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잔 개발자이신 김재호 님의 글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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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이해진 의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네이버란 간판 떼고 나가서 아무 서비스나 한번 만들어보세요. 몇 명이나 써줄 것 같아요?
10명이나 다운로드하여줄까요? 지금 네이버란 간판이 여러분들이 만드는 서비스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못 믿겠으면 나가서 한 번 해보세요. 그게 여러분들 진짜 실력이에요."
(... 중략...)
이해진 의장님이 한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만든 앱은 하루에 1명도 설치하지 않은 날들이 많았습니다.
너무 우울해서 독한 술로 슬픈 패배감을 달래곤 했습니다.
마음이 어찌나 쓰린지 맥주 같은 술로는 달래 지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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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한잔>을 운영 중인 1인 개발자 김재호 님
큰 규모의 회사에 다니다 보면 느끼는 것이 많다.
개념도 잘 모르는데 입부터 터는 사람,
자체 개발을 못하는데 의사결정하는 개발자,
예전의 경험으로 지금도 맞다고 목소리만 큰 사람.
살면서 창업도 해보고, 소소하게 시장에서 성공도 해보니
회사 내에서 잘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불쌍해졌다.
결국 명함하나로 월급쟁이를 유지하며,
바깥으로 나오면 자생할 수 없는 온실 속 화초 같은.
반대로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큰 규모의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온갖 경험들을 하고 온 나 자신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나는 여동생과 자랐다.
여동생과 자라다보면 여러 가지 착각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구나'라는 것이다.
여자인 동생보다 힘도 세고,
먼저 태어났으니 아는 것도 더 많을 것이고,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내가 동생을 봐야 하니 리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내가 탁월한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경쟁자는 내 동생이 아니다.
내 또래 아이들이나 진즉에 시장에 진출한 사람들이 경쟁자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업무를 모르는 신입 후배들 상대나,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은
잘 모른다고 깝죽대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일이다.
하수 중에서도 하수이다.
나는 가끔씩 컴퓨터 비전공자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IT 직원들을 본다.
직접 대규모 개발도 안 해보고 하청업체 개발자들 시키면서 회의에서는 소리 뻥뻥 치는 사람.
밤새면서 API 문서 보며 겨우 날짜 맞춰서 개발하고,
창업을 통해 온갖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시장에서 살아남은 내 입장에서는 가소롭다.
대놓고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아키텍처니, 통신이니, 웹에서 안 되는 것들 설명할 수 있냐고.
오히려 내가 전문 용어를 쓰면서 다 가능한 것들이라고 지적하니
그제야 "혹시 개발자 출신이세요..?" 한다.
그 이후로는 본인이 하지 못하는 것을 '시스템 상 안 돼요'라고 덜 얘기하더라.
한 명의 성공 스토리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는 내가 회사에서 실제로 만난 사람으로,
그분은 내가 할 묘사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다.
그분은 하청업체의 기획자였다.
나이는 많았다.
40대 후반이었는지 50대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결혼을 늦게 하신 편이라 중학교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혼을 하셨는지 싱글 대디로 아들과 둘이 산다고 했다.
앱과 웹을 기획하는 업무를 하는 하청업체 상주 직원이었는데
맨날 개발자에게 기획해 가면 '이것 안된다, 저것 안된다.' 거절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 도대체 소프트웨어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길래
이렇게도 자신을 무시하면서 까내리나 싶었단다.
그 다음날 서점에 가서 안드로이드 책을 사서 앱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몇 달 이후에는 웹 서비스까지 개발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론칭하셨다.
그때 개발된 서비스는 그 분야에서는 꽤나 유명해져서
아예 사업자를 차렸고,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가장 위에 뜨는 서비스가 되었다.
(힌트를 드리자면, 직장인이나 가족 단위 취미로 많이 찾는 사이트 중 하나)
사람의 성장은 어디에서 올까?
내 경험상 성장은 열등감에서부터 강한 폭발이 시작된다.
나는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 옆에서 혼나면서 배웠다.
코딩을 못할 때도 변수부터 알려달라고 선배들한테 가서 졸랐다.
영어 단어와 숙어의 원리를 아니까 문장 구성이 가능해졌고,
몇 개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보면서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게 됐다.
어떤 영역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영어든, 코딩이든, 사람들 간의 관계이든.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인식에서 시작하는 것이 성장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우리 삶 가는 곳마다 나보다 고수가 있는 법이다.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까 본인이 탁월하다고 생각하는가?
10억을 벌면 100억 번 사람이 보이고,
100억을 벌면 조 단위의 사람들이 보이는 법이다.
인생의 가치는 타인에 대한 멸시와 무시에 있지 않다.
있다면 존중과 양보 그리고 희생 쪽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