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게

미래에게 쓰는 현재의 전하지 못할 편지

by 표현

*미래 : 로봇, 겉으로 봐선 인간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로봇. 심지어 스스로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 기능마저 탑재되어있다.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꿈을 꾸지 못한다는 것. 목표나 방향마저 인간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꿈을 어떻게 꾸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현재 : 미래를 만든 박사의 입양 딸. 갓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지만 어쩐지 풋풋한 청춘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늙지 않는 미래가 어렸을 땐 언니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얼추 동갑 같아 보여 쿨하게 친구 하기로 했다. 꿈이 없는 현재는 꿈을 꿀 수 없는 미래가 부럽기도 하다.


“짠-!”

우리만의 하루 마무리 방법은 집 앞 놀이터 그네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 평범한 일이라 생각되겠지만 나는 이 시간을 위해 하루를 악착같이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하늘을 안주삼아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는 쾌감이란! 기분 좋은 미소를 짓다 옆에 있는 미래를 보니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인다.

“오늘도 아빠한테 혼난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그래?”

내 물음에 맥주잔을 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애꿎은 모래만 틱틱 차대는 미래다. 평소 같았으면 ‘아니 글쎄 아빠가...’라며 하소연을 늘어놓았을 거다. 미래는 나의 아빠이자 전 세계에서 최초로 감정이 있는 로봇을 만든 박사인 김형식 씨가 만든 로봇이다. 정체성은 로봇 일지 몰라도 로봇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인간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이다. 미래가 발명되고 난 후 몇 개월은 인터뷰며, 촬영이며 쉴 틈 없이 바빴지만 그 유명세는 얼마 가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그 덕에 지금은 아빠 연구소에서 일을 돕고 있다. 하루 끝인 이 시간이 되면 일을 하면서 겪은 억울하고 분한 일들을 나에게 토해내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르다. 화나거나 슬프기보단 멍해 보인달까.

“현재야, 꿈을 꾼다는 게 대체 뭐야?”

“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그려 보는 거?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왜 박사님은 나에게 그런 능력은 주지 않으신 걸까? 난 말이야, 아무리 그걸 알아보고, 찾아봐도 이해하질 못하겠어. 현재 넌 매일 꿈을 꾸며 살아가는 거야?”

“글쎄- 난 그런 걸 생각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걸. 근데 갑자기 꿈은 왜?”

“그냥 문득 궁금해서. 박사님이 항상 나에게 하시는 말이 있어. 언젠가 이 연구소를 체인점처럼 세계의 이곳저곳에 만들고 싶다고. 그게 자기 꿈이라고. 근데 난 아무리 애써 봐도 그런 게 떠오르지 않아. 어떻게 떠올려야 할지조차 모르겠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 둘 사이엔 차가운 밤공기 소리만이 이어졌다. 나는 미래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되는 걸까? 내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미래는 먼저 그네에서 일어났다. 추우니깐 이만 가자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가방을 들고 미래 뒤를 따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미래는 잘 자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닫힌 미래의 방문을 잠시 바라보다 나 역시 방으로 들어왔다.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을 베개에 뉘었다. 작은 스탠드를 하나 켜 놓고 천장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미래는 꿈을 꾸고 싶은 것 일까? 만약 미래에게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무슨 꿈을 꿨을까? 복잡한 질문들과 마지막으로 본 미래의 착잡한 표정이 천장을 떠다닌다. 안 되겠다. 머리를 비워내야겠다.



미래에게

안녕 미래야. 놀이터에서 네가 내게 했던 말에 선뜻 답해주지 못해 미안해. 그렇지만 난 네가 갖고 싶어 하는 그 능력이 불행처럼 느껴지는 걸. 난 말이야,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하루를 살아가는 게 갚아야 하는 빚처럼 느껴져. 오늘이라는 빚을 다 갚고 나면 내일이라는 빚이 날 기다리고, 또 그다음 날이라는 빚이 기다리고... 하루 온종일 정신없이 일을 하고 밖으로 나오면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돼. 이미 하늘은 어두워져서 하루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는데도 말이야. 서로 팔짱을 끼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걸으면서도 대화가 끊이질 않는 여자들과, 장난스레 서로를 툭툭 쳐가며 걸어가는 남자들을 보면 나 혼자만 이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 슬퍼져. 난 어느새 인가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야. 누가 그랬지,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그럼 꿈을 꿀 수 있어도 꾸지 않는 나는? 이 세상에 어울려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걸까? 너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꿈을 꾸지 못하는 네가 난 오히려 부럽게만 느껴져. 할 수 있는데도 할 수 없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미안. 이 편지를 네가 읽게 된다면 날 경멸할지도 몰라. 네 감정을 무시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래도 지금 내가 쓴 이 모든 말은 진심이고, 오롯이 내가 느낀 감정이야...


"좋은 아침!

식탁에 앉아 토스트를 먹고 있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미래다. 어젯밤에 나에게 쌀쌀맞게 굴었던 미래의 모습이 어색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난 오히려 그런 미래가 고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역시 환하게 웃어 보이며 '토스트 먹을래?'라고 물었다. 미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릇한 식빵 냄새가 주방을 채워 따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리는 오늘 서로의 일정을 자연스레 공유하며 다정한 대화로 짧은 아침식사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이라는 빚이... 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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