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일상과 업무 사이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회사원 ‘나미(천우희)’.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과음한 그녀는 집으로 가던 중 버스에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을 잃어버린다. 나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스마트폰을 찾기 시작하고, 운이 좋게도 '준영(임시완)'의 도움을 받아 핸드폰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나미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 있었으니, 바로 준영이 그녀의 핸드폰에 스파이웨어를 설치했다는 것. 스마트폰 덕분에 나미의 취미, 취향, 직업, 동선, 경제력, 인간관계 등을 모두 알아낸 준영은 자기 정체를 숨긴 채 그녀에게 접근하고, ‘나미’의 일상은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한편, 살인 사건을 쫓는 형사 ‘우지만(김희원)'은 사건 현장에서 아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을 따라 준영을 몰래 조사하기 시작한다.
사회가 빠르게 디지털화될수록, 해킹과 같은 디지털 범죄 역시 일상에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뉴스는 매일 같이 통신사나 은행, 공공기관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SNS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로그인을 시도했다는 알람을 확인하거나, 해외 결제가 됐으니 확인해 보라며 알 수 없는 링크를 보내는 문자를 받는 일도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과 별개로 디지털 범죄의 위험성은 간과할 수 없다. 일상에서 누구든 당할 수 있으며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김태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이 불안감을 장르적으로 풀어낸 스릴러다.
사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소재는 신선하지 않다. 작년에 개봉한 <유포자들>처럼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거나 해킹당한 피해자의 두려움을 조명한 작품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성패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과의 차이점에 달려 있다. 실제로 영화는 두 가지 차별점을 내세운다. 우선 초반부에 집중된 피해자 나미의 일상 묘사가 있다. 해킹 피해가 더 이상 특별한 소재가 아니라는 말은, 곧 이 소재를 현실적으로 잘 살려내면 평범한 일상을 공포로 물들이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므로. 두 번째는 범인과 목적이 드러난 후에 전개되는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이다. 범인과 경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얼마나 쫄깃한지, 반전은 충분히 효과적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절반의 성공만 거뒀다. 전자가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는 반면, 후자는 쌓아 올린 긴장감마저 깎아내리기 때문이다.
일단 나미가 버스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가 해킹당한 사실을 깨닫는 과정은 상당히 무섭다. 해킹당한 후 나미가 바로 가시적인 피해를 보지는 않는다. 보이싱 피싱에 걸린 것도 아니고, 인터넷 뱅킹이 악용되어 모든 돈을 잃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주변 사람을 잃어버린다. 이 대목이 꽤 충격이다. 초반부에 나미의 주변 인간관계가 유달리 세심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집 비밀번호도 공유할 정도로 절친한 '은주(김예원)'와의 우정, 시작 단계부터 함께 스타트업 회사를 키워 낸 '오 사장(오현경)'과의 끈끈함, 겉으로는 투덜거려도 속으로는 깊이 이어져 있는 아버지와의 가족애까지. 이 모든 인간관계가 단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친 사소한 일로 인해 무너진다. 이처럼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능에 각인된 두려움을 건드리기 때문에 충격적이다.
특히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생각지 못한 위험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에 더 무섭다. 바로 오프라인에서의 인간관계와 온라인상의 관계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영화는 지금의 사회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의 행적과 말을 더 신뢰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오 사장 몰래 운영한 바이럴 마케팅 인스타그램 계정이 해킹당해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나미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하지만 회사 동료들부터 오 사장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나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틱톡이나 인스타에서 함께 장난치고 놀던 은주와의 우정도 서로의 진심을 전하지 못한 대화 끝에 깨진다.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말은 효과가 없어도, 아빠가 누른 '좋아요'는 얼어붙은 딸의 마음을 풀 수 있다.
이는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그 어느 때보다 일상에 깊숙이 침투했기에 더 현실적이다. SNS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개봉했던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와 비교하면 변화가 더 잘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 속 마크 저커버그는 수십억 명을 이어 줄 페이스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 그의 주변에는 친구도, 애인도, 동료도 남아있지 않다. 그의 말로는 온라인상의 관계가 오프라인 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오프라인에서의 인간관계가 파괴되면 온라인상의 관계도 무용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현재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 둘 사이의 중요도나 위계는 역전되었고, 다른 관점에서 인간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의 초반부가 강한 소구력을 갖는 이유다.
이때 영화의 현실감이 내적 묘사보다는 외적 맥락에서 기인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준영이 나미의 스마트폰을 해킹하고, 나미가 해킹 피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련의 과정은 다소 억지스럽다. 지나치게 연극적으로 꾸며진 준영의 핸드폰 AS 센터가 대표적이다. 수리 접수를 할 때 핸드폰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것이나, 나미가 아무 의심 없이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모습도 작위적이다. 다만 준영에게 조종당하는 나미의 불안감은 이 한계를 뚫고 시청자에게 충분히 전달된다. 카메라, 위치 추적, 알람, 메신저, SNS 등의 스마트폰 기능이 적재적소에 활용된 결과, 상상할 수 있는 현실이 먼저 뇌리를 스치고 영화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즉, 나미에게 몰입하기에 앞서 그녀가 겪을 상황이 누구에게나 펼쳐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개연성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영화적 체험보다 앞서는 사회적 맥락을 상기시키는 영화인 셈이다.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연출 덕분에 이러한 현실감과 긴장감은 더욱 잘 살아난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구도를 이리저리 활용하거나, SNS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화면과 실생활을 오가는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시청자는 손에 쥐고 있거나 주머니에 있을 스마트폰을 곧장 떠올리고, 나미의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이유로 인해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의도한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스릴러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영화 내적 논리보다 외적인 맥락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선택이 문제를 일으킨다. 범인인 준영의 활용법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그를 예상보다 빨리 등장시킨다. 또 피해자인 나미의 옆에 위치시킨다. 일반적으로 범인의 정체를 미스터리하게 묘사하면서 추리극의 재료로 활용한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아마도 정체가 드러난 범인의 존재감을 부각하며 현실적인 공포감을 끌어올리려던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도는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영화 내적으로 세밀함과 완성도가 부족한 결과다. 구체적으로 보면 준영이라는 캐릭터와 긴밀하게 연결된 경찰 측 스토리가 부실하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의 한 축을 맡은 우지만 형사의 역할은 하나다. 반전 유도다. 우 형사는 또 다른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된 장소에서 자기만 알아차릴 수 있는 단서를 눈치챈다. 그래서 경찰이 허탕 칠 때 그는 준영이 범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이후 영화는 그의 직감이 적중할지 아닐지를 두고 서스펜스를 조성하고, 반전을 안기려 시도한다. 하지만 반전 자체는 놀랍지만, 의도만큼 충격적이지는 않다. 10명 넘게 연쇄 살인을 저지르면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범인이 '자두나무'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흘린 점, 우 형사가 준영의 집을 아무 근거 없이 수색하는 것처럼 우연에 근거한 전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정신없이 몰아치던 전반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순간적으로 서프라이즈를 노리는 후반부의 전개도 득보다는 실이 많아 보인다.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전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미가 해킹 피해 사실을 깨달은 시점과 그녀가 범인을 직접 쫓기로 마음먹는 대목까지의 전개는 부자연스럽다. 영준의 사무실에서 나미와 우 형사가 만나 협력을 약속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노출된 단서와 캐릭터 간의 관계가 한 방향으로 엮어나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기보다는 과장된 방향으로 급히 진행된 결과다. 덕분에 스릴러적 긴장감은 적잖이 사라지고 만다. 차별성도 약하다. 스마트폰 해킹이라는 소재의 임팩트를 빼면 납치와 협박으로 점철되는 다른 스릴러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론적으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장단점이 명확히 갈리는 작품이다. 스마트폰 분실이라는 일상적인 소재가 가진 스릴러적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장점이다. 시청자의 경각심을 고조하고, 디지털 시대의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은 분명 인상적이다. 그러나 작위적이고 우연적인 전개에 자꾸 기대면서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을 살리지 못한 것은 단점이다. 소재를 더 다양하게 활용하거나, 범인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긴장감을 살릴 수 있는 다른 방식도 있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한 가지 수확이 있다면,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비상선언> 속 '류진석'의 연장 선상처럼 보이는 준영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임시완이 눈에 띈다. 멀끔한 외관, 깔끔하고 순진해 보이는 미소 이면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살기. 그 간극이 만들어내는 섬뜩함을 누구보다 잘 살려낸 듯 보인다. 앞으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더 다양한 빌런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