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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주 Sep 17. 2024

1.프롤로그

나의 엄마는 40년차 조현병 환자다.


나의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함과

'40년'이라는 숫자가 말하는 시간의 버거움과

'조현병'의 차갑고 생소한 어감이 한데 어우러져

그것은 일종의 '나의 역사' 또는 '나' 자신이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언젠가는 한차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부담감 또는 책임감에 늘 사로잡혀 살았던것 같다.

어디로 넘어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뭘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의 이야기에는 보는 사람 저마다에게 가 닿아 일으킬 때론 잔잔하고 때론 폭풍같은 파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고들 한다.

이야기는 곧 삶이 아니던가

나는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내가 이야기하려는 삶은, 꽤나 무겁고, 축축하고,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힘이 실린 좌절은 두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어서, 내가 힘주어 말하는 나의 절망과 좌절은 반드시,

나와는 또 다른, 축축한 진흙바닥에 발이 묶여 허덕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발짝 앞으로 디딜만한 작은외침과 힘을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엄마와 아빠, 나의 삶은,

마치 끝도없는 오르막길을 맨발로, 뙤약볕 아래에서, 때론 칼바람 추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세상에 우리만 남겨진 것 같은 천금같은 외로움을 끌어안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쓰다듬으며

또 언제 어떤 상처가 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며, 막연히 오르고 올랐던 기다란 여정이었다.


그 오르막길이 이제 끝났다고 나는 감히 단정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

저마다의 언덕은 두 팔 벌려 우리를 환영하듯 기다리고 있다. 때론 야속하게. 때론 반갑게..


아직 끝나지 않은 오르막길의 중턱에 서서

아직 끝나지 않은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당신에게

나의 이야기를 나즈막히 들려주려 한다.


당신의 그 여정이, 조금 덜 외롭기를 기도하며

나의 재잘거리는 이야기를 벗삼아 무심코 내려다본 길가에 핀 잔꽃송이 한 송이로 인해

작은 미소 짓기를 응원하며.


저 위에 계시는 그 분께서

이 기도 하나쯤은 더 들어 주시리라 소원하며

긴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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