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는 선생님이 아니다

by 숫자의언어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막연히 기대했다. 상사는 나를 가르쳐주는 사람일 거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주고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설명해줄 거라고 믿었다. 질문하면 답을 주고, 틀리면 고쳐주고, 성장의 방향을 잡아주는 존재일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만난 상사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는 평가자였다. 결과로 말했고, 과정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보다 결과가 왜 이 모양이냐는 말이 먼저 나왔다. 실수를 하면 이유를 묻기보다 책임을 물었다. 학교에서는 틀리면 배움이 되었지만, 회사에서는 틀리면 기록이 되었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상사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건 네가 판단할 문제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처음엔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아직 잘 모르는데, 왜 알려주지 않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회사에서의 판단은 정답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상사는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대신 책임져주지는 않았다.


학교에서는 노력하면 점수가 올랐다. 회사에서는 노력해도 결과가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야근을 했다고 성과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다고 인정받는 것도 아니었다. 상사는 “열심히 했다”보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고 물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말문이 막혔다. 내가 쌓아온 기준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들어왔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상사는 나의 감정을 관리해주지 않았다. 힘들다고 말해도 “다들 그렇게 버틴다”는 말이 돌아왔다. 공감보다는 현실이 먼저였다. 그 말들이 차갑게 느껴졌지만, 돌이켜보면 회사는 감정을 다루는 공간이 아니었다. 감정은 개인의 영역이었고, 업무는 업무였다. 그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면 상처만 커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상사를 선생님처럼 바라보는 순간부터 실망은 시작된다는 것을. 그는 나를 키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동료이자 관리자인 것이다. 그 기대를 내려놓자 관계가 조금은 편해졌다. 상사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고, 나를 증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참고해야 할 변수로 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진짜 선생님은 따로 있었다. 반복되는 실수, 무시당한 아이디어, 인정받지 못한 보고서, 그리고 야속한 평가 결과들. 그 모든 경험이 나를 가르쳤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내 책임인지, 그리고 어디서부터는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상사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의 선생님이 되어야 했다. 배우려면 관찰해야 했고, 성장하려면 기록해야 했으며, 버티려면 나만의 기준이 필요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로 회사는 조금 덜 잔인해졌다. 적어도, 기대가 빗나가서 생기는 상처는 줄어들었으니까.


회사에 다니며 가장 크게 배운 건 이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키워주길 기다리는 순간, 나는 멈춘다는 것. 상사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그게 회사에서 살아남으며 얻은, 가장 현실적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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