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각자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며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해 익숙해질수록
우리가 주고받는 말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어쩌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말은 건네도 되고, 어떤 말은 꺼내면 안 되는지—
우리는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표정 하나, 손짓 하나에도
이미 상대의 다음 행동과 말을 예측할 수 있었으니까.
네 가족이 한 공간에 있어도
어떠한 잡음 하나도 없는,
너무나 평화로운 침묵이 이어졌다.
어쩌면 그 평화로움이 문제라면 문제다.
소리 내어 펑펑 울어버렸던 그날,
그 순간부터 거실의 공기가 차갑게 식어갔다.
그저 나 하나 입을 닫았을 뿐인데
집안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어쩌면 그들은 ‘나 하나쯤 희생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건 내 오만이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행동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혼자 짐작하고, 혼자 단정 지었다.
혼자 외로워하며, 감정의 땅을 파고 또 파 내려갔다.
그리고는 그 깊은 곳에
스스로 텐트를 치고 나를 가두었다.
이제야 조금 알겠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관계의 단절을 합리화하는 변명이었다는 것을.
덧.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이
때로는 마음을 숨기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할수록
오히려 거리는 멀어질 때도 있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내 마음을 꺼내려합니다.
서툴고 어색하겠지만,
그 작은 말들이
관계의 균열을 메우는 첫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사랑은 말에서 시작되고,
말은 이해와 연결의 다리가 되니까요.
오늘도 천천히,
내 마음을 꺼내는 연습을 이어가려 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 알 거라 믿었죠
눈빛 하나로도 / 마음 전해질 거라
서로를 너무 / 잘 안다고 해서
이젠 말이 필요 없을 줄 알았죠
그 평화로운 / 침묵의 시간 속에
사랑이 자라난다 / 믿었죠
하지만 그 고요한 / 시간 속에서
우린 점점 멀어졌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사랑의 약속이 아니라
익숙함에 기대 멈춘 (내 마음의 벽이었죠)
이제야 조금쯤 / 알겠어요
사랑은 말로 피어나죠
당신에게 닿으려면 / 내 마음을 꺼내야 하네요
그날 나 혼자 / 울었죠
식어버린 공기 속에
내가 가만히 있자 / 모두 멈췄죠
그제야 알았죠, 혼자만 알았던 걸
그들은 아무 / 말도 없었죠
그저 내 눈을 바라봤죠
나는 혼자 짐작하며
내 마음을 가두었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서로를 위한 배려가 아닌
감정을 숨기려 만든 / 조용한 방패였죠
이제는 조금씩 / 꺼내볼래요
서툴고 어색해도 좋아요
그 작은 말 하나가 / 우릴 다시 이어주겠죠
사랑한다는 / 한마디면
얼어붙은 밤이 녹아내리고
손끝 닿은 / 그 온기 속에
우리 숨결이 되살아나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던
그 믿음 이제는 놓아요
이젠 말할게요, 당신에게 / 나의 마음을
오늘도 천천히 / 한 걸음씩
당신에게 내 마음을
건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