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AX 도입이 어려운 진짜 이유

공공의 특수성을 수용하는 AX로 가는 길

by HRKIM

들어가며


민간 기업 종사자들이 공공기관의 업무 구조를 접하면 종종 혀를 내두르곤 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직도 저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한다고?”라는 반응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비효율의 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히 기술이 부족해서도, 구성원이 안일해서도 아님을 알게 된다. 오히려 공공 조직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생존을 위한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작은 실수 하나가 감사와 징계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 속에서, 공공의 업무 방식은 속도보다 안정성을, 효율보다 적정성을 우선해 진화해 왔다. 채용·노무·보수 등 다양한 인사 업무를 수행하고, 나아가 여러 공공기관의 담당자들과 협업하며 이러한 구조를 체감해 왔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기관 업무에 내재된 DX(Digital Transformation)와 AX(AI Transformation)의 해묵은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1. 주인-대리인 이론: 얽히고설킨 제도의 덫


공공기관의 비효율을 논하기 전, 반드시 이해해야 할 개념이 있다. 바로 '주인-대리인 이론'이다. 국민(주인)을 대신해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행정부와 입법부는 대리인인 기관을 통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통일적인 제도를 도입한다. 문제는 이 제도들이 층층이 쌓이면서 발생한다. 기획재정부의 지침, 행정안전부의 가이드라인, 국회의 요구사항이 얽히고설키며 제도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조직은 이 복잡한 제도들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감사받아야 한다. 결국, 감사를 방어하기 위해 검증에 검증을 거듭하는 프로세스가 구축되고, 이는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예외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2. 채용 사례로 본 '생존형 DX'의 한계


인사팀 발령 직후, 업무 효율화를 위해 가장 먼저 추진했던 과업은 민간 기업에서 널리 활용되는 ATS(채용관리시스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프로세스의 자동화가 이루어지면 인적 오류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시스템 도입이 곧 업무의 경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공공기관의 채용은 국가권익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외부 기관의 엄격한 감시 체계 아래 놓여 있다. 특히 공정 채용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은 상황에서, 담당자들은 극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안고 업무에 임한다. 산식의 미세한 오류나 소수점 처리 방식의 차이로 채용사고가 날 경우, 이는 단순한 행정 실수를 넘어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사안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채용 업무에 수반되는 징계는 다른 영역에 비해 그 양형이 매우 엄격하다. 시스템이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담당자를 100%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동화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결국 담당자는 시스템의 결과값을 검증하기 위해 다시 엑셀을 켜고 수많은 데이터를 일일이 직접 대조한다. 도구는 최신형이지만, 책임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행위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방어적 DX'의 전형이다.


3. AX 이전에 DX가 가로막힌 이유


최근 모든 산업 영역에서 AI를 활용한 AX(AI Transformation)가 화두가 되고 있으나, 공공 부문에서 이는 여전히 요원한 이야기다. 데이터의 표준화와 프로세스의 디지털화, 즉 제대로 된 DX(Digital Transformation)가 안착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AX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간의 DX는 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의 제도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프로세스 재설계(BPR)'가 가능하다. 그러나 공공은 법령과 지침에 의해 제도가 경직적으로 고정되어 있다. 시스템이 제도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고정된 제도를 시스템이 사후적으로 뒤쫓아야 하는 구조다. 이처럼 경직되고 복잡한 행정 프로세스를 시스템에 이식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수준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노력이 요구된다.


문제는 공급자인 민간 테크(Tech) 업체의 입장이다. 이들에게 공공 시장은 수익성 대비 개발 및 유지보수 리스크가 지나치게 큰 시장이다. 공통 제도의 복잡성도 높을뿐더러, 여기에 개별 기관의 특수성까지 더해질 경우 이를 시스템에 즉각 반영하기 위한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반면 공공 시장의 예산과 규모는 한정적이다. 이러한 '공급과 수요의 미스매치'는 결국 민간의 논리로 개발된 범용 시스템이 공공의 특수한 운영 영역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병목 현상을 야기하며, 공공의 디지털 전환을 상시적인 정체 상태에 머물게 한다.


4. 공공의 'Key-man' 리스크


시스템이 제도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에서 공공 조직 특유의 ‘Key-man’ 리스크가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사관리 중 보수 업무다. 공공기관의 보수 담당자는 복잡한 수당 체계와 잦은 인사이동, 이에 따른 소급 계산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종종 시스템이 아닌 특정 담당자의 정교한 엑셀 수식에 의해 유지된다. 이들은 시스템이 담아내지 못하는 공공의 복잡성을 현장에서 지탱하는 핵심 자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구조는 업무의 표준화와 체계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동한다. 특정 개인의 경험과 역량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체계는, 해당 인력이 부재할 경우 조직 기능의 급격한 저하나 업무 마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다양한 공공기관에서 목격했다. 그럼에도 조직은 이 문제를 쉽게 해소하지 못한다. 시스템이 감사의 칼날로부터 담당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해 주지 못하는 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은 시스템 고도화가 아니라 ‘엑셀에 능숙한 핵심 인력’을 육성하고 그들에게 의존하는 보수적 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공 조직은 기술적으로는 DX를 추진하면서도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개인 의존적 업무 방식에 머무르는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5. 공공의 AX는 '효율'과 함께 '신뢰'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공공 부문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민간 영역의 효율 중심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공공기관 운영에서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가치는 단순한 효율성이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 놓인 적정성과 투명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공공에 적합한 AX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 유연한 ‘룰 엔진(Rule Engine)’ 중심의 인프라 구축

이제는 고정된 기능만을 제공하는 패키지 소프트웨어 도입에서 벗어나야 한다. 급변하는 법령과 규정, 지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업 담당자가 직접 업무 로직을 조정하고, 그 결과를 즉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유연한 룰 기반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향후 AI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복잡한 규정을 해석하고 실행을 보조하는 AI 에이전트가 도입된다면, 공공 특유의 복잡성과 제약을 수용할 수 있는 한층 진화된 업무 환경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 업무 정보의 DX: ‘데이터 정합성’이라는 선결 과제

IT 업계의 격언인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Garbage In, Garbage Out)’은 공공 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AI라는 첨단 기술을 얹기 전에, 그동안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고 판단해 오던 파편화된 업무 정보를 체계적으로 데이터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데이터가 규격화되고 정제되어 정합성을 갖출 때, 비로소 AI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 설득 논리의 재구성: '속도'에서 '안정성'으로

공공 부문의 DX와 AX는 단순히 업무 처리 속도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인적 오류(Human Error)를 시스템 차원의 구조적 안정성으로 전환하는 리스크 관리의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스템은 실무자에게는 작은 실수 하나로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 주는 견고한 방어막이 되고, 경영진과 감사 부서에는 사고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통제 수단이 된다. 이 지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공기관에 오랫동안 고착되어 온 비효율은 외부의 강제나 지시가 아닌, 기관 내부의 자발적인 선택과 수용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


아무리 적극적으로 AX를 추진하더라도, 실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결코 조직에 정착될 수 없다. 따라서 공공 부문에서는 민간의 변화관리 관점을 참고해 AI 활용을 조직문화로 확산시키는 노력과 함께, 공공 특유의 책임 구조와 제도 환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접근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공공의 AX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설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가며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공공기관의 비효율은 단순히 나태함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 제도적 제약 안에서 단 하나의 오류도 범하지 않으려는 실무자들의 고군분투가 만들어낸 그림자다. 필자는 HR이라는 영역에서 이 그림자를 목격했지만, 이는 비단 인사 부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예산, 사업관리, 민원 등 공공의 모든 영역이 비슷한 '방어적 DX'의 굴레에 갇혀 있다. 이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공공의 특수성을 깊이 이해하는 긴 호흡의 DX·AX 전략이 절실하다. 이제는 단순히 정부의 지침이나 유행에 떠밀려 수행하는 '보여주기식 사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성원이 진심으로 시스템을 신뢰하고, 공공 부문의 디지털 혁신은 비로소 실무자의 책상 위에서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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