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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Apr 28. 2021

시어머니 냉장고는 장식장

며느리가 시어머니 부엌을 뒤집어 엎다

시어머니 집으로 가사도우미-며느리(나)의 첫 출근이다!


아침 5시 50분에 기상!  정각 7시에 부르릉 차 시동을 걸고 집을 나간다. 평상시 직장에 출근할 때보다  이른 시각이다. 시어머니가 사시는 시카고는 내가 사는 서버브에서 차로 대략 한 시간 거리다. 트래픽 때문에 서둘러야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다.


준비랄 것도 없지만 대충 얼굴은 선크림 정도로 마무리한다. 옷차림은 가사도움이니 대~충이 아니다. 스니커에 블루진 차림이지만 내 멋에 산다고 좀 멋을 낸다. 아무리 시어머니의 가사도움이라도 나에겐 외출이요, 소위 출근이라는 것이 아닌가?


짠~드디어 도착이다!


“굿모닝! 어머니~”


”응, 어서 와!”

미리 시간에 맞춰 문을 살짝 열어놓으셨다.


대뜸, 시어머니가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본다. 눈초리가 “ 아니, 쟈는 밥하러 오는 얘가 무슨 바바리코트까지 걸쳤냐? “라고 한소리 하는 듯하다.^


뭐 , 그건 어머니 관점이고, 가사도움이라 꼭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해야 하나? 이건 어디까지나 며느리 스타일이라고요, 어머니이~” 하고 나도 속으로 한마디 중얼거렸다.


“여기 앞치마 혀! 옷 버리니께  응?” 하며 건네준다.


음 , 제대로 시키실 준비가 되셨나 본데.. 나도 작업복용으로 가져온 여벌로 루즈한 차림으로 체인지했다. 거기에다 앞치마까지 걸치니 그럴싸한 가사도우미 스타일로 갖추어졌다.


“어머니~잘 부탁합니다!”


“ 뭐, 별거 없어, 그냥 쉬엄~쉬엄해” (앞치마 주셔놓고?)


하지만 내 눈은 자동으로 한 곳에 꽂혔다. "음. 예상대로 오늘의 타깃은 키친이로군” 순간, 나도 모르게 눈썹이 치켜 올라가면서 인상까지 썼다.


“오! 마이 갓!!”


아니, 웬 쓰레기더미? , 키친은 마치 플라스틱 공장 같았다! 싱크대부터 식기세척기까지 빈 플라스틱 통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 그릇들과 섞여 난장판이었다. 무질서도 그런 무질서가 있을까?


시어머니의 일상은 왠지 무질서 속에서 느끼는 풍요(?)와 평안(?) 같은 것이랄까? 그랬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정갈함이 주는 적막감보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것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시어머니의 부엌에도 철학(?)이 있다는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튼 결심했다! 오늘 기어코 키친의 아수라장, 무질서를 바로 잡겠노라고. 이때부터 나와 시어머니 간에 한바탕 사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걸 치우려니 엄두가 안 나죠? 오늘 제가 정리합니다!”.


“아녀! 이거 다 쓰는 거야~~~~~~~~~~~!!”


시어머니는 당장 "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갖 플라스틱 통과 잡동사니들이 부엌을 점령하고 있어 가사 도움이가 설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딱 잘라 선언을 했다(마음속으로). 싹~쓸어버리기로! 하면 안 될 것 같고 , 97퍼센트만. 그 정도로 할 수 있다면 성공이다.


음식을 오더 하거나 사면 담겨오는 플라스틱 통은 튼튼하고 나름 쓸모도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쌓아두면 집안 꼴은 우습게 되고, 짐만 되고, 그러다 보면 쓰레기 더미가 된다.


이걸 한꺼번에 처리하면 시어머니가 격노하실게 뻔하다. 마치 집에 축적해둔 재산을 덜어내는 것처럼. 그래서 잠깐 궁리 끝에 아이디어가 생겼다.


"어머니~ 교회에 도네이션 할까요?"


"뭘?


“플라스틱 통, 통들이요! “


사실 , 플라스틱 통은 교회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 물품이다. 너도나도 런치가 끝나면 남은 밥, 국을 가져가느라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 역시 가끔 공짜 밥이나 국을 가져오는 장본인이지 않나. 시어머니의 눈빛이 잠시 반짝거렸다.


어? 그래? , 그랴! , 몽땅 줘 버리자아~”


교회라면 헌신, 충성도 맹세하는 시어머니다. "도네이션"이라는 말에  단번에 예스다! 간단하게 플라스틱 통 꾸러미들은 교회에 헌납하게 되었다. 딱 두 개의 플라스틱 통만 임시방편으로, 시어머니의 위로용(?)으로  남겼다.


다음은, 냉장고 비우기다. 밥을 잘해 먹으려면 신선한 식품재료가 필요하고 , 그러려면 냉장고의 청결은 필수다. 냉장고 문을 여니 안에 있는 식품들이 와르르 쏟아지기 직전이다. 무언가가 빼곡히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냉장고는 숨을 못 쉴 정도로 헉헉거리고 있었다.


무슨, 무슨 장아찌들이 한동안 묵어 터져 냄새가 진동하고,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식품들과 뒤섞여 그야말로 냉장고는 아수라장이었다!  드시다가 잊어버리고, 아까워서 못 버린 것들도 한몫하고 있었다.


"어머니~음식들이 상했어요! 이것도 버려야 되고요!, 저것도요!" 이것들 때문에 다른 음식까지 상한다고 하며 감히 언성을 높였다.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의 거센 공격(?)에 질세라 언청을 있는 데로 높인다.


" 괜찮혀!, 그냥 둬~~~, 내일 먹을 거야! " (이 말은 시어머니와 연배이신 친정 엄마도 자주 써먹는 말이다)


 이렇게 시어머니와 나는 냉장고 청소를 놓고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듯 다시 옥신각신했다. 아예 건방진 며느리가 되기로 작정하고 밀고 나갔다. 한 시간 가량을 치우고, 버리는 일을 했다. 무슨 동김치병이니 오래된 크고 작은 병을 아마 열개나 비우고, 버렸을 거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그러는사이 빈병 하나라도 구제(?)해내려는 시어머니의 항의에 부딪혔다. 양보와 타협은 항상 있는 법. 일단 몇 개만 보존(?)하기로 합의를 했다.


우스운 건 여든 시어머니는 무거운 병들을 가볍~게 핸들 하고 , 며느리는 병 하나를 움직이느라 낑낑대고 있었으니 가관이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강하다!. 그토록 무거운 항아리들을 애지중지하고 있었는 걸 보니.


시어머니가 거주하는 아파트 3층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조그만 홀이 있다.  그곳으로 쓰레기를 집어던지면 미끄럼 타듯 쑤-욱 내려가 털~커덕 하며 떨어진다. 그 소리가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배시시 웃지만, 시어머니는 가슴이 미어터지는 듯해 보였다. 아이고~ 내 애물단지들 ~하며 몹시 애석해했다.


하지만 며느리는 가사도우미고, 시어머니께 따끈하고, 맛난 음식을 해 드려야 하는 임무가 있지 않는가, 그러려면 부엌이 요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허, 참 시어머니겐 미안하긴 하다. 시어머니만의 철학(?)이 담긴 부엌을 뒤집어버리는 중이니...


시어머니는 살짝 골이 나 있는 듯했다. 며느리가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쳐 부엌을 차지하듯  저 난리를 쳤으니.. 좀 달래 드려야 한다.


“어머니-~상한 음식들을 버려야 신선한 음식들을 살릴 수 있잖아요~” 하며 아이처럼 달래고, 설득했다.

냉장고 정리가 끝날 무렵에  "그럼, 이것도 버려?” 하는 말씀이  드디어 튀어나왔다!  일단 말이 통한 셈이다. 아! 냉장고 청소도 무사히 끝났다.


시어머니는 말끔해진 부엌과 냉장고를 이리저리 훑어보고, 들여다보았다. 왠지 휑한 빈 공간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간 애써 모은 애물단지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것들이며, 모으면 집안이 지저분해지고, 돈도 안되고, 치우려면 감당하기도 힘든 잡동사니, 헌것들이다. 근데 시어머니는 왜 버려야할 오래된것들에 집착할까?..


그렇게 부엌을 점령하고 있는 사소한 것들이며 냉장고의 음식들은 어쩜, 시어머니에겐 장식품 같은 것이 아닐까?.. 누군가 담가준 깻잎, 오이장아찌, 작년 겨울에 사둔 맛난 동김치등은 보기만 해도 왠지 배부르고, 든든하다.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근한 벗같아서 막 먹어치우지도 않는다. 고이 접어둔 서랍장의 은 수저처럼 지니고 있던 애틋한 장식품 같아서 말이다.


시어머니에겐 냉장고는 장식장이다. 이것저것 다양하고 오래묵은 음식들로 꽉 채워진 장식품들이 들어있는것과 같은. 


아무래도 조금 휑한 냉장고의 빈자리를 얼른 채워놓아야겠다. 내 손으로 만든 무우 장아찌나 반찬들이며 새로 산 식품들이 시어머니에게 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어째, 냉장고안의 새로운 장식품들은 좀 낯설기도 할 덴데,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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