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상우 Oct 25. 2019

'기억', 지울 수 없는 상처

어떤 것은 기억의 한 구석에 있을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잊어버리기도 한다. 공부할 때 영어단어나 개념이 외워지지 않고 자꾸 잊어버려서 고민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것이 고맙기도 하다. 잊음이 없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때때로 자신이 겪었던 부끄러웠던 과거의 모습은 현재의 자신을 일깨워 주기 위해 추억하곤 하지만, 과거에 실패한 기억, 안 좋은 기억들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한 미래를 그리면서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망각이라고 하는 상태의 변화를 무의식적으로 경험한다. 우리가 잊고 싶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진다. 좋든 나쁘든 새로운 기억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여행에서 추억들을 쌓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다. 잊음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 같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삶에서는 잊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고?


2009년, 내게 중학교 2학년이란 내 인생에서 최악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삭막함 그 자체. 사막같이 건조한 분위기 속에 목마른 인정을 채울 수 있는 건 눈물뿐. 다른 친구들은 오아시스에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눈물로 배를 채워야 하지? 난 그들로부터 친구라는 관계에서 배제되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내 책상은 더럽다며 접근하지도 않았다. 


나를 대상으로 하는 그들의 드러나지 않는 따돌림. 어찌 보면 때리는 것보다도 더 잔인한 방법, 물적 증거는 남기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지나가면서 이유 없이 째려보고 지나가는, 수업시간에 고의로 저격하기와 같은 지속적인 정신적 폭력이 시작되었다.


참아오다가 감정에 복받쳐 울며 담임에게 달려가기도 했다.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여자애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생을 끝내고 싶었다. 세상을 끝내고 싶었다. 그냥, 여기까지만 살고 싶은 그런 감정만 있을 뿐이었다. 친구 관계에 있어서는 담임교사도, 부모도, 그 누구도 도움되지 않았다. 그런 나하고도 같이 다녀준 친구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지만, 조금만 더 있었으면 이미 세상에 없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지울 수 없는 상처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기억. 난 그럴 때마다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려 하지 않고 그대로 감정을 내보낸다. 감정을 쌓아두면 스트레스만 생길 뿐이다.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돼서도 사람을 만날 때면 저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뒤에서 욕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들은 모두 부질없는 짓임을 알았다. 


살아오면서 생긴 인연에서 나타난 상처는 나에게 또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인연에 있어서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것도 있다. 그저 내가 정한 기준에 따라 친구가 선을 넘어버리는 순간 말없이 인연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인연의 끊김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내가 왜 그러나 싶겠지만, 이는 과거에 발생한 따돌림의 기억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발생하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다. 


나를 방어하겠다는 명목으로 일방적인 인연의 끊음을 행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까 고민해보기도 한다. 사람 관계에 대한 교과서적인 접근으로는, 기분 나쁜 게 있으면 말해야 하고, 상대방도 그걸 받아들여야 하지만, 난 더 이상 사회에서 그런 이상적인 관계는 바라지 않기로 했다.


기억을 짓누르기 위해선―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속의 상흔은 남아 평생 나를 괴롭힐 것이다. 내가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을 짓누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때가 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그 어떠한 것에도 집중하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잠자리에 드는 순간. 이불 위에 누워있으면, 온갖 잡생각이 기어 나와 감정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잠자리에 있는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안 하기에 다른 것들에 의해 밀려나 있던 기억들이 서서히 얼굴을 내미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기 싫은 것들을 애써 잊으려고, 아니, 적어도 일을 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떠올리지 않으려고.


의도적이지 않은 복습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전부 남아있을 리가 없다. 기억이라는 데이터는 애매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시간과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유독 인상 깊게 다가왔거나 후회되는 순간들은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일상생활에서 이를 이야기하고 되새기다 보면 결국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생활을 하면 잡념이 사라지곤 한다. 우리의 단지 금전적인 성공만을 위해 꿈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꿈을 따라가다 보면 나쁜 기억들이 우리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삶의 질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떠오르는 기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일을 함으로써 기억을 다시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억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저 떠올리고 싶지 않으니까.

이전 01화 '퇴사', 그만두겠습니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꿈, 너에게 닿기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