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불 Aug 26. 2017

디지털 시대의 재즈 애호가

매체와 장비를 달리 하며 그럭저럭 이어져 온 나의 음악 감상 연대기는 애플을 만난 뒤로 혁명적인 변화를 겪는다. 첫 번째는 아이팟 셔플의 액정 없이 운에 맡기는 랜덤 재생이며, 두 번째는 아이팟 클래식의 어마어마한 용량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아이튠즈 스토어와 애플 뮤직이다. 애플 뮤직은 서비스 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 구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구독을 유지하고 있지만 도통 들어가 보질 않고 있는 넷플릭스와는 달리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게 하는 마성을 가진 서비스이다. 국내 음원 서비스는 mp3 다운로드 요금제를 사용하긴 해도 스트리밍은 사용한 적이 없고 대체로 시큰둥하게 대했는데, 애플 뮤직은 내 마음에 쏙 든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방대한 라이브러리 덕분일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모든 취미생활의 매개물은 그 양이 늘어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특히 재즈나 클래식 팬들은 마치 번식이라도 하는 듯 불어나는 음반의 수에 괴로워한다. 그나마 음반은 책보다는 공간을 덜 차지한다고 쳐도, 우리들은 A 라는 곡의 서로 다른 연주자의 녹음 같은 연주자의 때를 달리하는 녹음 옛 녹음의 리마스터반 등을 줄줄이 사 모으다 보니 결국 이러나저러나 낭패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100장 200장으로는 애호가 명함도 못 내밀만큼 어마어마한 게 음악 애호가의 라이브러리다. 


나의 경우, 재즈를 몇 년 듣다 보니 음반이 제법 불어났다.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음반만 모아도 한 사람이 20년 동안 20장을 내는 꼴이고 이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 평생 들어도 좋은 음반을 다 못 듣고 죽을 거라는 푸념은 엄살이 아니라 진심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이제는 시내 음반점에서 살 음반이 없어 아마존에서 구입하는 신세이다. 이런 마당에 어찌 빈약하기 짝이 없는 국내 음원 서비스에 만족하겠는가. 그래서 난 물건을 손에 쥐어야만 행복한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애플 뮤직 전까지는 말이다. 


시작은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였다. 사실 재즈 음반의 한국 입고를 기다리는 것은 거의 앓느니 죽지 수준의 갑갑함을 자랑하는데, 프리오더를 걸어두면 발매 당일에 자동으로 다운로드가 되니 얼마나 편하냔 말이지. 그리고 애플 뮤직이 찾아왔고....  절판된 음반, 수입은 기대도 못 하는 음반, 일일이 모으기에는 너무나 많은데 듣기 전에 궁금하긴 한 고전들을 찾아 듣고 있다. 어지간한 재즈 음반은 다 걸려 나오니 음반 사려는데 어찌 다 품절이냐! 하고 분통 터뜨리지 않아도 되니 좋다. 


하지만 진짜 나의 음악 듣기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또한 기여를 한 것은 다름 아닌 유튜브이다. 재즈는 20세기의 장르고 그 전성기는 50년쯤 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음반으로 들을 것도 많긴 하지만 재즈의 묘미는 라이브 아닌가. 녹음되지 않았기 때문에 못 들은 재즈 연주는 매일매일의 연주 횟수만큼 존재한다. 언제나 A라는 곡의 1959년 연주와 1969년 연주의 차이에 귀 기울이고 B연주자와 C연주자의 차이에 귀 기울이는 것이 재즈 팬들의 호기심 가득한 귀 아니겠는가.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서는 도무지 볼 기회가 없는 그 무수한 가능성들, 음반이 되지 못한 연주들이 유튜브에 있다. 유튜브는 재즈 팬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보물창고인 것이다. 


빌 에반스의 몇몇 라이브 비디오들, 리 모건이 아트 블레이키의 트럼펫터였던 시절, 마일스 데이비스의 라이브, 소니 롤린스와 짐 홀이 젊을 때의 모습, 키스 자렛의 유러피안 쿼텟과 아메리칸 쿼텟의 라이브, 데뷔 직후의 브래드 멜다우의 모습. 음반으로만 재즈를 들었다면 듣지 못했을 수많은 공연들의 비디오가 유튜브에 있다. 스탄 게츠의 밴드에 있었던 개리 버튼과 스티브 스왈로의 모습을 유튜브가 아니면 어디에서 보겠는가? 재즈는 옛날 음악일지도 모르지만 재즈를 듣는 방식은 전혀 예스럽지 않다. 어쩌면 유튜브로 거장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것은 21세기의 재즈 팬들에게 이미 전성기가 지나간 장르를 좋아하게 된 벌 대신에 내려준 보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스마트폰 없이 일상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고 컴퓨터가 없이는 관공서 볼 일 보기도 힘든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아직도 구식 미디어를 사고 그 안에 담긴 것을 어떻게든 꺼내어 보는 사람들은 어쩌면 괴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모 아니면 도로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우리는 씨디도 사고 60년 전 녹음을 스트리밍으로 듣고 50년 전 라이브 비디오를 유튜브로 본다. 


그런데 음악 감상의 중심을 디지털로 옮겨도 여전히 씨디는 사고 사고 또 산다. 프리오더 걸어서 미리 듣고 음반 수입되어 들어오면 또 산다. 스트리밍 듣다가 좋으면 메모해 두었다가 산다. 라이선스 나오면 (재즈 앨범 라이선스는 몹시 드물다!!) 라이선스 잘 팔려야 다음에 또 내 주지 하면서 또 산다. 이쯤 되면 망한 것 같다. 어쩌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작가의 이전글 빌 에반스, 찬란한 슬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