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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 May 14. 2020

한 줄 여행 #11

당신이 그곳으로 떠나야 할, 단 한 줄의 이유 #11

"시간이 멈추는 시간"

돈다바야시, 일본 (Tondabayashi, Japan)


사실, 써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지금은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지만, 여행이 재개된다 해도 일본을 여행지로 추천하기가 아직 꺼려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써두기로 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설레는 마음 하나만 안고 이곳을 찾는 여행자가 생길 수 있기를 바라며.


돈다바야시는 오사카 중심부에서 전철로 1시간 조금 안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중간에 사철, 즉 민간전철인 긴테츠(Kintetsu) 노선으로 갈아타야만 한다. 민간이라 요금이 비싸다. 현재 기준 편도 450엔.

오사카 여행 시 많이 쓰는 각종 패스는 이용할 수 없고, 긴테츠패스란 것이 따로 있지만 돈다바야시만 왕복할 경우에는 별로 효용가치가 없다. 만약 이웃한 나라현을 구석구석 여행할 생각이라면 비교견적을 뽑아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돈다바야시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목적지인 지나이마치(寺内町)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설 수 있다. 지나이마치, 직역하면 '절 안의 마을'이다. 1500년대 중반, 인근의 불교사찰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나이마치 입구에 안내센터가 있긴 하나 과감히 패스해도 무방하다. 마을 안쪽에 있는 '지나이마치 교류관(Exchange Hall)'이 이곳의 역사를 접하거나 중간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훨씬 낫다. (귀여운 파출소 간판이 보인다면 그대로 직진하면 된다.)


걷다 보면 심상치 않은 건물들이 자꾸 눈에 띈다. 위는 하얗고 아래는 시커매진 나무판이 잇대어 있다. 창문은 감옥처럼 창살로 막았다. 1600년대 에도시대에 지어진 이런 건물들이 꽤나 많이 남아있어서, 일본 정부가 지나이마치를 주요전통건축물 보존지구로 정했다고 한다.

수백년의 무게 탓일까, 평일 낮의 적막 탓일까.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꼭 진공세계 속을 걷는 기분이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아니 몇 년도인지조차 잊어버릴 것처럼.


마을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은 유서 깊은 부잣집 '스기야마 가옥'이다. 주위의 다른 집들에 비해 월등히 넓고 높다.

그러나 스기야마 씨에게 미안하게도, 정갈하게 단장한 건물 내부보다는 외부를 점령한 고양이 무리가 훨씬 인상적이었다.

각자의 구역을 정해놓은 듯 띄엄띄엄 바닥에 엎드린 검은 고양이들은 인생 9회차를 사는 듯한 포스를 풍겼다.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세상 부러운 녀석들이다.


잠시 쉬어가고 싶다면 커피 한 잔을 강력 추천한다. 원두를 그 자리에서 볶아 갈아준다는 가게가 있어 일부러 찾아갔는데, 경황이 없어서 실제로 그랬는지 과정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랬든 저랬든 이집 커피는 진짜다. 커피도 신선할 수 있구나, 작은 충격을 받았다.

'인생커피'를 마시며 옆가게에서 사온 마그넷도 풀어본다. 앞치마 따위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이토록 앙증맞게 바꿔놓다니, 게다가 전단지로 이렇게 곱게 접은 봉투에 넣어주다니, 이 일본스러움이란.


마을은 작지만 커피가게뿐만 아니라 빵가게, 식당, 아기자기한 소품가게, 심지어 게스트하우스(여성 전용)까지 골목 여기저기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오픈시간이 한정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너무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은 피해야 한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식사는 안되고 음료만 살 수 있다던 가게에서 빈손으로 돌아나올 때였다.

문앞에서 가게 관계자로 추정되는 기타리스트의 버스킹이 진행 중이었다. 듣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별로 잘하지도 못하면서, 검은 고양이처럼 무심하게.

그래, 이 마을 어딘가엔 '유유자적 열매'가 열리는 것이 틀림없다. 먹기만 하면 한량지수가 폭발하는 그런 열매가.

아, 볶은 커피 잔에 유유자적 열매가 먹고 싶은 날이다.


"돈다바야시, 시간이 멈추는 시간."



당신의 심장을 설레게 할, 당장 배낭을 꾸리게 만들, 그곳으로 떠나야 할 단 '한 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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