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한다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때

by 숫자의언어

“일 진짜 잘하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예전엔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는 말 같았고,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일을 잘한다는 말은 대개 일이 더 많아질 때 함께 온다.


“네가 제일 정확하니까”,
“이건 네가 해야 안심돼”,
“어차피 네가 하면 빨리 끝나잖아.”


그 말들은 칭찬처럼 포장돼 있지만, 실은 책임의 이관에 가깝다.
잘한다는 이유로 일이 몰리고, 잘 버틴다는 이유로 쉬는 법을 잊게 된다.
거절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계속해서 일이 주어지는 구조 속에서,
‘일 잘한다’는 평가는 보상이 아니라 전제조건이 된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을 잘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많이 하고 있는 걸까.

성과는 눈에 보이지만, 소진은 그렇지 않다.


야근을 해도, 주말에 메시지를 확인해도, 표정은 최대한 평온하게 유지해야 한다.
피곤하다는 말은 유난이 되고, 힘들다는 말은 약함으로 오해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버티는 법부터 배운다. 잘하는 법보다, 참는 법을 먼저 익힌다.


‘일 잘한다’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건,
그 말 뒤에 따라오는 질문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힘들지는 않아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이건 누가 나눠서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 질문들은 잘하는 사람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잘하고 있다는 이유로, 괜찮을 거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하는 사람도 지치고, 잘하는 사람도 흔들린다.
다만 그걸 티 내지 않을 뿐이다.


회사에서의 평가는 대부분 결과로만 남는다.
과정에서 얼마나 버텼는지, 어떤 감정을 삼켰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성취보다 회의가 앞선다.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얻는 건 뭘까’라는 질문이 자꾸 떠오른다.

일을 잘하는 것과 일을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일을 잘하는 것과 나를 지키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회사는 종종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잘하는 사람에게 더 기대고, 더 맡기고, 더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일 잘한다’는 말보다 이런 말이 더 듣고 싶다.

“이만하면 충분해요.”
“이건 꼭 네가 안 해도 돼요.”
“오늘은 조금 쉬어도 괜찮아요.”


그 말들은 성과를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오래 남게 만든다.

일을 잘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말이 나를 계속 같은 자리에 묶어두는 말이라면,
칭찬이 아니라 경고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는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퇴근을 늦추고,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마음을 뒤로 미룬다.


혹시 지금의 내가 그렇다면,
‘일 잘한다’는 말 앞에서 잠시 멈춰 서도 괜찮다.
그 말이 정말 나를 위한 말인지,
아니면 나를 더 쓰기 쉬운 사람으로 만드는 말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도 좋겠다.


일을 잘하는 나보다,
지치지 않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배워도 될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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