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상우 Sep 14. 2018

'영감', 반짝!

펜대 굴리기


계속 책상에 앉아서 어떤 글을 써볼까 생각하고 있으면, 도리어 머릿속이 흰색으로 물들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무슨 글을 쓸까. 백날 책상에 앉아서 고민을 해도 답이 안 나온다. 그럴 때 나는 과감하게 다른 일을 해본다. 독서를 하든 게임을 하든 글쓰기 이외의 다른 일을 해보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가만히 앉아서 고민을 하는데 글감이 안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글은 사람이 쓰는 것이고, 그 내용은 경험에서 나온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겪은 사람 관계, 책에서 읽은 내용, 뉴스 기사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접한 것을 바탕으로 글이 나오게 되는데, 앉아서 고민만 하면 아무런 경험도 하지 않고 그냥 있을 뿐이므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는 개발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몸담고자 하는 개발업계에서는 다른 업계에 비해 자유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알고리즘이나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는 경직된 분위기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개발자에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개발자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하고자 IT업계는 명시적인 호칭은 날려버리고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등 다각적으로 노력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그냥 다른 일을 해보자


글을 쓰려고 하는데 도저히 글감이 없는 경우가 있다. 내가 오늘 그랬다. 적어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글은 작가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쓰는 것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고 싶은 말이 없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사실 그럴 때는 글을 안 쓰면 그만이긴 한데 그러고 싶지는 않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학교 다닐 때 한 번쯤은 과학의 달이라고 해서 발명 아이디어를 제출하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도저히 어떤 아이디어를 낼지 머릿속에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건 바로 평소에 고민하지 않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고를 확장시키기보다는 책상에 앉아서 고민만 하기 때문이다. 발명, 개발, 글감 모두 책상에 앉아서 고민만 한다고 나오지 않는다. 


뇌리를 스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냥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좋다. 밖에 나가 잠깐 바람을 쐬기도 하고, 내가 즐겨하는 다른 일을 하곤 한다. 내 취향상 책을 읽기보다는 스토리가 돋보이는 게임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게임은 시나리오와 그래픽, 음악이 합쳐진 멋진 작품인지라 그냥 가만히 흘러가는 대로 대사를 읽다 보면 글감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은 이건 낭비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과정이 일부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다.


내가 즐겨 쓰는 에세이라는 분야는 내가 직, 간접적으로 겪은 것이나 현상에 대한 고찰이나 관점, 생각 등을 적어 내려가는 글인데,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 같은 것 중에 유독 귀에 들어오는 말들이 있다. 그럼 그냥 그 대사가 주제가 된다. 내가 브런치에 작성하는 글 중 대다수는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인간관계나 시간에 관한 글. 전부 짧은 대사에서 나온 글감이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 그저 어린아이들만 보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크나큰 오해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영감은 우리가 평소에 경험에서 나오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창의성 타령을 하면서 정작 나이가 들수록 공부만 시킨다. 공부는 이미 창의성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정리한 지식을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넣는 행위이지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응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정말 창의성이 있길 바란다면 책상에만 앉아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난 개발을 할 때 막히나 문제가 생기면 고민해보다가, 이내 과감하게 코드 편집기를 닫고 다른 일을 한다.


아이디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해진다


다른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얻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아이디어가 가지는 힘은 실로 대단할지도 모른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길을 지나가다가도 꽃을 보면서 저 꽃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친구와 대화하면서 나오는 여러 가지 단어와 문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쳇바퀴처럼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 글이 되는 순간이다.


어쩌다 내가 쓰기 시작했던 SF 소설 또한 개발이 아닌 게임을 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를 소설을 통해 구체화했다. 처음에는 아이디어가 모호했다. 당연히 그렇다. 처음부터 분명하다면,  그것은 아이디어라고 볼 수 없다. 나의 소설은 기억을 소재로 근미래에 기억을 기계로 이주시킨다는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내가 개발자로 지내면서 익힌 배경지식과 전문지식이 모두 녹아있다.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다는 것은 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소설에 작가가 개발자라는 것을 대놓고 티 내는 소설이라고 평가해주기도 하였다. 첫 번째 소설이었기 때문에 구성이 제대로 된 것 아니었고 상업성이 많이 떨어졌기에 잘 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일을 함으로써 나오는 아이디어는 실로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이전 09화 '유행', 또 하나의 교복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꿈, 너에게 닿기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