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ing 오리지널 <이재, 곧 죽습니다(2023)>
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안 내내 불안했다. 언제 죽을까, 어떻게 죽을까. 마치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언제 나올지 긴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Tving 오리지널 <이재, 곧 죽습니다(2023)> 는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 이재(서인국 분)가 12번의 죽음과 삶을 경험하게 되는 인생 환승 드라마다(작품소개 글 인용). 이재는, 그러니까 죽었다. 7년 전 태광 그룹 입사 최종 면접에서 미끄러진 뒤 그는 학자금이라는 부채와 함께 세상에 던져졌다. 그렇게 취준생으로 7년간 밤낮없이 일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친한 친구의 사기로 전재산을 잃었고, 다시 한번 최종 면접까지 간 태강 그룹 입사 시험에서 탈락한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돈 봉투를 주며 생활비에 보태라는 여자친구 지수(고윤정 분)의 행동에 이재는 이렇게 사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 봐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어차피 이곳이 지옥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가 눈을 뜬 곳은 전세기 안. 최이재가 아닌 자신이 불합격한 태강 그룹의 둘째 아들, 박진태(최시원 분)의 몸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죽음으로 인생이 다이아몬드 수저로 환승했다면, 이건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벌'이라고 '죽음(박소담 분)'은 말한다.
앞으로 이재는 '죽음'에 의해 죽음을 앞둔 총 12명의 인생으로 환승한다. 그들의 인생에 찾아온 죽음을 피한다면 그 사람이 되어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지만, 만약 12번의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이재는 지옥에 가게 된다. 물론 살아남아 그 삶을 산다 해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지옥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곧, 그가 남겨진 인생을 잘 산다면 지옥이 아닌 다른 곳에 갈 수 있다는 풀이가 된다. '죽음'은 어째서 기회 같아 보이는 인생 환승을 '벌'이라고 한 것일까? 그건 이재가 한 착각 때문일지도.
비행기 엔진이 폭파되면서 박진태로 산 첫 인생은 손 쓸 세도 없이 죽는다. 바로 환승한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 송재섭(성훈 분)으로도 10분을 살지 못하고 어처구니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 앞에 한 낱 인간은 이처럼 무력했다. 비로소 세 번째 인생 환승에 이르러서야 예정된 죽음을 피하지만, 안심하는 찰나 또 죽는다. 시청자의 입장에선 점점 그가 어떻게 죽을지 아니 언제 죽을지 조마조마해져 갔지만 이재는 환승 인생 중에도 ‘돈’만 생각한다. 살더라도 돈이 없음 또다시 지옥이라면서.
죽음은 이렇게 살아있는 것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죽음은 통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 이재의 오만한 착각은 '죽음'을 도발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에게 죽음은 힘든 인생의 고통을 끝내줄 하찮은 도구일 뿐이었다. 이미 사는 게 지옥이니 죽음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이 찾아오기도 전에 스스로 죽어 '죽음'을 모욕했다.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스스로 생을 끝냈는데 뭐가 문제냐던 이재는 거듭되는 인생 환승을 통해 하나씩 깨우친다. 뺑소니 운전자를 대신해 돈을 받고 징역을 살던 조태상(이재욱 분)이 되었을 때 이재는 교도소에 있으면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회였다는, 그에게 남아있던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출소 후 태상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의 짧은 통화에서 자신이 생을 끊을 때 간과했던 남겨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린다.
그럼에도 그는 동시간대로 환승되는 것을 파악한 후 비밀 조직 해결사였던 이주훈(장승조 분)으로 환승했을 때 숨겨 놓은 10억을 되찾아, 만약 환승한 인생에서 살아남았을 때 쓸 돈을 챙겨 놓으려 했다. 하지만 ‘죽음’의 장난처럼 그 뒤 환승한 인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태어나지 얼마 안 된 영아였다. 그리고 영아는 부모의 학대로 환승 인생 중 가장 무력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는다.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을 사랑한다는 그의 논리는 틀렸다. ‘죽음’은 말했다. 그저 네가 이 모든 걸 당연한 듯 누려왔을 뿐,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그리고 일곱 번째 장건우(이도현 분)로 환승한 인생에서 우연한 기회로 여자친구 지수를 만나게 되면서, 지수의 손을 잡고 걷던 평범한 하루, 그 하나로도 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비로소 이재는 죽음이 언제 찾아올까,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제야 환승 인생은 이재에게 주어진 보너스가 아닌 벌이라던 ‘죽음’의 말이 실감 났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회였고, 엄마와 지수가 슬픔 속에 삶이 무너진 것을 보니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던 것인지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자신의 선택이 그릇된 것이며, 죽음은 두려운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들 그는 이미 죽었다. 어떻게 해서 환승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해도, 최이재의 삶은 아니다. 살아있다는 게 상이 될 수 없었다. 후회로 뒤덮인 삶을 사는 건 벌이다.
사람은 태어난 후부터 사는 게 아닌 계속해서 죽어가는 중이라는 말이 있다. 극 중 ’죽음‘도 말하지만, 인간은 삶이 지옥 같다고 말하면서 그 지옥을 하루하루 잘 버티며 살아간다. 하지만 진짜 죽음이 무엇인지, 지옥이 어떤 곳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죽음을 간과하고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산다. 살아있으니 삶에 집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죽음을 잊은 삶은 반쪽일지 모른다. 그래서 ’죽음‘은 이 벌을 통해 죽음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지 느끼게 하려 했던 것 같다. 죽음이 끝이 아니니 ‘죽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어둠 속에 빛이 더 밝게 보이듯, 죽음은 집중해서 봐야 할 삶의 본질을 비춘다. “두려움에 떠는 인생은 진짜가 아니잖아요.” 지수는 이재, 아니 건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일 때 가장 행복한 법이니까.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니면 사는 게 아무 의미 없지 않을까요? “ 그리고 죽음이 두려워진 순간, 드라마는 오히려 자기 자신답게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 물꼬를 튼다. 비단 사는 데 죽음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두려움은 아무렴 죽음일 테다. 이런 ’죽음‘의 존재를 앞에 세워 놓아 사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나답게 사는 것, 추상적이어서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두려움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고민이라는 듯 드라마는 보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더더욱 필요한 고민일테다.
4화로 파트 1을 끝내는 드라마는 이런 메시지와 함께 동시간대로 환승한 인생이 어떻게 연결되어, 서로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며 끝난다.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어 영향을 미친다. 미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이재가 7년 전 태강 그룹 최종 면접에서 낙방하면서, 자기 앞에서 차도로 뛰어들어 죽은 한 남성을 원망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죽었다고 한 이재의 생각은 역시나 크나큰 착각이다.
이재가 지옥으로 갈 것이라 기대하는 ’죽음‘과 그런 ’죽음‘ 앞에서 이재는 어떻게 생을 지켜낼지. 그의 환승 인생 중 빌런 같은 박태우(김지훈 분)가 되는 일은 없을까.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하는 꽤나 철학적인 주제를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볼거리 많은 연출로 담아낸 <이재, 곧 죽습니다>의 파트 2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