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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Apr 15. 2024

벚꽃축제에 벚꽃이 없다니 무슨소리요

홍철없는 홍철팀도 아니고


"중국이랑 일본은 가까우니까 먼 데 부터 다니자"


가 20대 때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연수다 배낭여행이다 다녔던 곳은 유럽과 미국. 비행기 타고 거리가 멀다보니 젊고 체력이 있을 때 다녀야 한다고. 중국, 일본, 동남아는 아무래도 비행기 5시간 내 니까 나중에 직장을 다니면서, 혹은 나이가 더 먹고서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만난 중국/일본 것들은 당최 관심이 없었다. 이 멀리까지 와서 웬 옆집 걸 보나?


잉, 웬걸 근데 미국에 눌러 앉아 살게 될 줄 이야.


샌프란시스코에는 중국 문화권 밖 가장 크다는 차이나타운이 있다. 사실 같은 마음으로 샌프란시스코 살면서 차이나 타운을 목적으로 가 본 적이 없었더랬고, 올 해가 되어서야 축제 할 때 처음 후루룩 둘러봤더랬다.


많은 이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재팬타운도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엄청 크지는 않고, 스타일은 사실 8-90년대에 머물러 있어서 모던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찾지는 않는 것 같다. 음식도 가까운 일본에 있는 진짜 일본음식이나 한국에 있는 일본음식이 더 맛있을 거고. 그래서 일본 상점/음식을 위해 방문하는 로컬이 주를 이루고,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 방문한 관광객이 온다. 나도 다이소(일본다이소임) 갈 때, 라멘 먹고 싶을 때, 우유 아이스크림 먹고 싶을 때, 질 좋은 펜 사러 갈 때 뿐. (미국 질 좋은 펜은 엄청 비쌈)  






참, 아주 약간의 한국 상점들이 있는데, 꽤 인기가 많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면 추천하는 몇 곳이 있는데 -

 

1.  대호 갈비찜 - 대표적인 것은 전에 글 어디선가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대호'라는 매운 갈비찜 집인데 인기가 굉장해서 저녁이면 여기가 클럽인가? 싶을 정도로 바깥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미국 내 지점을 벌써 여러 개 내고, 외국에도 진출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아주 커졌다. 가격은 한국과 비교하면 아주 사악하다. 갈비찜은 80-90불 정도 가격대에 밥 두개, 김치 같은 반찬 몇 개가 같이 나온다. 밥 두개를 더 시켜서 3-4명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양은 적당한데, 택스와 팁까지 다 내고 나면 100불이 훨씬 넘는다. 맛 자체는 나쁘지 않다. 샌프란 물가를 생각하면 또 그렇게 비싸진 않은데 한국 동일제품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 비싸다. 혹시 왔는데 돈을 더 주고서라도 한국 맛 나는 한국 음식이 크게 당기는 가족단위 방문객이시라면 드셔볼 만 하다.


2. 지나 베이커리 - 재팬타운 서쪽건물 1층에 최근 몇 년 간 들어온 한국인 베이커리. 운영시간이 짧다. 처음에 팝업 형식으로 열었을 때에는 줄이 너무 길어서 엄두도 못 내었던 곳. 이곳의 시그니쳐는 크림이 듬뿍 든 한국식 페이스트리와 위의 대호 갈비찜과 협업한 갈비찜 페이스트리, 달고나, 달고나 커피 및 아인슈페너 등 한국에서 인기있었던 커피도 아직 판다. 개인적으로는 갈비찜 페이스트리를 좋아한다. 예상할 수 있는 그 맛인데, 먹어볼 만 하다.


3. 우리마켓/우리식당 - 조금 남쪽으로 더 내려오면 있는 작은 한인 수퍼마켓. 규모는 작지만 한국슈퍼에서 본 있을 건 알차게 다 있다. 과자나 식재료는 물론 김밥, 수육, 감자탕 등 조리식품에 고사리나물, 파김치는 물론 미역국이나 각종 찌개까지 판다. 오래된 이 슈퍼가 장사가 잘 되었는지 건너편에 케이터링 비지니스를 열고 거기서 약간의 테이크아웃 음식도 팔았었는데, 더 확장을 해서 아예 '우리식당'이라고 식당까지 하나 인수해서 몇 달 전 오픈했다. 수퍼에서 팔고있는 조리음식 말고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은 한국의 원래 가격을 생각했을 때 꽤나 비싸다. 돼지국밥이 있는데 23불인가.. 한국돈으로 3만원 가까이 해서 먹어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남편의 최애는 치즈돈가스. 맛도 괜찮고 고기도 꽤 두툼한데 돈가스 두 개를 주기 때문에 가격은 꽤 나가도 여자 둘이 먹기에 충분하다.


미국에서 '한국음식'이라고 해서 갔는데 한국 맛이 안 나는 경우가 많다. 진짜 한국인이 아니고 중국/일본/동남아/유럽/미국 사람들이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한국인이 하지만 현지 입맛에 맞춘다고 너무 달거나짜거나 이상해 진 경우도 있다. 여기서 소개한 곳들은 꽤나 한국 맛이 나는 한국 음식이니, 안심할 만 하다.





다시 재팬타운으로 돌아와서, 여기서는 매 년 4월에 벚꽃축제를 한다 (체리블로썸 페스티벌). 배경사진에 낚여서 져버린 벚꽃을 보러 오신 분이라면, 저 사진은 다른 때에 다른 공원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ㅋㅋㅋㅋ. 브런치 인기미녀작가(사실 실제로 뵌 적 없음ㅋㅋ) 김이람 작가님의 일본 벚꽃축제 글에 댓글로 쓴 적도 있듯이, 벚꽃축제인데 벚꽃은 거의 없다. 이 동네의 겹벚꽃(한국에서 보는 거랑 조금 다른 품종)은 2월에 다 피고 져서 이미 없고, 간간히 있는 가녀려서 영 안돼 보이는 왕벚나부 품종은 아직 하나 두 개 밖에 안 폈다. 사실 얘들이 다 핀다고 해도 워낙이 왜소하고 작은 놈들이라 우리가 아는 풍성한 벚꽃엔딩은 꿈도 못 꾼다.


작년 이맘때. 영 안돼보이는 벚나무들에 몇 안되는 꽃송이가 달려있음ㅋㅋㅋ

이러다보니 벚꽃축제인데 벚꽃을 보러 간다는 의미는 없고(또르르.. 한국 벚꽃보고싶다 ㅠㅠ), 그냥 도로를 막아놓고 하는 축제에 놀러가는 셈이다. 판데믹때 잠깐 주춤했었는데 최근 1-2년에는 세상에 세상에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오늘, 벚꽃 없는 벚꽃축제. 사람많다! 멀리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세일스포스 타워


길을 막고 양쪽으로 부스가 들어서서, 굿즈도 팔고 헬스케어/경찰 등등 공공센터들도 나와서 뭐 이것저것 이벤트를 한다. 한쪽에는 다양한 음식이나 간식을 팔고, 삿뽀로 부스에서 맥주도 사 먹는다. 음식은 영 구미가 당기는 것이 없어서 패스. 길거리 부스는 물론이고 건물 안 에도 이것저것 많다. 원래 있는 가게들에서는 축제 기념 특별메뉴나 간식을 내놓기도 하고, 평소에 그냥 커뮤니티 공간이었던 곳에 팝업스토어나 행사전시도 많이 하고 있다. 무대도 두 개가 있어서 여러가지 공연을 하는데 그냥 동네 사람들이 하는 느낌이므로 나는 크게 재미있거나 하는 건 못 느껴서 또 안 봄ㅋㅋㅋ


실내에도 구경할 게 많다. 1층엔 인생네컷 부스도 있음ㅋㅋㅋ  (왼) 아트굿즈페어 (오)돼지고기바오번


실내에서 구경을 하다가 평소에 비어있던 웨스트타워 2층에 사람이 엄청 많이 있는 걸 발견해서 들어갔다.



어맛? 빈티지 팝업스토어였다.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옷들의 상태가 좋았으며 디자인이 이상하게 올드한데 힙했다 (왜죠). 굳이 뭘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디서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정말 신기한 옷들. 칼하트 제품도 엄청 많았는데 남편은 "세상에 칼하트 구제가 이렇게 인기 많은 줄 알았으면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싹 다 거둬와서 파는건데- 왜 이게 너덜너덜 할 수록 가격이 더 높냐(칼 하트는 원래 농장/워크샵 등에서 일할 때 입는 작업복)" 하며 아쉬워해서 웃겼다. 무슨 레이싱 재킷부터 시작해서 할아버지 스러운 귀여운 스웨터가 있어서 봤더니 실제로 '시니어 골프클럽'이라고ㅋㅋㅋㅋ새겨져 있어서ㅋㅋㅋ 진짜 어느 할아버지의 골프클럽 단체티였던 ㅋㅋㅋ


그러다가 마음에 들고 질이 좋은 보라색 티를 발견해서 20불에 득템. 그런데 남편이 보더니 "That's an expensive brand. Good find (그거 고급 브랜드제품인데, 잘 찾았네)" 했다. 브랜드를 잘 모르는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했다. 무엇보다 이 귀여운 팝업스토어 좌표를 빈티지제품을 좋아하시는 한양회 작가님께 황급히 전달했다.







작년보다 볼 게 많았아서 그냥 슝 둘러보려고 왔다가 3시간은 족히 보냈다. 따지자면 길거리축제 + 길거리공연 + 코믹콘 + 아트페어 + 지역축제를 뒤섞어놓은 느낌. 나는 일본도 안 좋아하고 한국 옆에 일본에 가면 되지 뭐가 그렇게 다르냐고? 바로 로컬 아티스트들의 뛰어난 창의성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재밌고 귀엽게 녹여낸 것이 축제의 포인트다.



'LobsterTee' 의 재밌고 귀여운 셔츠 프린트

왼쪽 디자인: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브릿지는 안개가 많이 끼는데, 이 안개에는 칼(Karl)이라는 이름이 있다. 귀엽게 이름을 붙여서 칼을 그려넣었다. 로컬은 정말 저게 이해가 가는게, 저 안개는 엄청 두꺼워서 당최 잘 움직이질 않는데 걔를 의인화 해서 참 귀엽게도 해놨다.


오른쪽디자인: 바트(BART)는 샌프란시스코-이스트베이에 있는 지하철노선 이름이다. 한국같이 좋은 지하철 노선은 미국에 없고 대부분 이런 대중교통은 '저소득층 복지'의 개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별 말도 안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무튼간 비교적 빨리 노선이 끊기는 걸 놀리면서 "12시가 되면 마법이 사라져요.." 하고 'a'를 신데렐라의 호박마차마냥 그려놨다.



게다가 이번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 부스도 찾았다.


이 사람 제품을 처음 본 곳은 재팬타운 안 문구점인데, 엄청 귀엽게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와 특징을 잘 잡아 그렸다. 스티커도 있고 코스터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든엽서. 몇 달 전 구독자 100명 이벤트를 하면서 보내드렸던 바로 그 굿즈다.

게(게가 원래 잘 잡혀서 유명했었음) 도 귀엽고 골든게이트도 귀엽고 저기 뒤에 언덕에 코잇타워 도시뷰도 찰떡 ㅠㅠ


사람이 많아서 처음엔 안에를 못 보고 모르고 지나갔다가 두 번째에 알아봤다.


여기도 칼 안개가 있다(중간사진). 아 저 해가 삐쭉 하고 뒤에서 에잇 두고보자 하는 것 같이 주먹을 흔드는거 너무 귀여워 ㅠㅠㅠ


어떻게 샌프란시스코의 그 로컬스러운 느낌을 꼭 찝어서 귀엽게 그려놨는지 ㅠㅠ 중간에 있는 Karl the fog (안개돌이 칼) 디자인이 넘나 귀여워서 티셔츠가 있으면 사고싶었으나 아직 제품이 안 나왔다고 해서 나중에 홈페이지에서 사려고 명함을 대신 들고 나왔다.


개인적으로 미국사람의 굿즈 만드는 재주가 영 탐탁지 않다. 엄청 좋은 컨텐츠가 많은데 굿즈는 영 대충 그림판에 붙여넣기 하고 굴림체로 글씨 넣은 느낌. 그래서 잘 보면 디즈니랜드 제품들도 귀여운 것 만 귀엽고 나머지는 영 아니 디자인을 왜 저거밖에 못 뽑았어- 하는 느낌이 든다. 굿즈는 차라리 일본이나 홍콩 게 더 귀엽다. 그래서 홍콩 공항에 디즈니스토어 갔다가 정신을 잃을 뻔 했었다. 같은 캐릭터인데 뭔가 훨씬 귀여워ㅠㅠ 고퀄이야ㅠㅠ


그래서 뭔가 나는 이게 마음에 드나보다. 일본의 헤리티지를 가지고 미국에 온 사람들. 일본이 본국에서 한국에 만행을 저지르고 미국에 폭탄던지고 미친짓거리를 하며 고통을 주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 사는 죄 없는 일본인들이 그 업보를 맨몸으로 받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해서 많은 미국인 청년들이 죽어났으니, 그 분노가 어디로 가겠는가. 여기에 살던 일본인들은 운이 좋으면 재산을 뺏기거나 강제이주를 당하고, 운이 나쁘면 린치(집단 폭력이나 고문)를 당해 부상입거나 죽었다. 이 감정은 60-70년대까지도 끝나지 않아서 계속 차별당했다.


그래서 재팬타워 안에 있는 타워는 '평화'를 강조한다. 나는 이걸 볼 때마다 짜증이 나기도 하고 안 됐기도하는 복잡한 감정이 든다. 지들이 폭탄던지고 고문하고 전국민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프로파간다로 난리를 쳐 놓고서는 '평화'라고? 하며 화가 났다가도, 그래- 미국에 살았던, 전쟁에 가담하지 않은 일본인들은 일본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죽임과 폭력을 당했으니. 이것은 인과응보인가 그냥 튄 불똥인가. 설상가상으로 거듭하여 역사를 가르치고 기리는 독일과는 달리 일본 우익들은 감추고, 교육하지 않고, 거짓말로 가리기에 급급해왔다. 힘없는 이 일본계 미국인들이 뭘 할 수 있을까. 그저 평화를 바라는 수 밖에.


어쨌든 그들은 살아남았다.


 일본의 경제가 부흥했고, 미국에서의 지위도 올라갔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이렇게 귀엽고 섬세한 동양의 터치로 샌프란시스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에 나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코리안타운 없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류의 영향을 받아 한국 비즈니스의 위상도 올라가고 있으니, 때는 지금이다. K- 굿즈는 월드클래스 아니던가! 더 현대에 입점하는 팝업스토어들 뭐하나- 재팬타운을 야금야금 코리안타운으로! ㅋㅋㅋㅋㅋㅋ








PS. 아까 구매한 그 티셔츠는 브랜드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가 집에 와서 찾아보니, 비슷한 제품을 홈페이지에서 168불에 팔고 있음??!!?!?!?




재밌게 구경도 하고 재활용도 하고 질 좋은 제품도 저렴하게 샀는데 그걸로 글도 썼으니, 썩 생산적인 주말이 아닐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시면, 미국과 일본이 퓨전됐는데 한국맛 나는 한국 음식도 찾을 수 있는, 재팬타운 나들이도 함께 가봅시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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