극복기라고 할 수 있다. 매버릭은 구스처럼 죽을 위기에 빠진 루스터를 구하고, 루스터는 생각하지 말라는 매버릭의 조언을 받아들여 본능적으로 전투기를 비행하고 매버릭을 구한다. 또 생환하기 위해 2인 1조로 전투기를 조종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오래전 매버릭과 구스의 팀플레이가 겹쳐 보인다. 이러한 액션씬은 결국 과거는 반복되기 마련이고 인간은 시간이라는 고리 안에서 특정 순간으로 계속 되돌아오지만, 영원 회귀하는 시간 안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갖는 사건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순간의 무게와 책임을 견뎌낼 때,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초인'이 되어 과거와 트라우마의 늪에서 벗어나 새 미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같은 사건을 마주해도 다르게 채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매버릭의 오랜 동료인 아이스맨이 남긴 "과거를 잊을 때가 되었다"라는 충고의 진의일 것이다.
적군의 F-14 톰캣을 탄 채 귀환을 시도하는 둘의 모습은 이러한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준다. F-14 톰캣은 성능만 놓고 보면 적군의 5세대 전투기를 이길 수 없는 고물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미래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시간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되풀이되는 시간에 새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처럼 이 도그파이트에서 중요한 것은 전투기가 아니라 파일럿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두 파일럿은 시간의 흐름에 압도되지 않고,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최신 전투기와 치열한 싸움을 펼칠 수 있다. 이는 영화의 결말에서도 다시 한번 반복된다. 1950년대에나 쓰던 P-51 머스탱을 함께 타고 노을 지는 현재를 즐기는 매버릭과 페니. 이처럼 다시 만난 옛 연인과 과거의 유산 안에서 미래의 사랑을 꽃피우는 장면은 도입부에서 던진 물음에 대한 완벽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제는 단지 주인공인 매버릭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에도 해당된다. 달리 말해 <탑건: 매버릭>은 자신을 둘러싼 의구심에 맞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먼저 개봉한 미국에서 들려온 극찬 덕분에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사실 제작이 발표됐을 때 이 영화를 둘러싼 걱정은 상당했다. 오마주로 가득한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의 리메이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나 과거의 명작을 미래에 맞게 일신한다는 목적으로 과거를 부정하다가 결국 실패를 맛본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탑건: 매버릭>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굳이 시대에 맞게 무언가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과거에 좋았던 점들을 더 멋지게 만들어서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영화는 좋아진 기술력을 자랑하는 만큼이나 오래전 감성으로 가득하다. 누르스름한 시각적 묘사와 영화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장면들은 80년대의 흐름과 분위기를 그대로 재연해내며, 이는 노을 속에 올라오는 토니 스콧 감독을 향한 추모의 메시지로 완성된다.
대신 과거의 매력을 접하는 이들이 알아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즐기도록 유도했다. 그 덕분에 <탑건: 매버릭>은 그저 추억을 되풀이하는, 향수를 자극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과거를 폐기하지 않는 대신 반복하는 현재가 얼마나 가슴 뜨거울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며, 다음 이야기는 또 무엇일까 하고 자연히 꿈꾸게 만든다. 이렇게 영원 회귀의 시간 속에서 <탑건: 매버릭>은 할리우드의 힘을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신화를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