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40년차 조현병 환자다.
나의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함과
'40년'이라는 숫자가 말하는 시간의 버거움과
'조현병'의 차갑고 생소한 어감이 한데 어우러져
그것은 일종의 '나의 역사' 또는 '나' 자신이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언젠가는 한차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부담감 또는 책임감에 늘 사로잡혀 살았던것 같다.
어디로 넘어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뭘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의 이야기에는 보는 사람 저마다에게 가 닿아 일으킬 때론 잔잔하고 때론 폭풍같은 파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고들 한다.
이야기는 곧 삶이 아니던가
나는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내가 이야기하려는 삶은, 꽤나 무겁고, 축축하고,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힘이 실린 좌절은 두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어서, 내가 힘주어 말하는 나의 절망과 좌절은 반드시,
나와는 또 다른, 축축한 진흙바닥에 발이 묶여 허덕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발짝 앞으로 디딜만한 작은외침과 힘을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엄마와 아빠, 나의 삶은,
마치 끝도없는 오르막길을 맨발로, 뙤약볕 아래에서, 때론 칼바람 추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세상에 우리만 남겨진 것 같은 천금같은 외로움을 끌어안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쓰다듬으며
또 언제 어떤 상처가 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며, 막연히 오르고 올랐던 기다란 여정이었다.
그 오르막길이 이제 끝났다고 나는 감히 단정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
저마다의 언덕은 두 팔 벌려 우리를 환영하듯 기다리고 있다. 때론 야속하게. 때론 반갑게..
아직 끝나지 않은 오르막길의 중턱에 서서
아직 끝나지 않은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당신에게
나의 이야기를 나즈막히 들려주려 한다.
당신의 그 여정이, 조금 덜 외롭기를 기도하며
나의 재잘거리는 이야기를 벗삼아 무심코 내려다본 길가에 핀 잔꽃송이 한 송이로 인해
작은 미소 짓기를 응원하며.
저 위에 계시는 그 분께서
이 기도 하나쯤은 더 들어 주시리라 소원하며
긴 이야기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