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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삭 Sep 19. 2023

삼식이로 40년 살래?

하릴없이 늙어가는 퇴직 공무원의 삶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보면 인류는 100세 시대를 넘어 영원불멸의 존재를 목표로 계속 발전해 간다는데 과연 우리의 수명은 어디까지 늘어날까 싶다. 미래는 알 수 없다지만 어쨌든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수명은 앞으로 더 늘면 늘었지 줄어들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일까? 누군가에게는 축복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에게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인가? 아니다. 명백히 지옥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인천국제공항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이 노인들은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해 나갈 정도의 소득과 재산은 있지만 아무런 사회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직업도 취미 생활도 없었다. 그저 집에서 하루 세끼 해결해야 하는 삼식이 신세였고 멀뚱멀뚱 앉아서 TV만 보는게 하루 일과인 그런 노인들이였다. 청년의 눈으로 보면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하지 왜 그러고 사나 싶지만 그건 노인이 되어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일단 건강해야 하는데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이 50만 넘어도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고 70이 넘으면 젊은이들은 쉽게 생각하는 헬스 달리기 배드민턴과 같은 활동성 있는 운동은 거의 하지 못한다. 그나마 걷기나 수영과 같은 극히 안전한 운동만이 노인이 할 수 있는 운동의 전부다. 이 정도 운동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인 지경이다. 그리고 친구도 돈이 있어야 만나는 것이다. 집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다 돈인데 빈곤노인들은 삶을 겨우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소득과 재산이 있을 뿐이지 여가생활을 즐기고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해 나갈 정도의 돈은 없다. 그렇다고 매일 집에만 처박혀 있을 수 없기에 탈출구를 인천국제공항에서 찾은 것이다. 경로우대 혜택을 받아 공짜로 지하철을 타고 매일 아침 인천국제공항에 가서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널찍한 곳에서 비행기 뜨고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소일하는 것이다. 의미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집에서 멀뚱멀뚱 TV나 보고 식은 밥에 김치로 한 끼 때우는 생활보다는 훨씬 나을 수 있다.     


그 어떤 청년도 미래의 내 노후가 이런 모습으로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청년 시절부터 노후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노후대비는 결국 두 가지로 요약된다. 돈과 외로움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 여유와 인적 네트워크다. 가장 바람직한 케이스는 노후에 내가 일할 일자리가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 당연히 돈을 벌게 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외로움의 문제도 간단히 해결된다.      


그렇다면, 공무원은 이런 노후대비가 되는 직업일까? 답은 아니오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대표적인 장점이었던 공무원 연금은 별도 파트에서 더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그 혜택이 앞으로 대폭 줄어들 것은 명약관화다. 2023년 9월 현재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기사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현재 30살인 공무원이 60세에 퇴직할 때 즈음에는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노인 천국이 될 것이고 이들을 먹여 살릴 공무원 연금 재원은 그 어디서도 발굴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이며 본격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고, 1970~80년대와 같은 급성장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공무원 연금은 그저 공무원들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혜택만 주는 무늬만 연금이 될 것이 뻔하다. 공무원 연금 하나로 노후대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고 퇴직 후 연금 받으면서 매일같이 등산 다니고 골프 치는 현재 퇴직 공무원들의 노후생활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퇴직 공무원을 위협하는 건 돈뿐만이 아니다. 도무지 만날 사람이 없다. 만나주는 사람도 없다. 후배 직원들은 퇴직하는 그 순간부터 생판 남이 된다. 30년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다 보니 공직을 떠나 인간관계를 맺기도 너무 힘들다. 등산도 도서관도 끽해야 1년이다. 매일 아무 하는 일도 없이 공원이나 도서관을 돌아다니기 일쑤다. 집에서 삼식이 노릇 하기에는 배우자와 자녀들 보기가 부끄럽다.     


결국, 공무원도 퇴직 후에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이는 사기업과 다를 바 없으므로 공무원이 일반기업 대비 가지고 있는 장점이 미래에는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러면 공무원은 퇴직 후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없다. 공직 경력을 수십 년 쌓아 봤자 사회에서 그 전문성을 절대 인정받지 못한다. 특히나 하급 공무원은 더욱 그렇다. 퇴직 후 일자리는커녕 현직에 있을 때도 이직조차 할 수 없다. 공무원은 일반 회사와 달리 공무원 시험이라는 특수한 절차를 거쳐 임용된다. 공무원 시험은 국어 영어 행정법 행정학 등의 암기형 과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수준 또한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다. 대학 학벌을 중심으로 토익, 토스, 면접, 사회경력, 일반상식 등 무수한 스펙을 보유하고 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일반 회사원들의 취업 절차와는 그 궤가 완전히 다르다. 공무원 시험 1~2년 준비하고 공무원이 되어 3년만 일해도 사기업으로 이직은 꿈도 꿀 수 없다.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당신이 공직에서 얻어낸 그 어떤 스펙도 사회에서는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들끼리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공무원 들어와서 5년만 지나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간다고. 생각해 보라. 동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등본 몇 년 떼던 사람을 무슨 대단한 경력이라고 사회에서 인정해주겠는가? 등본 안 떼고 시청이나 도청 구청에서 일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사회는 행정경력은 경력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현직 공무원도 이직을 못하는 지경이니 퇴직 후 공무원의 생활은 더 비참하다.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30년 동안 일하고 퇴직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퇴직 직급은 6급이나 5급일 것이다. 30년 중 15년은 실무자로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행정 분야의 경험을 쌓았을 것이고 나머지 15년은 부하 직원들을 통제하는 관리자로서 일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회사의 사장이라면 나이는 60이 넘었고 경력이라고는 과거에 보고서를 좀 썼다 뿐이고 지금은 보고서 쓴지도 하도 오래여서 실무능력은 전혀 없는. 그저 부하직원들에게 15년 동안 높임만 받다가 관리자로서 퇴직한 사람을 채용할 것인가? 그 누구도 채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행정고시 출신 고위공무원들은 전관예우 성격으로 연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 관리자로서 취직할 자리들이 꽤 있는 편이다. 이런 혜택도 자신이 공직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명민하게 계획해 놓은 성과다.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없는 하급 공무원들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다.   

  

게다가 공무원은 이해력도 분석력도 주체성도 추진력도 타 직군 종사자보다 떨어진다. 특히 9급 공무원으로 대표되는 하급 공무원직은 더 그렇다. 시키는 대로만 일하기 때문에 내 힘으로 내 생각으로 무언가 헤쳐나가는 경험이 거의 없다. 관리자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행정이란 것이 그렇다. 행정의 본질은 법과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다. 창의성을 애초에 발휘할 수 없는 분야다. 수십 년을 규정에 얽매여 살던 사람이 무슨 주체성과 추진력이 있겠는가? 노예근성만 남아있을 뿐이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기관에서 퇴직한 선배 공무원 중 일부는 공공근로 일자리를 전전하며 길가에서 현수막을 떼거나 잡초를 뽑으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이나 택시기사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 또한 쉽게 할 수도 없고 한다 해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이다. 최소한의 인격적 존중을 받지 못하는 직업들이다. 노인이 할 만한 직업이 아니다. 특히나 15년 가까이 부하직원들에게 대우받고 관리자로서 존중받던 직함에 있던 사람이 아파트 경비원이나 택시기사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많이 힘들 것이다.     


결국 퇴직 공무원 대부분은 집에서 그냥 연금 받으며 쉬게 된다. 하지만 쉰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외로움과 허무함에 몸부림치는 힘겨운 나날이다. 아무 할 일도 없이 만날 사람도 없이 만나주는 사람도 없이 집에서 시간만 보내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내 존재가 이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한다는 허무함이 몰려든다. 퇴직 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은 이유다.     


그래서일까 공무원들은 퇴직을 1년 정도 앞둔 시기부터 얼굴이 울상이 된다. 하루하루가 아깝고 억울하고 1년만이라도 더 근무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퇴직하기가 너무너무 싫은 것이다. 부하직원도 많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도 없고 일거리도 없고 온종일 편안하게 생활하면서 월급 또박또박 나오는데 여기서 퇴직하면 자신을 만나줄 사람도 존중해줄 사람도 없으며, 월급도 공무원 연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가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 퇴직하는 공무원들이 사정은 더 낫다. 어쨌든 연금이라도 많이 받지 이제 막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청년 공무원들은 어찌할 것인가? 인천국제공항에 매일같이 출근해 의미 없이 하루를 보내는 노인들의 삶이 퇴직 후에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언제까지? 60세 퇴직해서 100세에 죽을 때까지 장장 40년이다. 60세는 더이상 노인이 아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창 일할 나이다. 그 나이에 할 일도 하는 일도 아무 미래 계획도 없이 인천국제공항이나 외롭게 돌아다니는 인생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길가에 현수막을 떼고 잡초나 뽑는 그런 일을 하며 살고 싶은가? 거듭 말하지만 공무원 연금으로는 절대 노후대비를 할 수 없다. 밥에 김치만 먹고 사는 삶을 노후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제 편안한 노후생활을 바라며 공무원 하는 시대는 완전히 소멸했다. 최소한 60대까지, 더 나아가 70대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다. 공무원은 더이상 평생직업이 아니다. 사회에서 커리어를 인정해 주는 직업만이 평생직업이다. 그래서 의대광풍이 불고 있고 너도나도 전문직에 도전하고 있다. 나만의 커리어와 경쟁력을 젊은 시절에 최대한 쌓아 놓아야 노후에 나를 불러주는 곳이 생긴다. 공무원은 그 신분을 국가에서 보장하는 60세까지야 안정적일 수 있겠으나 그 이후의 삶은 아무도 보장해줄 수 없다.       


훌쩍 현실로 다가온 100세 시대는 현 20~30대에게는 공포와도 같다. 이 공포를 이겨내고 살아남기 위해서 각자만의 적성을 찾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공무원은 절대 100세 시대의 해답이 되지 못한다. 서서히 죽어가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삶아지기 싫다면 사회에서 내 커리어와 경력을 인정해줄 수 있는 나만의 길을 찾아라. 못 찾겠다면 끊임없이 방황하며 실마리라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젊음의 특권이고 젊은 시절 해야 할 일이다. 파릇파릇한 청년 시절에 안정성 하나만을 보고 공직에 들어온다면 내 길을 찾는 방황의 기회조차 잃어버린 채 속절없이 60세 퇴직의 순간이 사형선고일처럼 다가올 것이다. 필자가 10년 이상 일하며 몸소 겪은 사실이고 매년 퇴직하는 수많은 선배 공무원들의 안타까운 뒷모습에서 목격한 애끓는 증언이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여,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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