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꽁이 일기(1)] 우리 부부가 고양이 집사가 된다는 것
1.
‘우리’에겐 아이가 없다. 결혼한 지 12년. 의도한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다.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삶의 동반자’가 아이를 특히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게 사람 의지만으로 되진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다. 다만 ‘삶의 동반자‘가 길을 가다 어떤 아이를 볼 때, 특히 미소 지으며 그 아이를 한참 바라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아이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하지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진 않다.
2.
아이 대신 고양이 기르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아니다. 아이와 고양이는 서로를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동물을 좋아한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다른 동물에 비해 조금 더 있는 정도.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어떤 생명‘과 인생을 함께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 문제를 두고 수년 동안 고민을 해왔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최근 결정을 앞당기게 된 계기가 있었다. 동네를 배회하는 길 고양이가 있다. 어미와 새끼 고양이.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새벽 방송하러 나오다 차 밑에 웅크리고 있는 두 녀석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여러 번이다. 비 오는 날이면 주차장 한편에 웅크리고 앉아 비를 피하는 녀석들이 눈에 계속 밟혔다.
그런 날은 ‘삶의 동반자’와 함께 고양이 간식과 먹을 것을 빈 그릇에 담아 ‘녀석들 다니는 길목‘에 뒀다. 다음날 빈 그릇을 보면 맘이 뿌듯했고, 얼마 먹지 않은 걸 보면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러기를 여러 번.
후배가 연락을 한 게 그 무렵이다. 유기묘 입양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 생각은 항상 해왔지만 그땐 느낌이 평소와 달랐다. 그 연락을 받고 나서 계속 동네를 배회하는 ‘그 녀석들‘ 생각이 났다. 눈에 밟혔다. 그 녀석들은 왜 우리 동네를 계속 돌아다니는 거지? 길냥이인가? 아니면 유기묘인가? 어쩌다 동네 부근에 계속 있는 거지 … 등등.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그 녀석들’을 다시 보게 됐는데 … 혼자였다. 어미 혼자만 보였다. 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에도, 그 며칠 뒤에도 … 새끼는 계속 보이지 않았다. 새끼 고양이가 길에서 생존할 확률이 높지 않다던데 혹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까지 새끼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 부부가 유기묘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건 이 즈음이다. 사라진 새끼 고양이가 계속 생각이 났다. 운명인가 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3.
‘우리 부부’가 고양이 집사가 된다는 것 – 양가 부모님에겐 더 ‘특별’하다. 그건 우리가 아이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6대 독자에, 종갓집 장남이지만 결혼한 이후 지금까지 아이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부모님이 나와 ‘삶의 동반자‘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눈치를 더 본 것 같다. ‘아이는 언제?’ ‘아이는 어떻게 할 거냐’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양가 부모님 모두가 그랬다.
그래서 ‘집사가 된다‘는 얘기를 양가 부모님에게 할 때 – 정말 미안했다. 혹시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계셨다면 우리가 그 ‘끈‘을 끊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처음엔 양가 부모님 모두 좀 놀라셨던 것 같다. 고양이를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를 입양하겠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냥꽁이 후원자‘가 됐다. 심지어 어머니는 여유되면 ‘한 녀석’을 더 입양하라고 한다. 냥꽁이 보라고 유기묘들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그중 한 녀석’이 눈에 밟히시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세 녀석을 감당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그렇게 우리는 냥꽁이 집사가 됐다. 정말이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렇게 기다렸던 냥꽁이가 내일(2일) 집에 온다. ‘두 녀석‘은 알까. 우리가 그렇게 만나게 됐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