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강제 이주의 전말
중앙아시아에는 약 50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 약 172,000명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다. 88년이 흐른 지금도 그 상처는 후손들의 정체성 깊숙이 새겨져 있다. 이 연재는 그 원점에서 출발한다.
# 1. 연해주, 조선인의 땅에서 소련인의 땅으로
조선 말기, 두만강을 넘은 이들이 있었다. 굶주림과 가난을 피해 연해주의 황무지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땅을 일구었다. 1860년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조약으로 러시아가 우수리 강 동쪽 지역을 획득하면서 러시아와 조선은 처음으로 인접하게 되었고, 1869~1870년 이북 지역의 대기근이 러시아로의 대규모 이민을 촉발했다.
처음에는 환영받았다. 버려진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업 노동력을 제공한 조선인들은 현지 관리들에게도 유용한 존재였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자국민 이주 정책을 강화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1923년 고려인의 숫자는 10만을 넘었고, 1937년에는 17만에 이르렀다. 고려인 학교가 370곳, 신문도 7개나 있었으며,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의 자치 공화국 '고려인 소비에트 공화국'이 구상되어 설치 직전까지 갔다. 1920~30년대 연해주 고려인 사회는 그야말로 최절정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번영이 오히려 소련 당국의 경계심에 불을 지폈다.
# 2. 결정 No.1428-326cc — 한 장의 문서가 바꾼 운명
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 No. 1428-326cc가 1937년 8월 21일 내려졌다. 표면적 이유는 일본의 간첩활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었다. 몰로토프와 스탈린이 서명한 이 단 한 장의 문서가 17만 명의 운명을 바꾸었다.
강제이주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스탈린은 일본과의 전쟁을 앞두고 한인이 일본의 첩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군사적 우려와, 중앙아시아의 낙후된 지역을 이들의 노동력으로 개간한다는 경제적 목적 아래 171,781명의 한인을 강제 이주시켰다.
군사·경제적 목적 외에 정치적 동기도 분명했다. 고려인의 자치 요구를 차단하고, 일본 식민지가 된 본국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것이 스탈린 지도부의 숨겨진 의도였다. 1928년 전로중앙집행위원회에 '극동조선공화국' 수립을 청원했던 고려인들의 자치운동은 소련 중앙 당국에게 지울 수 없는 불신의 씨앗을 심어두었다.
강제이주는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1935년부터 1937년 동안 약 2,500명의 고려인들이 체포되었는데, 그들은 연해주 고려인 사회의 지식인과 지도층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본격적인 이주에 앞선 예비검속의 성격을 띠었다. 사회의 저항 거점이 될 수 있는 지식인과 지도층을 먼저 제거하고, 이후 민중 전체를 열차에 실어 보낸 것이다.
# 3. 죽음의 열차 — 6,400km의 여정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이 고려인 강제 이주령을 승인한 뒤 이주 작업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소련 당국은 3~7일 전에 이주를 통보해 한인 사회가 제대로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수많은 한인들이 무기력하게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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