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사라진 내 이름에 대하여

by 숫자의언어

아침 출근길, 지하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잠시 이름을 내려놓는다. 어제까지 불리던 이름은 가방 속에 접어 넣고, 대신 직함과 역할을 꺼낸다. “대리님”, “주무관님”, “담당자님”.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아니, 불릴 일이 없다. 그곳에서 나는 사람이기보다 기능에 가깝다.


학교에서는 이름이 중요했다. 출석을 부를 때, 발표를 할 때, 시험지를 받을 때마다 이름은 곧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이름이 필요 없다. 누군가 나를 찾을 때도 “누구 누구 있나요?”가 아니라 “이거 담당이 누구죠?”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이름은 빠지고, 업무만 남는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회의실에서는 더 선명해진다. 말하는 사람의 이름보다 직급이 먼저 떠오른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내 의견은 맞고 틀림을 떠나, 아직 ‘그 직급의 말’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하고 싶은 말보다 해도 되는 말을 고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 목소리는 조금씩 흐려진다.


퇴근 후에도 이상한 잔여감이 남는다. 집에 돌아와도 바로 ‘나’로 돌아오지 못한다. 하루 종일 불리지 않았던 이름이 어색하다. 가족이 이름을 불러도 반 박자 늦게 반응한다. 회사에서 쓰던 말투와 표정이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월급은 받았지만, 마음은 아직 퇴근하지 못한 상태다.


가끔은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 내 이름이 회사에서도 불린다면, 일하는 태도는 조금 달라질까. 실수했을 때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죠?”가 아니라 “괜찮아요,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요”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면, 우리는 덜 지칠 수 있을까.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사람이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니까.


물론 회사는 학교가 아니고, 일은 감정으로만 할 수 없다. 성과와 책임이 분명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름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사람도 조금씩 사라진다. 감정은 억눌리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결국 남는 건 ‘버티는 법’뿐이다.


그래서 나는 출근길에 사라진 이름을 퇴근길에 다시 찾아오려 한다. 퇴근 후의 작은 습관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을 만나고, 아무 목적 없는 시간을 보내는 일들. 그것들이 나를 다시 나로 만든다.


회사에서의 나는 역할일 수 있지만, 삶에서의 나는 이름이다. 출근길에 잠시 내려놓았을 뿐,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 다시, 이름으로 불리는 하루를 위해서 오늘도 가방 속에 내 이름을 잘 챙겨 넣는다. 내일 아침, 또다시 꺼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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