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니 얼굴, 2020> 리뷰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옥 역을 맡은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 영희로 출연한 배우가 화제이다. 장애 당사자가 직접 다운증후군 역할을 맡아 열연하였는데, 화면에 등장하는 초상화 그림을 모두 직접 그렸음이 알려지며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본명은 정은혜이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태로 담은 <다섯 개의 시선, 2005>의 단편 극영화 <언니가 이해하셔야 해요>로 데뷔하였다. 1990년생인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 영화를 찍었고,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은 20대 후반에서 30대에 들어서는 초상화 작가 정은혜의 삶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얼굴은 가장 처음 남에게 보여주는 나의 정체성>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만나는 일상이 보편화되어 남들에게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현저히 줄었지만, 얼굴은 가장 처음 남에게 보여주는 나의 정체성이다. 은혜의 얼굴은 은혜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은혜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각자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것들을 꺼내 이리저리 조합해보며 판단하는데, 머릿속에 다운증후군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경우 생채기를 내는 오류를 산출하기도 한다.
은혜는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으면 휴대폰 카메라로 사람들의 얼굴부터 찍는다. 그리고 약 20분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의 얼굴을 종이 위에 선으로 옮긴다. 북한강이 보이는 양평 문호리 리버 마켓에서 비, 바람, 눈과 맞서며 손이 툼툼(!)해질 때까지 더운 날에는 시원한 것으로, 추운 날에는 따뜻한 것으로 속을 달래며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가 그린 초상화는 2000장을 넘겼고, 아직도 매일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 은혜는 사람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관찰하며 관계의 부재로 외로웠던 시간들을 20분씩 달랜다. 20분 동안 은혜를 채워준 사람들은 은혜의 눈으로 본 각자의 얼굴을 보며 꽤 오랫동안 은혜를 떠올릴 것이다.
<신파 없이 장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
다운증후군은 혈액 검사를 통해 비교적 쉽게 진단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임신 중에도 검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를 가진 예비 엄마들은 다운증후군이라는 단어에 마음을 졸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약간의 확률로 다운증후군일 수도 있다는 수치를 받아 들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세상의 빛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법적으로 다운증후군인지 아닐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럴 확률이 있을 것 같다고 판단된 태아는 죽어도 괜찮은 생명이다. 확실히 다운증후군인 아이가 어쩌다 운이 좋게 죽음을 면하고 엄마 뱃속을 나온다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들은 울음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버린다. 사람들은 발전된 의학 기술을 두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며 엄마의 게으름과 무능을 탓하는 말을 먼저 내뱉을 수도 있다.
영화 <니 얼굴>에서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희생이나 비장애 형제자매의 상처,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다니다 무너져 내린 가정 경제 시스템 등은 보이지 않는다. 은혜를 중심으로 카메라를 들이댔고, 그러다가 자연히 딸려 나와버린 것들은 잔가지 쳐내듯 잘라내 버렸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만화, 영화, 글, 시위 등으로 이미 이전에 충분히 세상에 이야기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하지 않아 우리가 잘 몰랐던 것일 뿐.
<다운증후군 정신으로 갓생사는 셀러브리티>
1996년 제49회 칸 영화제에서 다니엘 오떼유와 파스칼 뒤켄이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다니엘 오떼유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파스칼 뒤켄은 벨기에 출신으로 칸의 장벽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영화 <제8요일, 1996>에서 비장애인과 다운증후군 장애인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직업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사회적인 언어이기도 하다. 파스칼 뒤켄은 배우라는 직업으로 사람들에게 다운증후군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람들은 성찰을 약속하는 박수로 화답하였다. 대한민국은 장애인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업주가 의무고용률에 못 미치는 장애인을 고용한 경우 장애인 고용 부담금을 납부하도록 법에 명시하였다. 2021년 한 해 동안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대신 정부에 납부한 돈이 모여 7000억이 넘었다. 장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곳을 달라고, 가족들의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 달라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고 외치느라 은혜 엄마는 하얗게 세는 머리를 기를 새가 없었다.
앞으로 은혜씨는 청소 담당 직원, 작가, 배우, 크리에이터 등의 사회적 언어로 '다운증후군 정신으로 갓생사는 셀러브리티'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힘들 때는 짜증을 내고, 신이 날 때는 소리 내어 웃고, 마음이 복잡할 때는 폭풍 뜨개질을 하는 별 것 아닌 것들을 보고 우리들은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면 된다. 인기가 많아서 피곤한 셀러브리티의 숙명을 은혜씨는 투덜대면서 즐길 것이다.
유튜브 채널 <니얼굴 은혜씨>
https://www.youtube.com/channel/UCvi58-18IuK8oHGzXBLOrWg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