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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우 Sep 11. 2018

'환경', 부잣집 고양이와 길고양이

'누구'는 좋은 환경에 있는데, '난' 왜 이런가


우리나라에는 길고양이가 많다. 그리고, 길고양이를 데려가 집사를 자처하는 사람도 많다. 같은 고양이라도 집에서 태어나 따뜻하게 집에서만 자란 고양이와 길에서 생활하다가 사람의 품에 들어온 고양이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은, 집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밖에 나돈 적이 없으니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이고, 길고양이는 변화한 환경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비교의 대상이 다른 고양이가 아닌, 환경의 변화라는 점에서 우리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동물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반면 사람은 '누구'는 좋은 환경에 있는데, '난' 왜 이런가에 대해 고민하며 비교의 대상이 다른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양이가 과연 부잣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를 부러워하면서 현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살아갈까?


다시 태어나면 부잣집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길바닥에서 고생할 필요 없이 그저 집사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놀아주고, 닦아주니까.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내가 무언가 노력하지 않아도 집사가 누구냐에 따라 인생이 이미 길바닥에서 생활하는 '다른 고양이' 보다 나을 테니까. 사람은 그 어떠한 생명체보다도 '상대적 박탈감'을 잘 느끼게 설계되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면, 행복할 수 있을까?


부잣집 고양이로 태어난다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환경에 대한 고마움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집사가 자신에게 해주는 그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다 보면 감사할 필요가 없다. 고양이는 주체가 남이 아닌 '나' 자신으로서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려 하고, 그 자체에 감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럴 수 없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때로는 진부하고, 성장을 막는 길이 되기도 한다.


부모가 국회의원이나 장관이었다면―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배경과 부러움의 대상의 환경을 서로 비교하며 자신의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을 근거로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성공요인을 부모님의 자산이나 직업과 같은 외부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그저 나쁘다고만 이야기하기엔 어렵다. 분명 개인마다 다른 성공의 기준에는 외부 요인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보니 어떤 사람은 부모의 지원으로 승승장구하고, 어떤 사람은 당장 먹고살기도 급급해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꿈에 가까울 정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살아가면서 환경 탓을 한 번쯤은 한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개인의 문제일까? 환경 때문에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닐까? 꼰대들은 노력 없이 환경 탓만 한다며 젊은 세대를 비판한다. 환경 탓하는 게 뭐 어때서? 그들이 노력이라 말하는 것을 우리는 노오오력이라고 비꼬면서 받아들일 정도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할 수 없는 것은 분명 있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환경도 따라주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부러움, 두 가지의 반응


우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대상이 있다. 그들을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며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우리는 그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자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그저 환경을 탓하며 자리 합리화를 하고 그저 부러움과 시기, 질투라는 감정에서 끝내야 할까?


부러움을 대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그 사람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보여준다. 내가 지금까지 겪거나 들어온 것을 생각해보면, 부럽다는 감정을 느낀 뒤에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다. 대상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그럴듯한 이유를 찾고 합리화하고 끝내는 사람과 그 사람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와 같은 미래에 대한 행동을 고민하는 사람.


환경도, 그 무엇도 아니라 그 자체를 인정하고 저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건설적인 생각은 스스로를 성장하게 한다. 단순히 대상과 내가 처한 처지를 비교하면, 그대로 끝난다. 성장은 없다. 주위에서 이런 사람을 본 경험은 상당히 적다. 그럴 만도 하다. 우리 집은 가난하다. 당장 눈앞에 발생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두 그룹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그룹은 만나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헐뜯고 자신의 신세한탄만 하는 그룹과 또 다른 그룹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할지를 논의하고 고민하는 그룹. 어떤 그룹이 어둠 속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 그리고 나의 행동이라는 것들을 고려해서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면 꿈을 그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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