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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택 Aug 13. 2024

미셔널 디자인

교회 안 디자인 이야기, 그리고 세상으로

인간의 창의력은 예배, 교회 내 행사 등에 많이 쓰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대표적으로 음악과 디자인이 있습니다. 그중 교회 음악은 학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평신도부터 전문가까지 깊고 넓은 정보와 담론이 이루어지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몇몇 대학교에는 '교회음악과'라는 전공이 있을 정도니까요. 옛 어른들의 논쟁거리는 일렉기타와 드럼을 예배에 사용해도 되는가부터 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 특정 장르의 연주법을 교회 반주에 사용해도 되는가, 예배 인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연주와 찬양 인도가 좋은 인도인가 - 등등 예배와 관련하여 깊고 넓은 고민과 실험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오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은 결국 우리가 더 좋은 모습과 형식으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예배를 만들어간다는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발전하는 건강한 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창의력을 주셨고(그래서 동물들에게 이름도 붙이라고 하셨을까요?) 또한 좋은 것을 구별할 줄 아는 판단력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최선의 모습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예배를 꾸려나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의 창작 활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2. 인간의 창작 활동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이다.

3. 인간의 창작 활동은 지상명령에 포함된다.


자, 다시 돌아와서 교회 디자인계는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교회 디자인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연구나 실무자들끼리의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서 교회 디자인과를 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디자인 종사자가 음악인들의 숫자보다 적어서일까요? 디자인은 음악보다 창작자의 주관적인 범위가 더 넓고, 또한 한번 사용되고 폐기되는 사이클이 음악에 비해 굉장히 짧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들의 취향 또한 다양해서 누구는 좋다, 싫다 따위의 피드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담론을 나누기에는 제약이 많은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디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경중이 크고 다양하지 않아서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마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두 분야 모두 섬김 직분의 가장 앞 단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가사 자막과 기타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없고, 영상과 카드뉴스 없이 교회 행사를 기획할 수도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하면 건강한 디자인, 성경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디자인, 예배를 돕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를 가장 먼저 시작하기 위해서는 '왜 교회 디자인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제가 학부시절 졸업반을 지도해 주시던 교수님께서 항상 해주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디자인에 정답은 많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의 의도는 네가 '잘' 만드는 결과물이 곧 정답이다. 그러니 그것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고 소비되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감히 한 마디 더 첨언을 하고 싶습니다. "디자인에 오답은 있다"입니다. 분명히 사람의 시각을 불편하게 하는 결과물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창작자의 비뚤어진 어젠다나 메시지가 자극적으로 드러나서 (혹은 창작자 본인의 실력이 미비하여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다거나) 대중에게 피로를 주는 디자인도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휘황찬란한 컬러 위에 검은색 폰트로 깔리는 가독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예배 자막, 대형 현수막에 특정 인물이 강조되어 무의식 중에 예배의 주체를 흐리게 하는 프로파간다, 세상의 문화를 교묘하게 디자인에 입혀 가지고 들어와서 겉만 멋져 보이는 철학 없는 디자인 등입니다. 이러한 디자인들은 사용자의 정신에 피로를 누적시키며, 잘못된 프로파간다로 오용될 수 있으며, 혹은 그 자체의 의도치 않은 생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디자인은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브랜드 디자인, 제품 디자인, UI/UX, 그래픽 디자인 등 상업적으로 쓰이는 디자인들은 만들어질 때부터 기획과 타깃을 설정하고 만들어지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리스크가 일어나더라고 그 대상은 타깃에 포함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교회 디자인은 어떨까요? 하나님을 특정 오브젝트로 사물화 시키거나, 성경의 복잡한 메시지를 단적으로 곡해해버리거나, 잘못된 컬러, 상징, 일러스트레이션의 사용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는 교회 내부의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어두운 밤 가운데 섬뜩하게 빛나고 있는 빨간 십자가들의 향연, 싸구려 아트지에 인쇄되어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기복신앙적 전도 찌라시, 교묘하게 기독교의 탈을 쓰고 특정 정치색을 원색적으로 광고하는 현수막 등 오히려 기독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배려 없는 디자인이 세상 가운데에서 난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의 제목에 '미셔널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저마다 스스로가 정답이라고 자신 있게 외치지만 그 저변에는 도덕과 진리가 흐려져가고 끊임없이 인정받아야 하는 갈증과 불안 속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서 교회는 그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기쁨을 알려주어야 하며 진정한 구원은 누구인지 알려야 하는 성경적 의무(지상명령)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 디자이너들에게는 [복음]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끔 [좋은 디자인]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혹자는 ‘복음의 능력을 너무 축소시키고 물질적인 것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것 아니냐?’ 고 말씀하실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오해하지 않게끔, 복음의 전달력이 위축되지 않게끔, 더욱 적극적으로 화려하고 좋은 것이 많은 세상 문화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서 복음이 1차적으로 돋보이도록 하는 문화 선교로써의 기능을 띄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언제나 ‘돕는’ 위치 그 이상을 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리하자면


-복음을 넘지 않는 디자인

-올바른 메시지를 담는 디자인

-완성도 높은 디자인


이 건강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짧게 나누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앞으로도 나누어질 내용들은 결코 순한 맛이 아닐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디자인을 좋아하는 한 명의 섬김이로서, 우리 스스로 교회 내 고쳐야 하고 재정비해야 하는 많은 시각적인 부분에 대해 가감 없는 비평과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당장 생각나는 주제들만 해도

-교회 디자인의 정의 : 영상, 예배 아이덴티티 디자인, 교회 브랜딩, 이벤트 디자인, 예배 콘텐츠 디자인

-타이포그래피와 복음

-표현의 한계를 넘는 방법 : 빛, 비둘기, 십자가

-하나님보다 큰 본당 LED

-당신의 포스터가 불편한 이유

-심방도 인증하는 시대, 기독교와 SNS

-성탄절에 자꾸 산타가 보이는 이유

-설교 숏츠도 설교로 봐야 하나요?

-전도지 예쁘게 만드는 법


등등 디자인뿐만 아니라 콘텐츠 기획, 제작단계까지 우리가 되짚어보아야 할 내용이 많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 글은 디자인을 업으로 하거나, 전공 수준 이상을 학습하신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글입니다. 작은 교회에서 달란트를 갖고 최선을 다해 매주 예배를 섬기는 직분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팁이 되고, 전문가로서 교회에서 섬기고 계신 분들에게는 크로스 체크 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뤄야 하는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고 한번 시작하면 짧지 않은 분량이 작성될 것이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글을 써 나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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