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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우 Oct 09. 2019

'포기', 그 길이 아닐 수 있다

직업으로의 음악, 취미로써의 음악


이상과 현실의 괴리


난 어릴 때부터 음유시인을 꿈꿔왔다. 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내 음악을 연주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연주하는 게 즐거운,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음악은 좋아하는 일이었지 잘하는 일이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하고 수년을 쳤지만, 음은 빠지기 일쑤였고 박자도 무시한 채 내 마음대로 연주했다. 어쨌거나 그 자체로 즐거웠으니까.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음악을 음악 그 자체로 즐기려면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써 해야 한다는 것을. 취미라면 박자가 틀리는 것도, 음이 빠지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곡을 연주할 때 리듬과 흥을 타면서 연주하곤 한다. 나는 곡에 대해 완벽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그런 마음가짐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연주를 보여줄 때,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연주를 보여줄 때만큼은 미숙한 연주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 모든 연주가들의 마음이지만, 그것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나에게 스트레스만 줄 뿐, 그 어떠한 즐거움도 행복도 주지 않았다.


썩은 동아줄


난 객관적으로 피아노에 재능이 없었다. 콩쿠르에 나가서 연주하는 친구들도 노력을 해서 그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사람이기에 상대적으로 열등의식을 느꼈다. 그들과 비슷한 방법으로 수시간 동안 매일같이 연습을 하더라도 성과가 나지 않았다. 단지 피아노를 치는 기능인이 될 수는 있었지만, 음악인이 될 수는 없었다.


재미가 없더라도 그나마 성과가 있었으면 조금이나마 괜찮았을 텐데 연습 자체도 재미도 없고 그에 대한 성과도 없었다. 세상에 연습이 재미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끝나고 나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난 음악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욕심이 생겨서 해보니 내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


난 음악을 과감하게 접었다. 이미 음악에 투자한 몇 년의 시간이 아까워 더 붙잡고 있다가는 썩은 동아줄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직업으로서 피아노를 치는 것은 포기했다. 어디까지나 취미로 삼기로 했다. 취미로 하면 프로의식 같은 건 필요 없다. 박자를 무시해도 된다. 음이 빠져도 된다. 그저 음악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을 살린다면 그게 맞을 수도 있다.


결국, 일이 되어 버렸다


난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나름 즐거웠지만,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싫었다. 똑같이 지루한 반복 패턴에 대해 건반을 하염없이 두드리고 같은 것만 반복하는 연습이란 것이 내게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비슷한 패턴으로 생긴 음표를 매일같이 쳤다. 그건 음악이 아니라, 그냥 콩나물이 그려진 종이를 내가 해석해서 연주하는 것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아무런 의식이 없는 컴퓨터가 내가 작성한 코드를 해석해서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주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곡을 온전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연습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과정이었는데, 난 그게 재미없었다.


포기하는 게 뭐 어때서?


포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안 되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포기에 대해 조금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포기한다고 하면 나약하다고 생각하거나 의지가 빈약하다고 여기곤 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한심하여 여기거나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를 적는 것 같지만, 이는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포기와 실패는 도전에 대한 증거다


사람은 살다 보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의지를 불어넣어 준답시고 하는 이야기, 그들에게 속지 마라. 사람에 따라 불가능한 것은 있다. 더 이상은 안 되겠지 하고 포기하는 것은, 실패라는 말과 붙어서 오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했다는 의미는 무언가를 도전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실패했다고, 포기했다고 해서 낙오자, 무능력자라고 여기는 사회, 경제와 정치체제에 상관없이 경쟁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면 나타날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현상. 다른 사람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포기와 실패라는 과정을 겪는다. 자신이 실패를 이겨내고 일어났다고 해서 포기한 채로 좌절해 있는 사람에게 낙오자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포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은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는 기회가 많으며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조금 더 시야를 넓게 바라보면, 지금 포기했던 것 말고도 다른 것이 기다린다. 포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지금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면, 과감하게 포기하자. 우리는 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쳐서 그 결정을 내린 것이다. 비록 실패했고, 포기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건 도전했다는 것에 대한 증거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그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진로 고민을 하다 보면 정말 이 길이 내 길인지 고민해보곤 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 무언가를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정이 사라지거나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순간들, 자신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일이 되어버리면서 스트레스받는, 우리 주변에는 그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 미래는 모른다. 미래의 성공이 지금의 포기를 조건으로 하는지, 포기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미래가 찾아온다고 보장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한 것이 너무 아까워서 포기를 하지 못하는 일이 분명 많을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시를 준비한다거나 수능을 여러 번 재수하는 경우다. 수년간 공부해온 것들, 올해까지만 하고 접자고 이야기해도 또다시 1년만 하면 될 것 같은 가능성에 책을 놓을 수 없고, 그렇게 흘러만 가는 시간들.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라면, 우리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 길이 아니지 않을까?


정말, 이 길인가


언젠가 한 번쯤은 필기도구를 던져버리고 책을 덮은 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이 길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인가, 다른 길은 어떨까? 어쩌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니지 않을까? 고민해보고 또 고민해보고 생각해보자. 만약, 그렇다고 여긴다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동아줄에 매달려있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포기한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이 좋지 않으며 도전을 하는 사람에게도 어느샌가 주입되어 포기하지 말자는 의식이 어느샌가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포기로 인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따가운 시선과, 스스로에게 부여되는 한심한 생각과 좌절감을 이겨낼 수 있을 때, 비로소 포기가 가능하다. 진정으로 포기하고, 더 이상의 미련이 없을 때야 말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포기를 하더라도 스스로의 고민에 의한 포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려 포기하는 것은 나중에 큰 후회를 낳고, 결국에는 남 탓을 하기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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