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 않은 고백, 마흔 즈음에

- 이 넓은 세상 위에 그 길고 긴 시간 속에 그 수많은... -

by 푸시퀸 이지

6월, 일주일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를 일주일 전으로 돌려 본다. 지난 주말, 뛰기 싫다는 두 다리를 런닝 머신에 끌어다 붙이고는 5km를 달렸다. 중간에 몇 번이고 쉬고 싶다는 신호가 있었으나 무시했다. 나에겐 목표가 있어야, 약속을 해야, 비용이 들어가야 몸이 굴러가는 유전자가 있다. 달리기 동호회에 가입하기로 했다. 도대체 야외에서 달리는 맛이 뭐길래, 함께 뛰는 맛이 어떻길래 그렇게 여기저기 뻐꾹뻐꾹 하는 건지 삶의 체험 현장에 들이닥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지난 월요일이 그날이다.


주말에 달리는 동네 동호회는 출발점이 올림픽 공원이라 아웃. 평일 회사 지역에서 달릴 수밖에. 타깃이 생겼으니 몸이 가동한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옷 사는 일을 반기 또는 연례행사로 여기는 내가 쇼핑 길에 나섰다. 할인과 아이템이 많은 스포츠 매장을 검색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까지. 이 옷 저 옷도 걸쳐보고 이 신발 저 신발도 신어본다. 실제로 달리는 폼도 잡아본다. 당장 월요일에 착용할 거라 교환, 반품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 뱀 허물 벗듯이 포장지도 다 버리고 돌아왔다.


실력도 없는 게 옷만 번지르르하고(실력이 없으니 투자한 장비) 다른 사람에게 민폐나 끼칠까싶어 예습(도전)한 게 5km다. 달리는 도중 마침표를 날리고 싶은 걸 뇌가 ‘어허! 러닝크루 회원이 그러면 쓰나.’하며 채찍을 가하는 통에 내리 달렸다.


월요일. 원주행 버스에 함께 탑승한 스포츠 쇼핑백. 달리기 실력과 관계없이 어느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는 홍보문구를 몇 차례 눈에 담는다. “월요일 모임이니 구경 한번 와보세요.” 리더 대사도 머리에 담는다. 회사도착이 곧 출발신호. 사무실에서 달리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저녁 8시 종합운동장’을 향해 ‘업무’ 레이스를 5km 복습하듯이 뛰었다.


점심시간. 책상인지 식탁인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먹는다. 저녁에 달리기 전에 먹을 식사까지 준비해 둔다. 자, 이제 아끼고 아낀 말 고백하는 시간. 실행력이 담보된 문구. “이따 뵙겠습니다.”라는 말. 실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암시 문장. 문장 전송을 위해 러닝크루 단톡방에 드디어 입장! 엥?

카톡 단톡방에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단톡방에서 모임일정을 확인하라...는 문구와 달리 카톡 입구에서 막혔다. 마치 나이트클럽 출입문에서 “잠시 만요.”하고 붙잡힌 듯이.


“안녕하세요. 오늘 참여하기로 한 00입니다. 제가 기계치인지 단톡방 입장이 안되네요. 뭐 입력하는 게 있나 보죠?”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여긴 2030 모임인데요.”

‘40대라 실례는 제가 했네요.’


러닝크루 홍보 문구로 되돌아가 보았다. 긴긴 문장들은 다 스캔하고는 ‘2030’ 문구는 “2020”으로 봤던 것이다. 40대 분단선인 ‘2030’을, 금년도 야망인 ‘2020’으로 읽었던 게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성향이 어딜 가든 이렇게 테가 난다.


마흔 넘어 안 된다는 스토리 결말. 뭔가의 끄트머리는 또다른 시작과의 매듭일 거야. 소가 뒷걸음질 치다 얻어 걸리는 게 있을 거야...등등의 위로...가 들어먹질 는다. 서운해 하던 찰나에 또다른 뭔가로 연결이 된다. 또다른 회의에, 실부장님의 돌발 지시가 아주 스릴 넘치게 이어진다. 월요일밤 11시에 퇴근하는 사태와 쫀득하게 연결되었다.


러닝크루 회원이 되었다면 다가올 첫 회의에서 실책을 남겼을 텐데. 러닝크루 회원이 되었다면 첫 모임에서 약속 어기는 인상을 남겼을 텐데. 러닝크루 준비가 없었다면 책상인지 식탁인지조차 없이 저녁을 굶었을 텐데. 본래 가려던 길을 가지 않아 무너져내리는 다리를 피한 느낌이랄까. 장자도 위로한다. 러닝크루에서는 쓸모없던 인간이 다른 곳에서는 영~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철이 없고 없던 자리에 주책만 가득한 나. 잊고 살았던 내 나이를 일깨워 주어 아주 그냥 퍽이나 감사하다. 나이를 향해 마이크로미터만큼 달린 지난 한 주를 고백한다. 시계바늘이 대신 가입한 러닝크루. 시계바늘은 2020을 가리킨다. 2020년 하반기를 Go 하기 위해 상반기를 Back 했다. 진정한 고백, Go Back.


한때 고백점프 게임이 유행이었다. 1박2일 프로나 보드게임으로도 소개된 고백점프 게임. 버릴 건 미련 없이 버리고, 앞으로 취할 건 취하며, 과감히 절제할 건 ‘점프’하는 2020년 게임을 펄쳐 보자. 법정스님도 한말씀 하신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아 있음이다.

어제나 내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이다.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이 새로운 탄생의 과정이 멎을 때

나태와 노쇠와 질병과 죽음이 찾아온다.“


-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정찬주 명상록, 다연출판사 -



김훈의 <자전거 여행>, 정철의 <사람 사전>에서도 그랬다. ‘나이테’는 나무의 연륜이자 마지막 나이라고.


그러고 보면,

달리기 모임에서 제재 당한 걸 서러워 할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가입 못한 것을 노할 일이다.

사람답게 살아있음으로 ‘나이’에 테가 나도록.


헌데,

달리기 때때옷 입고 새롭게 태어나는 또다른 일에

오늘밤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원주행 버스 안에서, 차창과 함께 흔들리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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