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자는 찾을 때까지 찾는 것을 멈추지 말지니라!

도마복음 재해석

by 행복스쿨 윤정현

"누구든지 이 말씀들의 해석을 찾아내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찾는 자는 찾을 때까지 찾는 것을 멈추지 말지니라. 찾게 되면 그는 고뇌하게 될 것이요, 고뇌하게 되면 경이로워할 것이며, 마침내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도마복음 1~2절)


누구든지란 누구나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말씀들이란 진리는 특정한 것에 갇힌 것이 아닌

모든 것들에 스며 있다란 의미다.

이 말씀들의 해석이란 진리의 경이로움을 찾아낸 상태를 말한다.


해석을 찾아낸다는 것은 그 해석이 어렵다는 말이다.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말은 그만큼 어렵기에 그 대가 또한 크다는 의미며,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말은 삶의 경지를 초월한 초인의 경지다.

죽음을 이긴 자는 예수나 붓다, 노자와 같은 마스터만 가능한 경지였다.


찾을 때까지란, 찾는 것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그 방법이나 길도 모른다는 의미요

또 그러한 방법론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르쳐 주는 것도 의미 없음이요

찾는 것을 가르쳐줄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음을 말하고 있다.

오로지 찾는 노력과 열정만 멈추지 말라는 말이다.

그래서 찾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찾으라고만 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왜냐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나 모름의 길을 찾아내려는 진리에 대한 너의 열정과 지극 정성이 중요함을 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곧 "네가 진리를 사랑해서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와 의도를 보겠다는 그것 하나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곧 진정성이다.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의미도 일맥상통한다.


“그대가 어떤 일을 해내고 못해내고는 별로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꽃을 아름답게 피우기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그대의 간절함, 그대의 아픔인 것이다. 이 생각이 그대의 존재 전체 속으로 퍼지게 하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만 생각하라.” (탄트라비전Ⅰ275)


"네가 하는 일을 하늘이 알도록 하여라! 이 세상 그 무엇을 움직일 수 없을지라도 하늘만 움직이도록 하여라!" (벽오금학도)


그래도 찾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의미는

그 멈춤이 그치면 영원히 찾을 수 없지만,

멈춤이 그치지 않고 열정이 있다면

길을 몰라도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찾으면 고뇌한다는 것은, 찾는 것은 인지의 단계라는 말이다.

그 지식의 지적 알아차림, 곧 깨달음의 인지 단계일 뿐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그것이 가슴의 공감 단계와

몸의 체화 단계를 거쳐 내재화되는 것은

또 무한의 반복과 넘어짐이 수반되기에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뇌와 갈등, 포기하고 싶은 번민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스스로에게 갖는 의문도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찾은 자는 무언가를 본 자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신비를 맛본 자다.

진리가 주는 심미함과 신비로움이 온 우주보다 고귀하다는 것을 발견한 자다.

그렇기에 그 길을 가면서 넘어지고, 실수하고, 약간 벗어날 수는 있으나

자신의 생명보다 귀함을 알기에 그 경로에서 탈출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 고뇌를 통하여 진리의 경이로움을 발견한 자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신뢰하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 (괴테)


이는 괴테가 말한 상태를 명료하게 알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그는 어떻게 산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상관없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이미 사람의 시선을 초월한 자다.

그의 길은 오로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넘어져도 자빠져도 그 길만을 따른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길을 가는지 아는 자다.

그는 신념의 사람이요

삶의 가치와 목적성을 아는 자요

진실과 순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요

조건 없는 사랑의 순수성과 완전성을 침묵 속에서 발견한 자요

그 누구의 무관심 속에서도 홀로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자요

신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도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자로다.


없음의 거대한 공허 속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있음이 주는 진리의 경이로움은

자신의 모든 것과 바꾸고서도 티끌만큼도 아깝지 않음이로다.

그 진리의 경이로움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있음(I AM)이로다.


그 상태를 본 자요

마주한 자요

걷는 자로다.

이제 그는 없음의 상태에서도 그걸 행할 수 있음이로다.


마침내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는 말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자신이 대상과 하나가 되었는데

어찌 그 대상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에서 나와 둘이 되었고

둘이 셋을 낳아 만물이 되었으나

우리는 다시 하나로 만남이로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이로다.

만법은 회귀하여 일체유심조로다.



윤 정 현


어둠은 빛을 거절하나

빛은 어둠과 상관없이 나아가도다!

그것이 길이며 정로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역할이며 길이기에

자식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진리란 정로다.

인간의 어떠함이나 구차한 변명과 상관없이

어차피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가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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