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상우 Oct 16. 2020

공익근무 중 처음으로 진상을 만나다

나는 공익근무요원, 이름이 바뀌어 사회복무요원이다. 구청에 배정되었는데 인력 부족으로 보건소에 배치되어 국가의 방역 활동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힘쓰고 있다. 현재 보건소에서는 독감예방접종을 하고 있는데, 최근 독감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오면서 문의전화가 빗발쳐 전화응대를 하는 분들은 꽤나 고생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내 담당 공무원은 하루 종일 병원에서 오는 전화를 받고 민원을 관리하느라 쉬질 못하고 맨날 야근한다. 그런걸 보면 나도 회사에서 밤샘코딩을 하면서 다음 날 아침에 퇴근했던 것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러한 와중에 난 선별 진료소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처럼 방역 복장을 하고 독감예방접종 접수 및 안내 업무를 맡았다. 그러면서 언젠간 만났어야 할, 아니 필연적으로 만났어야 할 상대인 진상을 오늘 드디어 만났다.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난 외모가 다소 어려 보여서 학생으로 오해를 받곤 하는데, 다짜고짜 와서는 반말을 해대는 40대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온 것이다. 아마 10대 고등학생인데 알바를 하는 것으로 오인했던 모양이다.


난 여태껏 3-4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게다가 현재 복무 중인 보건소에서도 반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같은 사회복무요원들끼리도 존댓말로 대화한다. 반말을 하면 어느 순간 선을 넘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무조건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철칙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먼저 반말을 하면 되묻는다.


저랑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반말하시길래.




지역 보건소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현재 내가 근무하는 보건소에서는 1959 - 2001년생에 해당하는 만성질환자에게만 독감예방접종을 해주고 있다. 올해에는 그렇게 시행하기로 되어있고, 이미 고지도 되어있는 상황이다. 나머지는 코로나 때문에 위탁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에서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만성질환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주는 처방전에 적혀있는 질병코드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당뇨병은 일반적으로 E11 로 시작한다.


그런데 질병코드가 안 적혀있는 처방전을 가지고 와서는 목소리를 높여 버럭버럭 우기면서 작년에도 맞았는데 뭔 소리냐고 하는 사람을 오늘 처음 봤다. 그래, 작년에는 가능했지만 올해는 아니라고. 몇 백명의 접수를 받아봤지만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보통 상식이 있는 어른이라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받아오기 마련이다. 병원에다가 질병코드가 적혀있는 처방전을 가져와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니 돌아오는 답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니 계속 이 처방전으로 맞았다니까, 뭔 소리야? 

병신 새끼.


아! 드디어 만났구나. 내심 기뻤다. 난 사회에 암적인 꼰대 스타일을 가진 이런 성향의 어른들을 보면 대판 싸우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이런 인간들 때문에 죄 없는 다른 서비스직 사람들이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 본래 사람들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에게 갑질을 가하는 심리는 아마도 아래와 같을 것이다. 난 진상들이 가지는 그 썩은 마인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 상태다.


넌 을이고 내가 갑이니까

개처럼 기어서 내가 원하는 것이나 해라.


원래 내 직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수년간 사회에 있으면서도 처음으로 나를 향한 육성으로 욕설을 들으니 기분이 오묘했다. 그래서인지 덕분에 웃으면서 싸움에 임할 수 있었다. 불 같이 화내는데 왜 이리 재밌던지.


이야! 감사합니다. 욕 좀 더해주세요. 오래오래 좀 살게요.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내가 이 구역의 또라이야! 진상들은 대체로 강약약강, 즉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겐 강하다. 한 마디로 권력에 빌빌 비는 한심한 새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 얼마나 즐거운가. 본래 진상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인격모독이나 욕설밖에 할 줄 모르는 버러지에 불과하다. 뉴스 기사에서 가끔 백화점에서 갑질이나 하는 재벌가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거의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남 탓이나 하는 친구들이나 다름없는 품성을 지녔다. 현시점에서 난 공무원이나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선을 넘는 인간들에게 개처럼 길 필요도 없고, 좋게 보일 필요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어차피 날 10대, 20대 초반으로 오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상이 내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나이도 어린 새끼가 무슨 말버릇이야?


기다리던 그 대사! 자기 자신이 꼰대임을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그 대사가 드디어 나왔구나! 나잇값을 못하는 어른들을 보고 있으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럴 때야 말로 인간관계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 사람도 날 상대로 욕지거리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있나?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는 건 초등학교 때 배우는 것, 학교에서 뭘 배운 거야? 나이는 어디로 먹은 거지?


거울보셨어요? 자기 자신이 또라이라는 걸 잘 알고 계신가 봐요.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분들을 보더라도 그런 진상들은 정말 많은 것 같다. 또 한 가지 그들의 주요 특징은 자기 자식이 자기랑 똑같은 진상한테 욕먹고 오면 불같이 화낼 거면서 정작 자기가 그 진상인 건 모르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없는 부류라는 것이다. 


내 다음 세대들은 부쩍 자아 형성이 덜 되어서 자존감이 낮고, 그로 인해 자기 보호 본능으로 남을 헐뜯는 것이 문화처럼 정착했다고 들었다. 내 선배에 해당하는 사회복무요원은 현역으로 있다가 훈련 중 부상으로 공익으로 온 사람인데, 한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병신으로 만들고 놀리는 것이 20대 초반들의 실태라고 했다. 게다가 그분은 비교적 늦게 군대에 갔는데, 자대 배치후 처음으로 들은 소리는 가관.


20대 후반? 꼰대 새끼네?


그들처럼, 진상들이 소리를 지르는 행위는 나약한 자기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결국 재미있게 싸우다가 공무원이 와서 마무리가 되었지만, 사회복무를 하면서 첫 번째로 만난 기념비적인 진상이니 한 번 글을 적어봤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건이 생기거나 하면 다시금 글을 적어볼 생각이다. 사실 민원 업무를 보는 공무원이나 사회복무요원이라면 한 번쯤, 아니 거의 매일 겪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사회생활이라고? 맞는 말이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엔 정말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이 산다. 그런 인간들을 알아가는 게 사회생활이며 어떤 인간은 피해야 하고 어떤 인간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거르는 능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그리고 제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80대를 살고 계시는 조부모님도 젊은 사람한테 존댓말을 쓰는데, 초면에 반말은 그렇다 쳐도 욕설이라니? 설령 나랑 2, 30년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해도 같은 성인이다. 같은 어른으로써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10대들이 보고 뭘 배우겠나?


여기에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 그렇게 박박우겨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되면 또 내년에도 진상 짓거리를 하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예외를 두면 안 되는 것이고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가장 이해가 안 되었던 것. 왜 쟤는 되는데, 난 왜 안 되는가? 그러한 의문이 생기기 때문에 예외를 두면 안 된다. 규칙을 지키라는 것은 가정교육에서부터 배운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