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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만수 Oct 30. 2019

내가 못해줘서, 미안해

내가 못해줘서, 미안해


누군가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이런 말을 안 하는 부모님은 많지 않다. 하지만,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런 말을 자녀에게 해준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사실을. 어깨가 무거워지고, 측은지심이 들고, 때로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꿈에도 제약이 걸린다는 사실에 분하기도 하고. 


싫다. 그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부모가 내게 잘해줬는지 못해줬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같이 있다는 사실, 의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좋을 뿐이다. 정말 미안하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잔소리도 하지 말라. 살아가면서 부여받은 역할에 대해 자신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 했다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 역할을 충실히 실행하려 한다. 


그래, 어쩌면 이렇게라도 말해주는 것이 나을 수도.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자녀의 말을 피하려 들면서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어떤 말을 하더라도 앞 길을 바로 막는 행위는 머리로는 이해를 할 수 있어도 마음으로 이해하기 싫다. 이미 현실과 타협하고 꿈은 접어둔 채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살아가기 급급하고 과거만 이야기할 뿐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 사람과는 꿈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내가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사과를 하지 말고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미래를 그려주었으면 한다. 그런 말을 미래에 가서도 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는다. 나와 늘 함께 있어줄 것이라 믿는 당신이 늘 입에 담고 사는 말. "무언가를 하려면 그것도 재능이 있어야 하지?", 제발 그만 해라. 자기가 도전하지 않는 것을 재능이 없다는 핑계로 합리화하는 사람에게는 듣는 사람마저 주저앉게 만든다.


내가 뭐 때문에 사는지 알아?


"오늘은 자녀를 키우고 계신 부모님들께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사회자가 발걸음을 옮기자,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손에 작은 사진 두 장을 쥐고 강단으로 나온다. 밖에 나온다고 애써 차려입지 않고 집에서 보는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 입고 나온 듯한 차림새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게 내 인생입니다."
강단 위에 올라 선 여성이 손가락으로 자신이 들고 나온 두 장의 사진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번갈아 가리킨다. 그 사진에는 두 명의 젊은 남성이 있었다. 그러자 사회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강단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님 …, 아드님 사진 말고 어머님의 인생을 이야기해주세요."


초등학생이 되고 점차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이해할 정도가 되면, 언젠가는 듣는 얘기, 어깨가 무거워지고, 부모의 기대에, 학업에 대해 부담을 갖게 됨으로써 꿈을 한창 꿔야 할 10대에 미래에 대한 고민과 상상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부모의 이야기들. 이런 말을 하는 자녀에게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내가 너 때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부각함으로써 자녀의 인생에 부담감을 안겨주려는 건가? 그래, 어릴 때야 부모가 나 때문에 산다고 하면 사랑받는 기분이 드니까 좋지만, 일부러 나이가 어느 정도 알아들을 나이가 된 상태에서 이야기한다는 얘기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10대와 20대가 자신의 부모에게 "제발, 내 인생에 참견하지 말고 당신의 인생을 살아달라"라고 주문하는 것은 그런 말을 듣기조차 싫기 때문이다. 내가 있어서, 나 때문에 내 부모의 인생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많은 이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내가 태어남으로써 부모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자식에게 부모라는 존재를 마음속에 강제로 각인시키는 것이 도리어 얼마나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10대와 20대가 다른 나이에 비해 사망 사유에 자살이 많은 이유는 경제성장률 감소로 인한 기회의 축소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사회의 문제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태어나서부터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한 부모의 영향 때문이다. 부모는 나 때문에 살아가는데, 그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 자연스레 죄책감이 들고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부담감 속에 살아가다가 결국 삶을 포기하게 된다.


내가 공부도 못하고 따돌림도 당하는 주제에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엔 학업 스트레스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부모는 성적에 대해서 의견을 드러낸 적이 없다. 설령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해도 성적으로 자극을 주는 행위가 얼마나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침묵이 나을 때가 있다.


분수에 맞게 살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집은 가난하다. 가난이 죄일까? 글쌔 잘 모르겠다. 사실 난 죄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 하신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가난은 부끄럽다. 학교, 특히 중학교 때는 한창 바람막이가 유행했었는데, 그 마저도 돈이 없어 마이만 입고 다녔다. 수치스럽지는 않았지만, 돈이 없는 우리 집이 때로는 원망스러웠다. 


사교육을 들을 만큼의 돈도 없을뿐더러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볼까 생각해보았던 것도 수업료를 고려해 특성화고에 진학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해서는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은 가야 할 듯싶어 사이버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땄다. 국가장학금 덕에 학비는 대부분 들지 않았다. 제도를 마련해준 정부에게는 고맙다고 백번 절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다가 문득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대학원 비용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난 내 커리어를 위해서라면 은행 대출을 할 각오가 되어있었고,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해보니 분수에 맞게 살자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순간 머릿속에서 참아오던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커오면서 참아왔던 그 이야기들. 부모님께는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두고 싶었다.


비싼 액세서리나 자동차를 사는 건 우리 그릇에 안 맞을 수 있지만,
나 자신한테 투자하는 것까지 분수에 맞게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만약 내가 자식을 낳았을 때,
"아빠,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
라고 물어본다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까?
"아, 그건 아빠가 젊었을 때 돈 버는 방법은 하나도 모르고 바보같이 일만 해서 그래."


분수에 맞게 사는 것, 그래 가난한 사람이라면 그러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을 모든 것에 적용하는 것은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지름길이다. 부를 얻은 사람들은 위험을 다루는 방법을 안다. 투자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내게 대학원이란 그런 존재다. 돈을 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글쓰기와 개발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그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부라는 것은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돈을 벌 수 없다. 마치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시험 성적은 엉망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말은 방법론의 고민 없이 그저 하던 일만 하면 부를 쌓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살아가면서 돈 얘기를 많이 했으면서 왜 돈 버는 방법을 바꿀 생각은 안 하고 새로운 도전은 두려워하며 최저임금에 얽매여 사는 삶을 살아야 하지? 그것을 대물림받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적어도 내가 낳은 자식에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 싶다. 내 부모라고 안 그랬을까? 아마 그랬지만 그들도 이런 삶을 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만약 내가 나이를 먹어서도 지금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난 자식을 낳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으로부터 받는 축복보다 어둡고 축축한 반지하에서 곰팡이와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얻는 상처가 크다는 것이 내가 가난과 어울려 살면서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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