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60도 헬싱키의 겨울밤은 길다. 한겨울엔 오후 3시반이면 해가 진다. 기나긴 이브날 밤, 산타할아버지는 얼마나 열일을 하셨을지.
그리고 당연히, 이 도시의 여름낮도 길다. 웬만큼 돌아다녀서는해가 지지 않는다.여름을 길게 누리고 싶다면 단연 최고의 선택지 중 하나다.
인천공항에서 핀란드 수도 헬싱키까지 첫 직항이 생겼을 때, 항공사의 광고문구가 '유럽을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실제 항로가 가장 짧은 곳은 일직선상이 아닌 곡선상 최단거리 헬싱키라는 것. 그래봤자 30분 차이겠지만, 환승객 시장을 노린 나름 참신한 마케팅전략이라 평가해주고 싶다.
출처 : visitfinland.com, 아로비
그후로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헬싱키는 유럽의 허브공항을 보유한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에 미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따라잡을 생각이 크게 없었던 건지도.
'복지천국북유럽 국가' 중 하나인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위에서 열거한 대도시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준다.지하철 노선도 단 1개뿐인 이 도시는 어느 곳에서 바라보든 복잡하기보다 단순하고, 번화하기보다 침착하며, 경쟁하기보다는 나란한 느낌을 준다.
출처 : hel.fi, 아로비
울창한 숲이 많은 핀란드에서는 오래 전부터 숲 속에 사는 곰을 신성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웅녀 비슷한가 보다.
어쨌든 그래서 곰, 즉 카르후(Karhu)는 핀란드에서 친숙한 동물이다. 헬싱키를 걷다보면 곰 동상을 종종 찾아볼 수 있고, 아예 '곰공원(Karhupuisto)'으로 명명된 정체성 뚜렷한 공원도 있다.
느긋하면서도 강인한 사람들의 아우라가 헬싱키에만 한정된 특징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핀란드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이 숭배해온 곰의 이미지와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 hel.fi, 아로비
항구 근처 시장광장인 카우파토리(Kauppatori)는 헬싱키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다. 공예품, 식품 등 작고 잡다한 매점들이 많아서 쇼핑하기 좋다. 꼭 무얼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면서 시간 때우기에 그만인 장소다.
광장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포장마차 같은 곳들이 있는데, 송어튀김 같은 길거리 음식에 맥주나 와인 한 잔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대부분의 가게며 식당 직원들이 영어에 능통하므로, 낯선 핀란드어에 대한 부담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도 이 도시의 크나큰 장점이다.
출처 : finland.fi
걷고 또 걷기에 지쳤다면 '오리지날 사우나'를 찾아갈 타이밍이다. 자일리톨보다 먼저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 바로 핀란드의 사우나 아니던가.
핀란드 전역에는 호수가 많은데, 사우나는 원래 이런 호수 근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우나에서 몸을 뜨겁게 했다가 호수로 나가 수영하는 것이 전통 핀란드식 사우나라고. 헬싱키의 해안 사우나에서는 호수 대신 바다 수영을 즐길 수 있고 도심에서도 사우나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약은 필수.)
후끈한 사우나와 시원한 맥주, 함께 땀흘릴 친구. 인생 별 거 없고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던 엄마의 말씀은 헬싱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출처 : suomenlinna.fi, 아로비
잠시 시내를 벗어나 자연 속 힐링을 만끽하고 싶다면 수오멘린나(Suomenlinna) 요새를 추천한다. 시장광장 바로 앞 카우파토리 항구에서 페리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섬 전체가 요새였으며, 지금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별 모양의 성곽, 방어포 등 인공 조형물이 푸릇푸릇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힐링 충만한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
제공 : 아로비
페리마저도 귀찮다면 시내 호수도 괜찮은 선택지가 된다. 바다 위에 내려앉은 퇼뢰호수(Töölönlahti) 주변을 어슬렁거려보자. 느지막히, 느릿하게, 있는 힘껏 게으름뱅이가 되어.
서두를 이유는 1도 없다. 헬싱키의 여름낮은 길고 밤이 찾아오는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더디니까.
"헬싱키, 여름을 길고 게으르게 즐기는 방법."
당신의 심장을 설레게 할, 당장 배낭을 꾸리게 만들, 그곳으로 떠나야 할 단 '한 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