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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택 Aug 25. 2024

미셔널 디자인

교회 내 디자이너의 태도(1)

보통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서 디자인을 할까요? 이제 막 디자인을 수학하기 시작한 학부생, 현역 전문 디자이너, 디자인의 디귿자도 배워본 적 없지만 섬길 사람이 없어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포토샵을 깔아서 주보를 만들기 시작한 청년, 혹은 대형 교회에는 고용된 전문 디자이너가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마다의 수준 차이도 있고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퀄리티도 다를 겁니다.

오늘은 교회 내 디자이너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가능하다면 섬김의 태도까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사실 결과물에 대한 퀄리티는 나중 이야기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건강한 신앙과 올바른 섬김의 태도로 섬겨야 첫 번째로 본인 스스로에게 은혜가 되며, 두 번째로 교인들에게 은혜가 되고, 세 번째로 그러한 태도를 기반으로 한 결과물은 반드시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실천적인 디자인 방법론을 논의하기 전에 먼저 생산자, 창작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 순서라고 생각되기에, 이 파트를 가장 먼저 말하고자 합니다.


당신은 가로획을 긋는 사람입니다.

-제가 현재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선교를 정말 많이 가는 교회입니다. 일 년에 여름 겨울 두 차례, 국내외 합쳐서 최소 14곳 이상의 선교지를 각각 몇 백명의 선교대원들이 3박 4일, 6박 7일의 기간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모입니다. 이 선교를 진행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행정적인 준비를 도맡아 준비하는 ‘준비팀’이라는 팀이 있습니다. 이 팀은 비정규적인 섬김 그룹으로, 선교 시즌별로 만나서 짧고 굵게 ‘선교를 위한 선교’를 진행하고 헤어지는 팀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선교지에서 선교대원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주방팀, 아침저녁 예배 찬양을 책임지는 선교 찬양팀 등이 있습니다. 필자는 준비팀으로 꽤 짧지 않은 시간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선교 현장으로 출발하여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멋있는 선교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때가 있습니다. ‘나는 선교지에 왔지만 선교를 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준비팀은 선교를 위한 준비에 일념 하는 팀입니다. 선교대원들이 현장에 가서 탈 버스와 항공, 방문할 연계 교회 준비부터 시작하여 숙소, 식사, 이동, 선교현장에서 쓸 공과교재, 현수막, 명찰 디자인, 아침저녁 집회 자막, 응원 영상 콘텐츠까지 선교에 관련된 A-Z를 도맡아 진행하는 팀입니다. 한마디로 정말 쉽지 않은 섬김입니다. 행정적인 능력도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선교대원들이 힘들지 않고 즐거울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기획력도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이런 고된 섬김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사역에 고립되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자막을 넘기는 것이 과연 선교일까? 내가 선교지까지 와서 현장에서 영상을 만들고 디자인을 하는 것도 선교라고 봐야 할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 MBTI는 대문자 T, 40점 만점 중 39점의 T입니다. 천성이 스스로에게조차 냉정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의 사고가 안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성격에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선교대원을 보고 있자니, 제가 선교현장에서 하는 섬김은 비교적 작아 보였고, 그렇게 크게 의미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고민을 어머니께 나누고 어머니가 정리해 주셨습니다. 선교대원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잇는 세로획을 긋는 역할을 한다면, 너는 선교대원들이 무탈하게 끝내고 돌아오도록 선교대원과 선교대원들의 사이를 이어주는 가로획을 긋는 사람이야. 그렇게 세로획과 가로획이 만나면 십자가가 그려지지 않니?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제가 섬기는 위치에 대한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대원들의 사역을 뒷받침해주는 섬김 또한 선교이자, 작지 않은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선교를 조금 더 풍성하게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더 나은 컨디션의 선교 현장을 통하여 선교대원들이 사역을 위해 준비되도록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생각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한 번 더 깊게 생각한다면, 어디까지나 이런 류의 사역을 준비하는 팀은 본질을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교 응원이 복음을 앞서서는 안 됩니다. 미디어가 예배를 앞서서는 안 됩니다. 나의 재능이 교회 사역의 메시지보다 크게 드러나도 안됩니다. 우리와 같이 재능과 노력으로 섬기는 팀은 항상 ‘돕는 자'의 위치를 고수하여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어 숨어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갖추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본래 사람은 스스로를 높이는 데에 익숙합니다. 또한 음악이나 디자인이나, 결과물로써 사람에게 칭송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이 높아지는 위험한(?)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섬기는 사람은 본인의 일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되, 그 균형을 유지하여 돕는 자로서 겸손하게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즐길 줄 아셔야 합니다

앞서 가로획을 긋는 사람으로서 태도의 연장선으로, 나의 사역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교회의 모든 섬김 직분은 저마다 남에게 말하지 못할 고독한 구석이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할애하는 시간, 노력, 비용 등등 투자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특별한 찬양을 하거나, 게스트를 초청하는 행사가 있을 때, 부르는 모든 곡의 구절들을 애프터이펙트를 사용하여 타이포 모션으로 제작합니다. 행사마다 6-7곡, 곡당 평균 12 슬라이드라고 한다면, 저는 행사마다 72 슬라이드의 타이포 모션을 제작합니다. 어쩔 때는 너무 힘에 버거워 어쩔 수 없이 Motion Array나 Art Grid와 같은 타이포 모션 템플릿 구독권을 월별로 결제하여 템플릿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한국교회의 그 누구도 콘티를 2,3주 전에 주는 천사는 절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항상 주어지는 시간은 길어야 1주일, 짦으면 2,3일입니다. 그래서 항상 직장인인 저에게 주어지는 기간 내에 저 찬양 모션 자막을 만드는 것은 ‘빡센' 일입니다. 그래도 평소 예배와 다른 퀄리티, 몇 날 없는 행사날 행사다운 무드를 연출하기 위한 욕심을 버릴 수 없어서 최대한 맞춰서 작업 하는 편입니다. 행사가 끝나면 언제나 게스트 분들은 이런 자막이 처음 봤다고 해주시기도 하고, 다른 스테프 분들도 고생 많았다고 해주십니다. 하지만 정작 공연을 본 분들은 제가 왜 공연이 끝나고 힘들어하는지 잘 모르십니다. 방송실에서 파김치가 되어 나오는 저를 제외한 교회는 너무 즐겁고 행복해 한 모습입니다. 심지어 저의 어머니는 항상 ‘넌 뭐 했는데 그렇게 피곤해하는 거야?’라고 물어보실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젠 그러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철없을 적 몇 번은 제가 이만큼 노력했다고 스스로 떠벌리고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옛날 자막은, 디자인은 이렇고 저랬었는데 내가 이렇게 바꿨다며 공동체 내에서 자기 PR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 스스로가 너무 궁상맞고, 창피하고, 내가 이러려고 섬기겠다고 한 것인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섬김의 본질,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라는 생각만 마음속에 남겨 두고 모든 것을 지우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런 태도로 변화하겠다는 다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를 갖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칭찬받고자 하는 잘못된 섬김의 방향은 점점 더 목마름의 구렁텅이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향하게 합니다. 이것이 장기화되면 어느새 본질보다 결과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 결과란 사람의 칭찬, 현상을 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의미 없는 참신함, 액션보다 리액션, 교회와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입맛에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됩니다.


맥락의 서핑타기, 되짚어보기

교회는 대예배(오전예배)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교회의 방향성이 결정됩니다. 하나의 말씀을 따라 교회 공동체가 같은 지향점을 갖게 되고 개인적으로는 삶의 태도, 공동체적으로는 교회의 사역 방향과 그에 따른 부수적인 콘텐츠 등을 만들고 행사를 진행합니다. 이렇게 ‘한 몸' 되어가는 것이 공동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미디어를 제작하여 섬기는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을 따르지 않고, 요즘 대세 콘텐츠, 창의력은 있지만 메시지가 없는, 혹은 교회의 톤과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 배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콘텐츠는 분명히 ‘붕 뜨게’ 되어있습니다. 한번 웃고 넘어가는 소모적인 제작물이 될 것입니다. 울림 없는 작은 파동이 될 것이며,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될 것입니다. (콘텐츠라는 단어가 포괄하는 장르가 너무 많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

따라서 특히 미디어로 섬기는 사람은 사람들이 좋아하든 안 하든 본인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방향성과 말씀의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대중에게 어떻게 창의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태도와 리액션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할 것을 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의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비평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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