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노동은 농업혁명, 그리고 1차·2차·3차 산업혁명 등 여러 시대적 전환을 거치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사냥과 채집에 의존하던 인간은 농업혁명을 통해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직접 식량을 생산하며 노동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산업혁명은 기계의 발전을 통해 인간 노동의 구조를 다시금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AI는 단순 반복 업무뿐만 아니라 인지적 업무까지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면서 노동의 역할과 구조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 노동의 미래를 예측하고, 그 역할을 재정의하려는 심층적 논의가 절실하다. 본 글에서는 AI 시대 인간 노동 역할의 변화를 살펴보고, 기업과 개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근로자의 역량에도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AI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역량의 증강(capability augmentation)과 역량의 확장(capability expansion)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과거에는 고숙련 업무의 성과를 팀 협업을 통해서만 도출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한 사람이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단독으로도 그에 버금가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개발자와 같은 일부 직무에서 주니어급 인력의 채용이 줄어드는 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기존 인사관리는 직무 단위를 중심으로 설계되었으며, 각 직무에 필요한 역량을 정의하고 이를 기준으로 채용과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직무 중심’의 개념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앞으로는 직무가 아니라 ‘과업(task)’ 단위로 인사관리를 재편해야 할 시점이다. 하나의 직무 안에서도 일부 과업은 AI가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반면, 일부 과업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역량이 필요한 영역이다. 앞으로는 직무 내 모든 업무를 사람이 직접 수행하기보다는, AI와 협업하며 과업을 적절히 분배하는 방식이 일반화될 것이다. 이는 기존 '직무중심'이 아닌 '스킬기반'으로 업무로 재편하고 인간과 AI의 역할을 재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조직 내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수록 스킬 기반 인력 운영도 강화될 것이다. AI가 잘하는 영역을 위임함으로써 근로자는 일상적 업무를 간소화하고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워크데이(Workday)의 '글로벌 스킬 현황 보고서(The Global State of Skills)'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리더들은 AI를 활용한 스킬 기반 인력 전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일상 업무 간소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65%)을 꼽았다(김우용, 2025).
과거에는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해 상당한 예산과 전문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동화의 진입장벽이 높았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러한 장벽을 크게 낮추어, 이제 누구나 손쉽게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업무 수행의 정밀성보다 창의적이고 비정형적인 과업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근로자의 역할은 단순한 반복 작업의 수행자에서, AI와 협력하여 고부가가치 과업을 창출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자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AI와 자동화는 인간의 업무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고 있다. 정밀성과 속도가 핵심인 과업은 AI가 담당하고, 사람은 이를 관리하며 문제 정의, 전략 수립, 창의적 기획 등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무직에서는 AI와 RPA가 서류 처리·데이터 입력을 대신하면서 직원들은 고객 대응, 문제 해결, 의사결정 지원 등 가치 높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시스템이 예금·대출 심사 서류 검증을 처리하는 동안 직원들은 맞춤형 금융상품 설계와 위험관리 전략 수립에 전념한다. 생산직에서도 반복적·육체적 노동은 자동화로 대체되고, 로봇이 조립 공정을 수행하면 근로자는 생산공정 개발, 감독, 유지보수와 같은 전략적 역할로 이동한다. 실제로 독일 BMW 공장에서는 로봇이 힘든 작업을 대신하면서 작업자들이 공정 개선, 품질 관리, 효율 최적화와 같은 전략적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BMW Group, 2017).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근로자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거나 기존 역할을 고도화할 수 있도록 재교육(Reskilling), ‘업스킬링(Upskilling)’과 조직문화 혁신이 필수적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The Future of Jobs Report 2023에 따르면, 향후 5년 동안 전체 직업의 약 25%가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기업과 개인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업스킬링(Upskilling)’과 ‘리스킬링(Reskilling)’이 핵심 전략이 될 수 밖에 없다(김창일, 2024). 또한, 이러한 변화가 효과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참여 보장과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구성원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AI 시대에는 데이터 및 기술 활용성이 커질수록 단순한 기술 숙련을 넘어 융합적 사고와 인간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분석 능력, AI 활용 역량뿐만 아니라, 도메인 지식을 바탕으로 AI를 통합하는 능력, 다학제적 협업 역량,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조정 능력, 인문학적 소양,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열린 자세 등이 핵심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김동규, 2024).
예컨대 과거에는 HR 관련 시스템 구축이 전적으로 IT 부서의 몫이었지만, AI와 노코딩 툴의 발달로 인사담당자도 도메인 지식을 기반으로 직접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인사담당자가 IT 부서와 소통할 때 더욱 열린 자세를 갖게 하고, 외부 기술 변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동시에 일부 직종의 경우 고숙련자가 AI를 활용해 다양한 부수 업무까지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해당 직종 주니어 채용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AI 시대에는 직무 중심에서 스킬 중심으로 노동이 재편된다. AI가 잘 수행할 수 있는 과업과 인간이 담당해야 할 과업을 구분하며, 업무 영역이 세분화·재조정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구성원은 기존에 다루지 않던 영역까지 학습·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기업은 업스킬링(Upskilling)과 리스킬링(Reskilling)을 통해 직원의 적응을 지원하고, 대학은 학제 개편을 통해 학생이 융합적 지식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도록 도와야한다. 정부 또한 기업과 근로자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AI의 발전은 인간다운 인재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킨다. 반복적 업무는 물론 일부 인지적 업무까지 AI가 대체하면서, 리더십·팀워크·의사소통과 같은 소프트 스킬(soft skills)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한지우 외, 2023). 특히 창의적·비판적 사고, 감성지능, 공감적 커뮤니케이션, 회복탄력성,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은 AI 시대에 필수적인 역량으로 꼽힌다. 비판적 사고는 효과적인 프롬프트 설계와 윤리적 활용에 필수적이며, 감성지능과 공감적 커뮤니케이션은 인간 협력에서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회복탄력성과 성장 마인드셋은 빠른 변화 속에서 적응하고 능동적으로 학습하기 위한 기반이 된다. 제도적으로는 구성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지만, 결국 근로자 스스로가 열린 자세로 끊임없이 학습하고 경험을 쌓을 때 비로소 이러한 프로그램이 진정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추가영, 2024).
AI의 확산은 노동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직무 중심에서 스킬 중심으로, 반복·정형 업무에서 창의·전략적 과업으로, 그리고 단일 전문성에서 융합형·인간다운 인재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 개인, 정부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기업은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는 동시에 조직문화를 혁신해야 하며, 개인은 이에 발맞추어 성장 마인드셋과 회복탄력성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역할에 적극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정부 또한 노동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줄이고, 교육과 복지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 이들 주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할 때, 기술 변화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김우용 (2025). 워크데이 "한국기업, AI로 스킬 기반 전략 가속" Byline Network 기사. https://byline.network/2025/04/8-308/
BMW Group. (2017). BMW Group harnesses potential of innovative automation and flexible assistance systems in production [Press release]. BMW Group PressClub. https://www.press.bmwgroup.com/global/article/detail/T0268199EN/bmw-group-harnesses-potential-of-innovative-automation-and-flexible-assistance-systems-in-production?language=en
김창일. (2024). [전문가칼럼]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위한 전략, 업스킬링과 리스킬링. GS칼텍스 미디어허브. https://gscaltexmediahub.com/future/upskilling/
김동규&양인준, 박세정, 조아름, 최기성. (2025). 인공지능에 의한 화이트칼라의 직무 대체 및 변화. 한국고용정보원 기본연구 2024-12.
추가영. (2024). [전문가칼럼] AI 시대, 더 중요해진 '소프트 스킬'로 경쟁력을 갖추는 법. GS칼텍스 미디어허브. https://gscaltexmediahub.com/future/softskills/
김우겸. (2025). AI 기술과 스킬 중심 조직 전환, 한국 기업 경쟁력의 새 틀을 짠다. 산업일보 기사https://kidd.co.kr/news/241140
한지우&오삼일. (2023). AI와 노동시장 변화. BOK 이슈노트 2023-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