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피고인에게도 관운이 있다?
관운, 관리로 출세하도록 타고난 복 또는 벼슬을 할 운수 등을 일컫는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검사는 크게 수사검사와 공판검사로 나뉜다.
수사검사는 말 그대로 사건을 수사하여 기소하는 역할을, 공판검사는 수사검사가 기소한 사건의 공판만을 담당한다.
보통 1명의 공판검사는 2개의 재판부를 전담하여 일주일에 4일, 하루 평균 수십여 건의 재판을 한다.
공판검사로서 재판부를 담당하다 보면 해당 재판장의 성향(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다)에 따라 법정 분위기, 피고인들에 대해 내려지는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어떤 재판장은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피고인 등 사건관계인에게 친절한 반면, 보기 무안할 정도로 불친절한 경우도 있다.
어떤 재판장은 검사 입장에서 '또 선처를 해주나' 싶을 정도로 관대한 반면, '걸리면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엄한 경우도 있다(양형기준이 있기는 하나 그 양형기준 자체가 범위로 설정되므로 그 안에서 재판장에게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고, 또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양형기준을 벗어난 형의 선고가 가능하다).
이렇듯 재판장의 스타일에 따라 재판 진행 과정, 재판의 결과가 달라지므로 어떤 재판장을 만나는지에 따라 피고인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의 처우나 재판 이후의 처지가 달라진다.
물론 재판부에 따라 생긴 1심 판결 결과의 차이는 항소심에 가면 어느 정도 통일감 있게 정리되기는 하나, 1심에서 법정구속이 이루어진다면 항소심까지는 구속상태가 유지되므로 피고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나 검사들은 특정 피고인이 피고인에게 우호적이고 관대한 재판부를 만난다면 해당 피고인에게 '관운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반대로 엄한 재판부를 만나 중한 처벌을 받으면 '관운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형사재판의 첫 기일은 인정신문(인적사항 확인)과 공소사실 및 증거에 대한 인부절차(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 여부 확인 및 검사가 제출한 자료를 증거로 사용하는데 동의하는지)만 진행하므로 절차상 특별히 중요한 내용은 없다.
그렇지만 재판부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같은 말을 하더라도 변론, 의견서의 수위를 조절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대응을 달리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변호사의 눈치가 필요한 지점이다.
아무리 사실관계를 보는 통찰력과 법적 지식이 뛰어나더라도 변호사의 눈치가 부족하다면 피고인의 관운을 틀어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필자는 검사 시절 여러 재판부를 담당하며 수천 건의 재판을 경험했다.
그 덕분에 재판 첫 기일만 참석해도 해당 재판부의 성향을 대략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지난주, 전세사기 사건 공판 첫 기일에 참석했다.
의뢰인은 공인중개사로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전세계약을 중개한 것일 뿐인데 임대인과 함께 전세사기의 공범으로 기소됐다.
한 평생 모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도 없다.
그렇지만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은 임대인이고, 법리적으로 공인중개사에게 전세사기의 공범 죄책을 묻기 위해서는 '1. 임대인이 보증금을 수령할 때부터 추후 임차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던 사정 + 2. 공인중개사가 중개 당시 그 사정을 알았던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 실무상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의 직업, 재산상태 등을 알 수 없고 알 이유도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인중개사에게 전세사기 공범의 죄책을 물을 수는 없다.
의뢰인 역시 임대인의 재정상태 등을 전혀 알 수 없었으므로 사실은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로 종결됐어야 하는 사안인데, 수사 단계에서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으시다가 재판에 넘겨진 이후에야 필자를 찾아오셨다.
첫 기일에 참석한 결과, 재판장님의 성향은 피고인 측에 다소 엄한 것으로 보인다.
의뢰인의 관운을 틀어막지 않기 위해서는 향후 변론, 의견서의 수위 조절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김정호 변호사
前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검사
前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
前 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 검사
前 의정부지방검찰청 남양주지청 검사
現 법무법인 청목 파트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