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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만수 Oct 09. 2019

어쩌면, 그 길이 아닐 수 있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직업으로의 음악, 취미로써의 음악


난 늦게 나마 음악이 해보고 싶어서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시작했다. 보통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들어가서 시작하는 것에 비해 정말 늦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비록 늦었더라도 피아노를 통해 무언가 이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난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나름 즐거웠지만,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싫었다. 똑같이 지루한 반복 패턴에 대해 건반을 하염없이 두드리고 같은 것만 반복하는 연습이란 것이 내게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비슷한 패턴으로 생긴 음표를 매일같이 쳤다. 그건 음악이 아니라, 그냥 콩나물이 그려진 종이를 내가 해석해서 연주하는 것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아무런 의식이 없는 컴퓨터가 내가 작성한 코드를 해석해서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주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유튜브가 성장하면서 음악을 주제로 하는 유튜버가 다수 출현함에 따라 내 꿈에 대해 접근하는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피아노를 통한 프로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을 접고 기존의 곡을 편곡해서 유튜브에 올려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다른 유튜버들의 촬영 방식 등을 참고해보면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큰 문제가 발생했다. 편곡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였고, 중요한 건은 연습이 재미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해도 단지 컴퓨터가 연주해주는 것이 아니라 연주만큼은 내가 하고 싶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과정이었다. 난 그게 재미없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바로 길거리에서 공연하고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난 어릴때부터 음유시인을 꿈꿔왔다. 전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내 음악을 연주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연주하는게 즐거운,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음악은 좋아하는 일이었지 잘하는 일이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하고 수 년을 쳤지만, 음은 빠지기 일쑤였고 박자도 무시한채 내 마음대로 연주했다. 어쨋거나 그 자체로 즐거웠으니까.


그 때 어렴풋이 느꼈다. 음악을 음악 그 자체로 즐기려면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써 해야한다는 것을. 취미라면 박자가 틀리는 것도, 음이 빠지는 것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곡을 연주할 때 리듬과 흥을 타면서 연주하곤 한다. 나는 곡에 대해 완벽하게 연주해야한다는 그런 마음가짐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연주를 보여줄 때,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연주를 보여줄 때 만큼은 미숙한 연주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 모든 연주가들의 마음이지만, 그것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나에게 스트레스만 줄 뿐, 그 어떠한 즐거움도 행복도 주지 않았다.




난 객관적으로 피아노에 재능이 없었다. 콩쿠르에 나가서 연주하는 친구들도 노력을 해서 그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사람이기에 상대적으로 열등의식을 느꼈다. 그들과 비슷한 방법으로 수시간 동안 매일같이 연습을 하더라도 성과가 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피아노를 잡고 있었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단지 피아노를 치는 기능인이 될 수는 있었지만, 악보를 내 스타일로 재해석한다거나 선천적인 절대음감은 존재하지 않았고 상대 음감이라는 대체제가 존재하긴 했지만 시도해보고 싶지 않았다. 연주마저 제대로 되질 않으니 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재미가 없더라도 그나마 성과가 있었으면 조금이나마 괜찮았을 텐데 연습 자체도 재미도 없고 그에 대한 성과도 없었다. 세상에 연습이 재미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끝나고 나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내가 음악을 처음 시작한 것은 그저 지옥 같았던 학교생활에서 조금이나마 활력을 찾고 싶어서였다. 난 음악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욕심이 생겨서 해보니 내 분에 넘치는 일이었다. 


난 음악을 과감하게 접었다. 이미 음악에 투자한 몇 년의 시간이 아까워 더 붙잡고 있다가는 썩은 동아줄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직업으로서 피아노를 치는 것은 포기했다. 어디까지나 취미로 삼기로 했다. 취미로 하면 프로의식 같은 건 필요 없다. 박자를 무시해도 된다. 음이 빠져도 된다. 내 음악. 그 자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음악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을 살린다면 그게 맞을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실력이 어느정도 따라와줘야 한다. 


마냥 좋아하는 일만 직업으로 삼는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실력이 어느정도 따라와줘야 한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버리면, 실력이 받쳐주지 못할 경우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고, 현실적인 부분에 큰 문제가 생긴다. 이는 현실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만약 나처럼 무언가를 하고는 싶지만 실력이 부족하다면, 취미로만 삼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포기하는 게 뭐 어때서?


포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포기한다고 하면 나약하다고 생각하거나 의지가 빈약하다고 여기곤 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한심하여 여기거나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를 적는 것 같지만, 이는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음악도 그렇지만 번번이 취업에 낙방하면서 떠오른 생각, "그냥, 포기할까." 그럴 때일수록 나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나약하다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곤 하지만, 실은 포기하는 것은 그렇게 할 정도로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살다 보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의지를 불어넣어 준답시고 하는 이야기, 그들에게 속지 마라. 사람에 따라 불가능한 것은 있다. 더 이상은 안 되겠지 하고 포기하는 것은, 실패라는 말과 붙어서 오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실패를 했다는 의미는 무언가를 도전했다는 얘기다.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일까 토론했을 때,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도전이 없으면 실패와 포기라는 단어가 올 수 없다.


누군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삶을 포기했다'라고 말한다. 그들 또한 자신의 인생에 도전한 것이며 더 이상의 희망과 미래가 없기에 몸을 던진 것이다. 삶을 포기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도전과 시도를 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좌절한 것이다. 삶을 포기하는 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마지막으로 내놓을 수 있는 가치다. 포기라는 결정을 하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쳤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실패했다고, 포기했다고 해서 낙오자, 무능력자라고 여기는 사회, 경제와 정치체제에 상관없이 경쟁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면 나타날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현상. 다른 사람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포기와 실패라는 과정을 겪는다. 자신이 실패를 이겨내고 일어났다고 해서 포기한 채로 좌절해 있는 사람에게 낙오자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지랖을 떨고 싶다면 단지 "힘내"라는 도움도 하나 안 되는 말을 건넬 것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설렘과 지금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도 있다는 기대가 생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포기한 사람에게 훈수를 두지 마라. 그건 더욱 그 사람을 아프게 하는 일이다.


포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은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는 기회가 많으며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조금 더 시야를 넓게 바라보면, 지금 포기했던 것 말고도 다른 것이 기다린다. 포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지금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면, 과감하게 포기하자. 우리는 많은 고민과 생각을 거쳐서 그 결정을 내린 것이다. 비록 실패했고, 포기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건 도전했다는 것에 대한 증거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그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진로 고민을 하다 보면 정말 이 길이 내 길인지 고민해보곤 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 무언가를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정이 사라지거나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순간들, 자신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일이 되어버리면서 스트레스받는, 우리 주변에는 그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 미래는 모른다. 미래의 성공이 지금의 포기를 조건으로 하는지, 포기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미래가 찾아온다고 보장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한 것이 너무 아까워서 포기를 하지 못하는 일이 분명 많을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시를 준비한다거나 수능을 여러 번 재수하는 경우다. 수년간 공부해온 것들, "그래, 올해까지만 하고 접자"라고 이야기해도 또다시 1년만 하면 될 것 같은 느낌에 책을 놓을 수 없고, 그렇게 흘러만 가는 시간들. 어쩌면, 그 길이 아니지 않을까?




"넌 안 되니까 그만해!"가 아니라, 언젠가 한 번쯤은 필기도구를 던져버리고 책을 덮은 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이 길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인가, 다른 길은 어떨까? 어쩌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니지 않을까? 고민해보고 또 고민해보고 생각해보자. 만약, 그렇다고 여긴다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동아줄에 매달려있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쩌면, 그게 썩은 동아줄 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포기한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이 좋지 않으며 도전을 하는 사람에게도 어느샌가 주입되어 포기하지 말자는 의식이 어느샌가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포기로 인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따가운 시선과, 스스로에게 부여되는 한심한 생각과 좌절감을 이겨낼 수 있을 때, 비로소 포기가 가능하다. 진정으로 포기하고, 더 이상의 미련이 없을 때야 말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포기를 하더라도 스스로의 고민에 의한 포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려 포기하는 것은 나중에 큰 후회를 낳고, 결국에는 남 탓을 하기에 이르게 된다.


단지 두렵고 이 일이 아니면 할 게 없어서, 그저 하기 싫고, 고민이 되는 일임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고 스스로에게 바람직한 행위도 아니다. 그런 일은 접어버리고 진정 내 일이라고 생각되는 다른 일을 찾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임하자.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하라고? 꿈에 현실을 대입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미래를 고민할 수 없다. 이상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때로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어쩌면, 가슴이 뛰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미래가 바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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