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두 눈 먼 자들의 이야기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유별나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국인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말에도 시큰둥했다. 등장인물의 눈을 마치 검은색 절연 테이프를 붙여놓은 것처럼 가린 포스터부터 '기생충'이라는 그다지 산뜻한 느낌을 주지 않는 제목까지 내 취향에 꼭 맞는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들른 본가에서 영화광인 엄마가 한 '이 영화는 꼭 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묘하게 설득이 되어 가족들과 간만에 데이트도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전혀 계획에 없던 영화관 나들이를 하게 됐다.
영화는 확실히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씬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까지도 알 수 없는 여운과 복잡한 감정 때문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간신히 엉덩이를 떼어 내고 상영관을 나오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관람 이후 배를 채우러 들른 식당에서도 우리 가족의 이야기 주제는 한동안 영화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잠시 낮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여전히 그 영화를 떠올리면 기분은 불쾌했고 왜 이러한 감정이 드는지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영화 속 장면을 되감기했다. 결국 동생 노트북을 빌려 근 1년 반만에 영화 리뷰까지 쓰게 만들었으니 과연 황금종려상인가, 싶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하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고 결국 온 가족이 반지하 셋방살이를 하며 피자 박스 접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기택의 가족은 그마저도 못할 위기에 처한다. 휴대폰도 끊기고, 훔쳐 쓰던 와이파이마저 비밀번호가 걸려 더이상 쓰지 못하는 쓰디쓴 지독한 가난에 질리고 질렸을 때쯤, 아들 기우의 친구 민혁이 솔깃한 제안을 건네온다. 대학교도 가지 못한 기우에게 부잣집 딸 영어 과외를 맡긴 것이다. 이 제안을 덥석 받아 문 기우는 동생 기정의 포토샵 실력을 빌려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부모에게 알린다. '너, 제대로 계획이 있구나!' 라며 예상과는 달리 아들의 범죄행각을 칭찬하는 아버지 기택의 모습은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동시에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던 포스터 속, 눈에 검정 테이프가 칠해진 기택과 기우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
땅 속에서 생활하는 두더지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햇빛이 필요치 않은 지하에선 앞을 보는 능력을 갖는 것보다 땅을 파기 위한 발톱을 날카롭게 가는 것이 더 유용하다. 반지하에 살며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닳고 닳아버린 가난은 기택의 가족으로 하여금 앞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마저 앗아간 듯했다. 앞을 볼 수 있는 능력과 맞바꾼 그들의 능력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타인에 스며들어 그들의 양분을 잠식해나가는 거짓과 저열한 독기였을 뿐.
실패 없는 유일한 계획은 무계획 뿐이다
영화에서 기생충처럼 묘사되어 박사장의 집을 서서히 잠식해나가는 기택의 가족이 말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계획이 있구나, 넌 계획도 없지, 계획이 뭐예요, 내가 다 생각해 둔 계획이 있다.
말 그대로 '벌레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도 평범한 삶을 사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계획이 있고, 그것을 최선을 다해서 실천하고, 실패하면 상실감에 빠지지만 곧 다시 일어서기 위한 또 다른 계획을 세우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모순이 이 영화를 보고난 뒤 느꼈던 분노와 측은지심이라는 양가감정의 진원지였다. 다만 이들이 계획에 목숨걸고 최선을 다해 성공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실패했을 때의 계획, 즉 플랜 B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계획의 성공은 곧 생존이었고, 실패는 곧 죽음이었다.
장대비가 내리고 거실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이 순간이 영원할 듯 술 마시고 욕하고 웃었던 그 때, 억수같은 비를 뚫고 해고된 가정부가 누른 초인종 소리에 이 가족은 얼어붙게 된다. 한 번 틀어진 계획은 수평선의 각도를 비틀듯 그렇게 기택네 가족이 품었던 야망과 하염없이 멀어져 버렸다. 인터폰에 비친 전 가정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건 계획에 없던 건데...' 라고 작게 읊조리던 기우의 핏기가신 얼굴은 곧 이들에게 닥칠 피바람을 본능적으로 느낀 탓 아니었을까. 이 가족에게 계획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거짓말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대본까지 만들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거짓말하기 위해 연습하고, 살기 위해 계획하는 것이 아닌, 계획을 위해 살아가며 계획 없이는 필멸하는 '기생하기 위한' 인생.
러닝타임 중 박사장네 가족이 무언가 계획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삶은 악착같이 계획하고 성공을 갈망하는 기택네의 삶과 철저히 대비된다. 그들의 삶은 계획으로 굴러간다기보다 선택의 연속으로 굴러간다. 그들에겐 언제나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다. 과외 선생이 한 명 없어져도 다시 뽑으면 그만, 안내키면 다른 선생으로 교체. 기사 한 명, 가정부 한 명 없어져도 언제든 조용하고, 심플하게 그의 대체품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삶. 치열하게 계획하여 고양이의 구슬을 노리는 쥐들과 한가롭게 구슬을 달고 단잠을 자는 고양이 간의 싸움은 아마도 정해져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낮에 한가롭게 정원 탁자에 엎드려 잠을 자는 연교는 가난이 쥐어 준 살기로 무장한 기택네 가족의 욕망을 간파하기에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그녀가 말하듯 '심플하게' 모든 것이 해결되곤 했던 그의 삶이 감당하기에는 소리 없이 기생하는 기택네 가족이 너무나 악랄했던 것일까. 이 영화는 없는 자를 있는 자보다 훨씬 더 악으로 몰아붙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동정과 분노의 양맥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게 한다.
모든 것이 발각될 뻔한 극한의 위기상황을 넘긴 채 홍수가 난 반지하 방에서 간신히 체육관 마룻바닥에서 몸을 눕힌 기택은 아버지가 말한 계획이 뭐냐는 기우의 말에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답한다. 이는 교훈이 담긴 명대사도 아니고, 상징을 담은 심오한 대사도 아니다. 계획이 곧 생존이었던 이들 가족에게 무계획이란 곧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포기함을 의미한다. 즉 고개 숙인 패전병의 항복 선언과 다름없는 것이다. 반지하에 사는 두더지 신세를 면하기 위해 기꺼이 기생충을 자처하며 욕망을 꿈꿨으나, 아버지 기택은 이미 실패를 예견한 듯하다. 그렇게 기택은 다음날, 자신을 괴롭히던 반지하 냄새라는 트리거를 극복하지 못하고 박사장을 살해한 뒤 그렇게 자신이 '기생충'이었음을 받아들인다.
결국은 눈먼 자들의 이야기
기택 가족의 가난을 보다 돋보이게 해주었던, 고상과 화려, 탐욕의 극치인 또 다른 의미로 '눈이 멀어버린' 가족. 젊은 나이에 사업에 성공해 부족함이란 사전적 의미로밖에 접해보지 못했을 것 같은 깐깐한 박사장과 말투와 행동에 여유와 곱게 자란 티가 흘러넘치는 연교. 그리고 이들의 고등학생 딸과 어린 아들. 스치듯 보여주었던 액자 속 이들의 가족사진은 누구보다 기품있고 화목한 가정처럼 보인다. 풍족한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자랐을 것 같은 딸 다혜는 언제나 부모님께 예쁨 받는 다송이에 대한 질투와 애정결핍이 기저에 깔려 있다. 처음 기우에게 과외를 넘겨주었던 민혁이도 기우와 정확히 똑같이 다혜와 진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 점으로 보아 다혜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과외 선생님으로부터 부모님의 결핍된 사랑을 수혈받고 있었는지 모른다. 첫 과외수업에서 대뜸 딸의 손목을 잡는 남자 과외 선생은 용인하지만 수업 참관을 거부하는 기정과 다성의 첫 미술수업에 이상하리만치 초조해했던 연교의 모습은 결코 공평하지 못했던 두 아이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생충은 가장 약한 부분부터 조금씩 조금씩 숙주를 삼키려 시도한다. 즉 이 가정의 가장 약한 존재, 두 아이는 이 가정을 침투하려는 기생충에게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다혜는 이미 기우에게 마음을 빼앗긴 깊은 사이가 되어버렸고, 다송이는 전 가정부 아줌마에게 캠핑을 간다는 메시지를 남겨 그가 CCTV를 제거한 뒤 집으로 찾아들어올 수 있게 했다. 자신의 딸과 아들이 이미 기생충에게 포섭되어 기생하기 위한 도움을 주고 있는지도, 스스로의 가정이 잠식되어간다는 것도 모른채 탁자 밑에 숨은 기택네 가족을 두고 거침없이 서로를 탐했다. 마치 우리가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방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는 바퀴벌레를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들은 정말 '벌레를 죽이듯'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그들을 처리할 수도 있었다. 풍족함이 주는 안락함에 등잔 밑이 어두웠던 그들은 끊임없이 기택네 가족과 가정부 부부가 기생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몫을 내어주고도 아무것도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포스터 속 이들은 기택네와 다르게 눈에 하얀 테이프가 칠해져 있다. 평생을 땅만 파고 살면 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반면 하늘을 너무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어도 결국 빛에 눈이 멀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각자 다른 위치에서 눈이 멀어버린 자들의 비극임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