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잖아.
[1]
나는 운동장 트랙에 서있다.
체력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오래달리기를 위해
신발 끈을 꽉 묶었고,
여전히 한낮의 해가 내리쬐는 햇빛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물도 한 모금 마셨다.
몇 분 안에 들어와야 1등급을 받을 수 있는지도
다시 확인했다.
그때,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오래달리기 시험은 3등급, 4등급 정도만 맞아도 괜찮다고.
어차피 내신에 중요하지 않은 항목이니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겠구나 했다.
[2]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3등급을 받는 것보단 1등급을 받는 게
더 기분이 좋지 않을까.
아무리 내신 시험에 중요하지 않은 항목이라고 하지만
멀리뛰기에서 낮게 받은 점수를 만회하려면
오래달리기 1등급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열심히 하지 않은 3등급보단,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미비하더라도
열심히 해서 1등급 받는 게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는 결국 같은 출발선에 섰고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뛰기 시작했다.
[3]
처음 한 바퀴는 쉬웠다.
의욕도 넘쳤고 나름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세 바퀴를 도는 순간부터 힘이 들기 시작했다.
숨도 거칠어졌고 옆에 지나가는 친구가
나보다 몇 바퀴를 앞섰든 뒤처졌든 간에
내가 이 시험의 끝을 완수할지가 관건이었다.
나는 아마도 그때 내 인생의 방향을 정했는지도 모른다.
끝이 정해져 있는 삶이라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은 싫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의 죽음이 허무하다거나,
실망스럽다거나, 슬프다거나,
정말로 그가 죽었을까 하는 의문보다는
아, 존 윅이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이 났구나.
그가 끝끝내 그의 끝에 도달했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4]
그가 다시 킬러로 돌아와
고위층을 향해 총을 겨누는 순간마다
‘넌 본성이 킬러이기 때문에 여길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라고 그의 본성을 비아냥거려도
그는 계속 나아갔다.
처음부터 그는 자신의 트랙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깐.
트랙의 달리기 속에서
그도 잠시 이탈해서 잔디밭에 앉았을 뿐이었다.
그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고,
결국엔 그 트랙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었다.
[5]
네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인 선택지를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삶을 비관적으로 생각할 순 있지만
그는 담담히 이 삶을 받아들였다.
너희들이 말하는 내 본성이 킬러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나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는 듯이.
그리고 너희들의 말처럼
나 지금 열심히 본분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삶에 최선을 다하진 않는 것은 아니라고.
이건 나의 트랙이니깐.
[6]
자기 할 일을 잘 하는 것,
끝까지 하는 것, 최선을 다하는 것
난 그가 정말로 멋진 인생을 살고 가는 것 같았다.
[7]
그래서 나도 잠시 숨을 골랐다.
여전히 트랙 위에 있으면서
잘 하는 것도, 잘 해내는 일도 없지만,
끝까지는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최선을 다하겠다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처럼 잘 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또 어느 날에는 잠시 잔디밭에 앉아 있어도
결국엔 다시 나의 트랙으로 돌아갈 테니
나의 끝을 완수하기 위해 달려나갈 테니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