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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ject Gyeool Aug 25. 2024

달에 간다면 너를 위해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실리카겔 노래를 말이야 







[1] 


우선, 사과부터 할게.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어. 

넌 지구 밖 행성에서 자랐고, 난 지구에서 자랐으니깐. 너와 나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보이는 확연한 차이, 

당연함에 숨어서 너를 영원히 미지의 존재로 남기려고 했어. 나에겐 그것이 편리했고 편안했거든. 


나는 가끔씩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해저로 내려가곤 했어. 

그 압력 속에서는 모든 소리가 둥글어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거든. 

근데, 있잖아. 네 목소리가 나를 가득 메우는 순간 나는 보호장치 없이 숨을 쉬고 있더라. 

눈 앞에 펼쳐진 바닷속에서 말이야. 


그래서 나는 너의 언어를, 문화를, 생각을 이해하지 않기로 결정했어. 

이대로 너의 목소리와 함께 무한히 바다에 갇혀도 괜찮다는, 그 단순함에 나를 던진 거지. 


그렇게 우리, 7년 만에 마주하게 될 줄은 모른 채. 



[2] 


그사이 너는 다른 행성에서 연주를 할 정도로 유명해졌고, 네 노래는 온 우주에 퍼져나갔어. 

나는 나의 작은 방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좋아하는 음악이 결국 다시 네 곁으로 돌아올 때는 더 큰 파동으로 밀려 들어왔을 테니깐. 


파도의 울렁거림은 사실 극한의 행복이라는 동어잖아. 


그런데 너는 정말로 그 파도를 잘 타고 있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어. 



[3] 


오늘은 식빵 하나. 우유 한 잔. 출근과 퇴근. 나는 무던히도 일상을 잘 지키고 있어. 

그런데 밤사이 네가 다녀갔는지 내 머리맡에 네 음성 메시지가 놓여있더라. 


처음 있는 일이어서 나는 조심스레 편지를 열어봤어. 

너의 음성이 웅웅 거리며 나의 작은 방을 돌아다녔고, 결국 의미조차 알 수 없었던 문장이 내 귀에 들어왔어.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말. 


나는 침을 조심스레 삼키며 손으로 내 목을 쓸어내려 봤어. 

얼마나 사용을 하지 않았는지 소리가 나오지 않았지. 


너도 알다시피 이곳은 너만큼 소리를 낼 수 없는 곳이잖아. 

그저 숨을 죽이고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이 전부인 세계에서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그것도 너와 함께?


모두가 각자의 벽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얇은 합판으로 이루어진 벽이라는 것을, 

소리를 낸다는 것은 벌금 이상의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네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나는 너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어. 

불가능함을 설명하는 일이 때로는 더욱 난제처럼 다가온다는 것을 네가 알아줬으면 했거든. 


하지만 너는 계속해서 나를 불렀어. 

그리고 변하지 않을 것처럼 단 하나의 문장이 울렸어. 


‘노래를 하자’ ‘노래를 하자’ ‘나와 함께 노래를 하자’



1/우주만큼의 희박한 가능성. 너와 나의 언어가 사실 동일하다는 진실 앞에서, 

나는 지난날의 나를 돌이켜 봤어.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언어로 입안에서 웅얼거렸던 말은 진실로 너를 향했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먹먹함에서 벗어나 당연함에 숨지 않기로 선택했어. 너의 확신 덕분에. 



[4] 


Ryudejakeiru / 나는 선조의 선조를 찾아서 노래 제목의 뜻을 물어보고 다녔어. 

너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거든. 하루 종일 찾아본 결과 총 세 개의 의미가 있었고 

단어를 어떻게 조합하는지에 따라 해석은 다양하다는, 어려운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어. 


나는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명확한 질문만이 나를 계속 두드리고 있었어. 


‘백만가지 재앙 속에서도 성실하게’ 네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Mercurial / 변덕스러운 나를 지키는 것. 너는 나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신호를 보냈던 일. 


Desert Eagle / 그리고 이 사막에서 꼭 살아남자는 유언. 

나는 그날로 내 전 재산의 반을 털어서 씨앗 하나를 샀어. 

어떤 한 생명이 이곳에서도 자라났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그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나는 나를 감싸 안았어.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버텨왔는지를 상기하면서 말이야. 



[5] 


그리고 나머지 돈을 전부 출금해서 우주 항공센터로 달려갔어. 

네가 달에 온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거든. 


나는 너의 이름도, 네가 노래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도,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지만, 나는 네 앞에 서고 싶었어. 이유는 없었어.


 네 앞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그저 그것 하나만 바랐던 것 같아. 


그런데 내가 항공센터에 도착했을 땐 모두 매진이라는 소식이 들렸어. 

그럼에도 나는 확신했어. 우리는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6] 


Kyo야. 낯선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너의 노래를, 너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어. 

나는 그 울림에 간신히 두 발을 딛으며 조심스레 너의 이름을 불러봤어. 


그리고 네 음악을, 네 가사를 조금씩 따라해 봤어. 

어긋난 음절 사이에도 다른 이들이 채워줌에 안도하며 다시 내뱉어 봤어. ‘우리 모두- 노래를 하자’ 


Kyo야. 나는 이제 노래를 해.  



[7] 


아마도 너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꿈을 꾸었던 걸까. 


다른 행성에서 만났던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이에게 닿을 수 있도록 너만의 노래를, 

언어를 만들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이제야 너를 통해 다른 이의 언어를 습득하고 분해하고 조합하며 이해하기까지 이르렀어. 

단 2시간의 공연을 통해서. 나의 낯섬과 너의 낯섬은 동류가 되어 서로를 융합했기에, 

그 힘으로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8] 


그러니 Kyo야.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어봐 줄래? 나와 함께 노래를 하자. 

그러니 Kyo야. 다시 한 번 나에게 확신을 줄래? 나와 함께 노래를 하자. 







실리카겔 T, Tik Tak Tok  / https://youtu.be/DIPxnt5vnhU?si=7othlS7-UDptmar3

실리카겔 Ryudejakeiru / https://youtu.be/23sM_7PtNvY?si=NjG9fgHi_sAxT_hG

실리카겔 Mercurial / https://youtu.be/Re1neDPgExQ?si=PnRxyILXu1TGCKbd

실리카겔 Desert Eagle / https://youtu.be/IWYft_hOIgo?si=FgeE5cS_beW2iK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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